독서기록 393

음악소설집ㅣ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ㅣ'음악' 앤솔로지

소설이 묘사해줘서 비로소 언어화되는, 내가 느꼈던 미묘한 감정들. 나에게 스스로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그 순간이 누군가의 언어를 읽음으로써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서. 이 책은 기획도 좋고 편집도 좋아서 출판사를 봤더니 '프란츠'라는 곳이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출판만 하시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 관련 비지니스를 하는 곳 같았다. 출판사 이름은 슈베르트에서 따온 것이었다. 작가 인터뷰를 보니 이 소설 기획부터 출간까지는 몇 년 걸린 듯 했다. 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 007수면 위로 - 김연수 · 049자장가 - 윤성희 · 095웨더링 - 은희경 · 129초록 스웨터 - 편혜영 · 167 참여한 작가들도 쟁쟁한데, 모든 이야기가 매력이 있었지만 나에겐 처음에 실..

독서기록 2024.11.11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ㅣ우치다 타츠루 외ㅣ김영주 역ㅣ인구 감소를 보는 일본 학자들의 시각

인구 감소 관련된 책도 종종 보고 있는데, 이 책은 우치다 다츠루라는 사상가에게 관심이 생겨 그의 저작들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2018년에 쓴 책이라 벌써 6년 전인데, 그때 봤으면 더 좋았겠다. 이래서 지금도 출간되지만 묻히고 있는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어야 한다. 2024년의 나는 책을 열심히 읽었지만 그럼에도 나중에 분명 '2024년에 이런 책이 나왔었어?' 하는 책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제목을 보고 인구 감소 사회가 어째서 위험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지만, 제목의 답을 얻지는 못했다.책의 컨셉은 우치다 타츠루를 비롯한 10명의 학자/작가가 각자가 생각하는 인구 감소 사회에 대한 의견을 담은 것인데 각자 생각하는 포인트가 달랐다. 정말 거칠고 간단하게 내가 이해한 ..

독서기록 2024.11.10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ㅣ정승민ㅣ딸과 아빠의 여행기

이 책은 디자인 회사 때문에 보게 되었다. 을 보는데 책이 너무 예뻐서 디자인 회사가 어디인지 확인했고 그 회사에서 이 책도 작업한 것을 알았다. 이 책도 역시나 책의 디자인이 참 좋았다.국내 출판사의 책 디자인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불과 몇 년 전 출간된 책들을 볼 때에도 자주 느낀다.앞으로도 멋진 작업을 해주실 것 같아서 처음으로 책 디자인사의 모든 작업물을 확인했다. 덕분에 새로운 멋진 책들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일곱 살 딸을 데리고 처음으로 단둘이 해외로 여행을 떠난 아빠가 쓴 여행 에세이다.그 아빠는 모델이자 배우 장윤주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는 분이었고, 여행지는 이탈리아 남부의 해변 마을이었다.유명인의 남편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경제적으로 늘 풍요롭고 일도 순조롭고 여유롭고 건강할 ..

독서기록 2024.11.09

초저출산은 왜 생겼을까?ㅣ조영태 외ㅣ인사이트가 없어 실망

저출생에 대한 또 다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읽어보았다.그러나, 분석이 너무 얕아서 새롭거나 깊은 분석을 기대한 독자는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차라리 이 7명의 저자들이 혼자 써서 낸 책을 보는 게 나을 것. 저자들이 전문 분야가 달라서 자신의 분야에 입각해서 초저출산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읽은 우치다 타츠루 책과 유사하다. (그러나 둘 중 한 권만 본다면 그 책을 권하겠다.) 유명한 분들을 모셨고 나도 이 저자들 중 여럿의 저서를 읽어보았고 다들 만족스러웠는데 책이 이 정도 깊이로밖에 나오지 않은 건 출판사에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 또 아무리 각 학계의 유명 저자들을 모았다 해도, 출생에 관한 내용인 만큼 여성 저자를 전략적으로 더 섭외했으면 좋았을 것..

독서기록 2024.11.08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책ㅣ김미소ㅣ외국어 2개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공감

경상도 출신 30대 여성이 쓴 일본어 학습에 대한 에세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응용언어학 박사를 취득 후 일본 대학에 일자리를 구했는데, 일본어는 애니에서 익힌 '애니스러운' 단어들이 전부였다고 한다. 영어와 일본어 학습자인 나로서는 저자가 어떻게 일본어를 습득해가는지 그 여정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읽어본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제3의 언어(모국어-영어-일본어)를 배우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3개 언어 구사자에게 언어간 비교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나라와의 문화적 차이점에 대한 이해 등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외국어를 배우는 자세에 대해서 배울 점도 있어서 좋았다. 일본어 표현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인 예시들이 나오기 때문에 일본어에 대한 배..

독서기록 2024.11.07

엄마 아닌 여자들ㅣ페기 오도널 헤핑턴ㅣ이나경 역ㅣ아이 없는 여성의 삶

'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이라는 부제를 보고 읽고 싶어졌다. 현대 사회에야 비출산하는 여성도 많지만, 아이를 낳는 게 당연했던 과거에도 아이가 없었던 여자들이 존재했다면 그들은 누구였고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시작했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명료해졌다기보다는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엄마 되기'에 대한 공부는 계속해봐야겠다. 이제는 여자들이 선택해서 아이를 안 낳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게 맞나? 선택이라는 단어에는 전적으로 저출생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함의가 있다?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있는가?"엄마인 여자와, 아닌 여자를, 이분법적으로 가르지 말자. 공동체의 육아를 지향하고, 내새끼와 니새끼를 극명하게 가르는  가족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결론인데,..

독서기록/여성 2024.11.06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ㅣ박정훈ㅣ남성이 말하는 여성혐오

이라는 책을 쓰신 박정훈 기자님의 책이다. 예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야 봤다. 이 분은 국내에서는 (내가 아는 한) 드문 남성 페미니스트이다. 책은 맞는 말 대잔치다. 전국민이 읽었음 좋겠다.이 책을 읽고 다른 한국 남성 페미니스트가 쓴 책도 궁금해져서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현직 교사가 쓰신 책이던데 매우 기대된다.  31) 특히 중년 남성들이 '나 잡혀 살아' 혹은 '요즘은 여자들 팔자가 더 좋아'라고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를 '피해자화'하는 행태는, 2030 안티페미니즘의 기저에 있는 남성 약자론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둘 다 엄살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착각도 고백도 하지 마시길이성애자 남성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른다. 자신의 존재가 여성에게 위협적..

독서기록/여성 2024.11.04

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ㅣ마르가레타 망누손 ㅣ임현경 역ㅣ90살 할머니의 글

읽으면서 참 운이 좋은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에서 겪었던 위험한 일이나 죽을 뻔하다가 병원에 실려가서 조치 바로 받고 장수하고 계신 것도 그렇고 하고 싶은 예술을 하면서 원만한 부부관계로 다섯 자녀를 낳고 잘 살았던 것도 그렇고 외국 생활을 하면서 차별이나 냉대를 크게 겪지 않앗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도 옆집에 자식이 둘이나 살고 있다니.. 정말 럭키한 할머니 아닌가. 나쁜 의미로 비꼬는 말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나이들어 갈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나도 90살에도 읽고 쓰고 생각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좋아하는 책을 몇 번이고 읽는 사람. 그 나이에도 여전히 예술을 가까이 하고 나만의 취향이 있고 꿈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 여든 넘어서 첫 책을 내고 90살에도 나의 전시회를 꿈꾸면서 살 수 ..

독서기록/여성 2024.10.31

나는 거기 없음ㅣ곽예인ㅣ여자들을 응원하며

참신한 젊은 여성 작가가 등장했다고 해서 그 정보만으로 읽은 책이다.읽을 때 보니 작가는 95년생이었고 90% 레즈비언이라 자신을 소개했으며 본업은 사진가이다. 도서관에서 조금만 읽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절반을 읽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집에 돌아와 그 날 다 읽고 잤다.그만큼 흡인력 있는 글이었다.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다. 위고 출판사였는데, 책의 만듦새도 아주 맘에 들었다. 별다른 예상 없이 읽은 글이라 어떤 글이 나왔어도 예상 밖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생각지 못한 내용의 연속이었다.'예쁜 여자는 예뻐서 고통받는다'는 말이 떠올랐다.저자의 성정체성에 대해서도, 저자는 수 년을 사귄 오랜 남자친구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자신은 여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

독서기록/여성 2024.10.30

저주토끼ㅣ정보라ㅣ기묘한 이야기들

는 안톤 허 번역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안톤 허 번역가가 쓴 책을 먼저 읽고 이 소설을 알게 되었다.)내가 읽은 책은 출판사 아작에서 낸 책이었는데 최근에는 래빗홀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는 것 같다.표지 이미지는 래빗홀 버전이다. 소름 끼치거나 기묘한 이야기들이 주로 펼쳐지는데, 깔린 정서는 서글픔이 많다.어떤 주제를 크게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들에 담긴 문제의식이 남편 없이 아이를 낳는 여성에 대한 시선이라든지 천편일률적인 삶의 방식이라든지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려는 이기심이라든지 기계와의 감정교류라든지 평소 내가 관심 있는 주제와도 닿아있어서 더 재밌게 느껴진 것 같다. 제목이기도 한 첫 이야기 보다 그 다음에 이어진 와 이 나는 더 좋았다.와 도 인상적이었다. 먼 옛날의 구전설화..

독서기록 202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