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음악소설집ㅣ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ㅣ'음악' 앤솔로지

기로기 2024. 11. 11. 22:27

소설이 묘사해줘서 비로소 언어화되는, 내가 느꼈던 미묘한 감정들. 나에게 스스로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그 순간이 누군가의 언어를 읽음으로써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서.
 
이 책은 기획도 좋고 편집도 좋아서 출판사를 봤더니 '프란츠'라는 곳이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출판만 하시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 관련 비지니스를 하는 곳 같았다. 출판사 이름은 슈베르트에서 따온 것이었다. 작가 인터뷰를 보니 이 소설 기획부터 출간까지는 몇 년 걸린 듯 했다.
 
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 007
수면 위로 - 김연수 · 049
자장가 - 윤성희 · 095
웨더링 - 은희경 · 129
초록 스웨터 - 편혜영 · 167
 
참여한 작가들도 쟁쟁한데, 모든 이야기가 매력이 있었지만 나에겐 처음에 실린 김애란 작가의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중 하나는 거짓말>도 읽어보았다.)

 



나를 향해 활짝 열린 로버트의 동궁을 보자 내 눈동자도 거기 호응하듯 크게 벌어졌다. 실은 며칠 전 나는 화면 속 로버트의 얼굴을 보고 작게 동요했다.'저 남자, 날 감상하고 있어'란 자각이 들어서였다. 동시에 '오랜만이다'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눈동자에 담긴 호감과 호기심 그리고 성적 긴장을 마주하는 것은. 그런데 그게 전혀 느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로버트는 욕망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편에 속했다. 처음 나는 '내가 너무 외로워서 그런가?' 스스로를 의심했다. 헌수와 헤어진 뒤 누군가와 정신적으로도 또 육체적으로도 진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이 인간적인 호감인지 성적 주체가 되는 기쁨인지 성적 대상이 되는 설렘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그 모든 게 섞인 총체적인 무엇일지 몰랐다. 감정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나는 뭐라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 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 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나는 로버트가 평소 옷을 잘 갖춰 입는 게 좋았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노동 앞에서 어떤 격식과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아서였다. 그건 본인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몇 년간 그런 존중에 좀 목말라 있었다.

음식. 그래, 엄마는 자기 음식을 제일 좋아했지. 다른 사람 칭찬은 잘 안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엄마는 누굴 만나든 자신의 지위가 높아지는 데 가장 큰 관심을 쏟 았다. 더불어 그걸 위해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배역을 떠넘기는 데 능숙했다. 심지어 그게 딸이라 해도. 언젠가 헌수와의 식사 자리에서도 엄마는 거의 재난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 자기 딴에는 조실부모한 사람을 위로하려 한 말이었겠지만. 늘 그렇듯 진짜 의도는 따로 있었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감각에 몰두하는 거였다.

 

ㅡ나는 늘 부러웠거든. 자기 부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그때 헌수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땐 미처 몰랐지만 아마 헌수 마음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과 해선 안 되는 말, 할 수 없는 말 등이 뒤엉키지 않았을 까? 그리고 그건 '좋은 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지 몰랐다. 마치 내가 나의 삶에 계속 놀라게 되면서부터 다른 사람 삶도 잘 판단 않게 된 것처럼.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모 이름을 보고 불길한 표정을 짓던 내 모습과 그런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헌수 얼굴도. 그때만 해도 그게 우리 관계의 파열음이 될 줄 몰랐는데. 이제 와 헌수 말을 빌리자면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아래는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 중 공감가는 말이었다. 그리고 요즘 읽고 있는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와도 연결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세계 속에 산다. 

"공해 수준의 인간이 너무나 많죠. 그 어리석은 짓들, 전쟁들, 폭력들, 살인들은 또 어떤가요. 이게 '사실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같은 것입니다. 돈과 권력이 없으면 불행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진실의 세계'는 저마다 하나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의 세계에서 봤을 때는 완벽하게 불행해야만 하 는 어떤 사람이 전혀 불행하지 않게 살 때, 그는 사실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만의 진실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진실이 바로 사실의 세계에 저마다 다는 주석, 혹은 자막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게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이야기를 통해서입니다. 저만의 진실로 누군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게 사실은 아닐지언정 제게는 진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