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출신 30대 여성이 쓴 일본어 학습에 대한 에세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응용언어학 박사를 취득 후 일본 대학에 일자리를 구했는데, 일본어는 애니에서 익힌 '애니스러운' 단어들이 전부였다고 한다. 영어와 일본어 학습자인 나로서는 저자가 어떻게 일본어를 습득해가는지 그 여정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읽어본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제3의 언어(모국어-영어-일본어)를 배우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3개 언어 구사자에게 언어간 비교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나라와의 문화적 차이점에 대한 이해 등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외국어를 배우는 자세에 대해서 배울 점도 있어서 좋았다. 일본어 표현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인 예시들이 나오기 때문에 일본어에 대한 배경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보다는, 학습자가 더 재미있게 읽을 것 같은 책이다.
아무래도 이 책에도 소개되는 일본의 특징으로는
- 사회매너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것,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것)
- 완곡어법 (다소 직설적인 한국 스타일에 비해 상당히 간접적임)
- 초고령사회
등이 있다.
같은 제목을 가진, 다른 저자가 쓴 영어에 대한 짝꿍책(시리즈 도서)도 있던데 그 책도 읽어보고 싶다.
아 세상에 읽고 싶은 책은 너무나 많구나!
새로운 언어와 문화에 부딪쳐 차근차근 쌓아온 저자처럼 나도 새로운 외국어에 또 도전하고 싶다.
요즘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드릉드릉 하고 있는데 아마 곧 배우기 시작할 것 같다.
이런 날 지하철을 타면 에어컨 냉기가 잠깐은 반갑다 가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이라 옆 사람과 맨살이 닿을까 신경 쓰인다. 자리 경쟁이 항상 치열해서 앉기도 힘들 었지만 운이 좋아 앉는다 해도 자리가 너무 좁았다. 간혹 땀범벅인 몸이 닿는 걸 피하려고 웅크리면, 다리를 더 벌리거나 어깨를 쫙 펴는 사람이 있었다.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꾹꾹 눌러야 했다. 정말 견디지 못할 만큼 노골적으로 내 자리를 침범하거나 다리를 쩍 벌리는 상대를 만나면, 나도 더 이상 웅크리지 않았다. 내 좌석 칸에 맞춰 나도 나에게 제일 편한 자세를 취했다. 여기까지는 제 공간이에요. 제발 좀 당신 몫의 공간만 쓰세요. (여기까지 한국 이야기다.) 일본 열차는 천 의자가 많아서 여름엔 더더욱 앉기 찝찝했지만, 다리 통증이 찝찝함을 항상 이겼기에 자리가 나면 앉아서 이동했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경험은 한국과는 달랐다. 누군가가 내 옆에 앉으면, 남에게 닿기 싫어서 자신이 웅크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게 자신을 한껏 구겨접는다는 느낌이었다. 남에게 닿기 싫은 거라면 실수로 닿았을 때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일본에서 만난 사람 대부분은 옆 사람과 닿게 되면 고개를 까딱 숙여 미안함을 표하거나 눈빛으로라도 미안하다는 뜻을 전달했다. 아, 나한테 닿아서 짜증난다는 게 아니라 나한테 닿아서 미안하다는 거구나. 정말 불편할 정도로 다리를 벌리거나 옆자리를 침범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일본에 살려면 저렇게 어깨를 접어 앉는 법을 익혀야 하는 걸까. 본인 어깨에는 안 좋겠지만 옆 사람은 참 편하네. 자신에게 주어진 1인의 공간을 최대한 넘지 않으려는 결의가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국제결혼을 한 친구들이 이야기해 주었다. 한쪽 부모님이 실례가 되는 말을 해도, 자식이 중간에서 "아, 오늘 입은 옷이 너무 예쁘다고 하시네~" 하고 대충 통역해 버리면 된다고. 서로 말이 안 통하니 배시시 웃기만 해도 된다고. 서로 명절이 언제인지 모르니 따로 연락할 필요도 없고, 통화해도 배우자의 부모님과 말이 안 통하니 헬로만 하면 된다고. 실제로 그랬다. 아, 이렇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라니. 문화나 관습이 내 맘대로였다는 말은, 언어도 내 맘대로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내 일본어가 맞는지 어떤지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고, 상대도 내 일본어를 고쳐주지 않는다. (케바케겠지만, 문화가 다르면 이런 간접 소통에서 오는 이점도 있을 것 같다.)
(저자가 가르치는 일본 학생들에게) 여러분, 저는 영어 공부가 집단에서 자신으로 초점을 옮기는 연습을 시켜준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특히 '공기를 읽는다'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동조 압력이 센 곳이잖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집단을 먼저 읽어야 하는 문화죠. 하지만 영어는 주어인 1를 넣지 않으면 문장을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일본어는 주어가 없어도 되지만, 영어는 꼭 있어야 해요. 좀 너무할 정도로 '나, 나 나!'를 외쳐야 문장을 시작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이렇게 새 언어로, 여러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집단의 공기를 읽는 건 일본어로 실컷 연습했으니까요.
네, 한국어는 일본어에 비해 극단적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욕도 슬픔도 직설적이에요. 올해 한국어를 잘하는 일본 대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욕을 할 때는 한국어로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일본어에는 그런 단어가 없으니까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내 감정에 맞는 새로운 단어를 발견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하나 더 갖는 거죠.
네, 저는 새 언어를 배우는 건 다양성을 몸에 착! 붙이는 거라 생각해요. 시선의 다양성, 생각의 다양성, 가치관의 다양성을요.
동료 그 누구도 몇 살이에요. 남자 친구 있어요? 같은 사생활에 진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묻지 않았다. 누군가 "아들이 이번에 고등학교 졸업해요." "내년에 결혼한 예정이에요." 하고 이야기를 꺼내면 그에 맞춰 축하 카드도 쓰고 결혼식에도 가곤 했지만,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몰랐다. 이웃 연구실을 쓰는 동료 선생님이 기혼자였다는 것도 몇 년이 지나고야 알았다. 나도 묻지 않았고, 선생님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 정보가 필요하지도 않았으니까.
돌아보면 그랬다. 이 나라를 걸어 다니다 보면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긴 하지만, '카악~ 퉤'는 들어본 적이 없다. 지하철을 타면 모두가 우산을 묶어서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고, 백팩이나 큰 가방을 앞으로 메서 다른 사람이 지나가기 편하게 했다. 어느 카페나 음식점을 가든 가방을 놔두는 바구니가 있어서 가방을 바닥에 두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리 붐비는 신주쿠역이라도 다른 사람의 어깨나 팔을 치지 않았고, 실수로 닿으면 바로 사과했다. (제발 길에서 걸으면서 담배 피우지 말고, 흡연하면서 침 뱉지 말고, 지하철에서는 가방을 앞으로 메주세요...)
초보 운전 마크도 저한텐 참 흥미로웠어요. 일본은 초보 운전 마크가 통일되어 있죠. 초록색과 노란색 방패. 이 마크는 법으로 사이즈와 모양이 정해져 있고, 면허를 받고 1년간은 의무로 차량의 정해진 곳에 부착해야 하잖아요. 이 마크를 단 차에 위협 운전을 하면 가중처벌을 받고요. 한국도 초보 운전 스티커는 있습니다만 일본처럼 모두가 같은 스티커를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초보운전"이라고 적은 종이를 붙이기도 하고, "저는 틀렸어요 먼저 가세요" 같은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기도 합니다. 붙이는 게 의무도 아니고, 그런 차량을 보호해야 할 법적 의무도 없어요. 저 역시 해외 운전 경력은 길지만 일본에서의 운전 경력은 없어서 1년 동안 이 초보운전 마크를 붙이고 다녀야 했어요. 다니다 보니 마크가 저를 지켜주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도 도입하면 좋을 법이라 생각했다. 운전 매너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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