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이라는 부제를 보고 읽고 싶어졌다. 현대 사회에야 비출산하는 여성도 많지만, 아이를 낳는 게 당연했던 과거에도 아이가 없었던 여자들이 존재했다면 그들은 누구였고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시작했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명료해졌다기보다는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엄마 되기'에 대한 공부는 계속해봐야겠다.
이제는 여자들이 선택해서 아이를 안 낳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게 맞나? 선택이라는 단어에는 전적으로 저출생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함의가 있다?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있는가?
"엄마인 여자와, 아닌 여자를, 이분법적으로 가르지 말자. 공동체의 육아를 지향하고, 내새끼와 니새끼를 극명하게 가르는 가족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결론인데, 지나치게 가족중심적인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건 평소 내 생각이기도 해서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이상적으로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내새끼는 내새끼고 니새끼는 니새끼인 세상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다. 한 명의 자녀를 키우기 위해 투입되는 개인의 에너지와 시간과 돈 등 자원이 여전히 너무 크다. 이걸 좀 더 공적 영역으로 넓게 바꿔가야겠지만 지난 몇 년을 봐도 얼마나 쉽지 않은지 보인다.
영화 <보통의 가족>을 보니 내새끼 사랑이 극한으로 가면 얼마나 인간이 끔찍해지는지 알 것 같다. 내새끼 소중한 만큼 남의 새끼도 소중합니다.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낸 세금을 공립학교에, 위험 상태의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에, 저소득층 가족을 위한 주 택에, 조기 교육 계획에 쓰는가? 애를 낳기로 선택한 건 내가 아닌데- 너희지.
과거의 여성,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내 시간과 네 시간, 내 아이가 아닌 네 아이, 내 선택과 네 선택의 대치 구도로 보는 이와 같은 사고방식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려줬다. 현재 부모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그럴 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로에게서 멀찌감치 물러나는 태도는 우리 모두를 고립시켰고 어머니와 자녀 없는 여성 사이를 갈라놓았다. 이러한 분리는 우리가 서로와 완전히 별개로 살아야만 타당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부모만이 짊어져야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할 과제로 여겨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닥친 환경, 정치, 문화의 위기를 헤쳐나가려면 말이다. 실라 헤티가 "어머니와 어머니가 아닌 여성 사이의 내전"이라고 부른 전쟁에서 한쪽 편을 드는 책을 쓸 뻔했다고 생각하면 흠칫하게 된다. 참호가 있다면 참호는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그 안에 함께 있다. 우리는 서로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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