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여성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ㅣ이미리내ㅣ정해영 역ㅣ천천히 무르익은 예술가

기로기 2024. 11. 19. 22:39

이 책은 영어 소설이다. 이미리내 작가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만 살았고 한국의 정규 교육을 받은 한국인 여성인데, 20대에 미국에 살다가 나중에 홍콩으로 넘어가서 모국어인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자신의 소설을 낸 것이다. 이 스토리를 알고서 어떻게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설을 냈을까, 그리고 그 소설이 어떤 점으로 인해 평단의 찬사를 받았을까 궁금했다. 소설은 한국의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여자의 인생을 다루고 있는데, 깊고 섬세하고 숙연하고 장엄하여 몰입해서 읽었다. 감정을 멈출 수 없는 글이다.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은 소설. 

 

책을 보니 번역은 전문 번역가가 진행했다. 처음에는 작가 본인이 한국어가 모국어인데 왜 한국어 번역을 본인이 직접 안 했을까 싶었다. 나라면 한국어판을 내 언어로 하고 싶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이미 자신의 소설은 영어로 완성이 되었고, 번역은 또 다른 영역이자 번역가의 몫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소설에 들어가기에 앞서 작가의 말이 나오는데, 그 부분은 한국어판을 기념하여 한국어로 작가가 작성한 것이었다. 인상적이었다. '천천히 무르익는 예술가도 있다'는 작가의 말이 좋았다. 
 

 

여자의 인생, 한국의 아픈 역사, 외국어의 매력(작가의 이력으로도, 소설의 내용상으로도) 등 다각도의 감상 지점이 있다. 

다섯번째 인생에서 내가 구해줬던 소년과 '나'는 재회한 적이 없었던 걸까...?

 

주인공은 흙 먹는 행동을 하는데 엄마는 이해해주고 아빠는 고치려 하는데 고치는 방식 또한 매우 폭력적이고 비과학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이 아빠를 죽이고 땅에 묻음으로써 부패한 살점이 흙과 섞이게 될 것이고 주인공의 완벽한 흙은 더러워지고 오염될 것이라는 점.

폭력적인 아버지도 나오고 사랑으로 가득한 아버지도 나오고, 행복한 결혼도 나오고 불행한 결혼도 나오고, 삶의 여러 모습을 담고 있다.

여자는 가임기가 끝나면 내 유전자를 지닌 애를 못 갖는데 남자는 가임기인 여자만 만나면 여전히 내 애를 가질 수 있다는 자연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짚어서 좋았다.


다시 흙을 먹는다는 건.. 채워야 할 무언가의 갈망이 있다는 걸까? 한동안 안 먹었었는데. 

 

역사 속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이름 없는 여자들의 수많은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작가의 말>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결과적으로 나는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영문학을 쓰는 일로 먹고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명 하고 똑똑한 교수님의 말씀이라고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또 나의 개인적 육감과는 별개로, 함부로 누군가에게 예술적 재능이 없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발전의 속도도 다르다는 것을 나 자신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아주 천천히, 조용히 발전하는 예술가도 있다는 것을 안다. 또 세상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해보면 의외로 되는 것이 꽤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자영과 나, 둘 다 눈물을 흘렸다. 깊은 동물적 차원에서, 나의 연약한 몸이 이 불가능한 상황을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몹시도 기뻤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서 거대한 슬픔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김 박사가 말했었다. 나는 갑자기라는 단어를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였던 이 노예 상태를 끝내는 것이 미군에게는 거의 눈 깜빡할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위안소는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쉽게 폐허가 되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고 내심 그를 보호하고 싶기도 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네 아버지에게 거의 매일 말하곤 했다. 당신 같은 남자를 남편으로 둔 내가 조선에서 가장 운 좋은 여자라고. 그러나 동시에 나는 네 아버지 또한 나를 아내로 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네 아버지 같은 남자는 이 미치광이의 세상에서 혼자서는 잘 살 수 없으며, 나 같은 누군가를 곁에 둘 필요가 있다. 선한 동시에 악한 여자. 누군가를 한없이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살인마저도 불사할 여자. 미치광이들의 언어를 아는 여자.

(루소) 하느님에 대한 나의 절대적인 믿음은 빠르게 해체되었다. 그러나 공동체로서 교회에 대한 믿음은 계속되었다. 조부모님의 교회 사람들은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가 대부분의 날들을 누워서 보내는 동안 우리 집을 자주 찾아와서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챙겨주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다시 일어서서 우리를 부양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내가 너무 오래 혼자 있으면서 슬픈 생각에 잠기지 않도록 저녁 식사에 초대하곤 했다. 위안을 주는 교회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면서, 나는 그들의 친절함에 강한 부채 의식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남을 도울 입장이 되면 선행을 나누는 것이 나의 당연한 의무라고도 느꼈다. 성경에 대한 나의 열정도 계속되었다. 성경을 진리의 원천으로 보는 것을 멈추자, 그것은 매혹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한 훌륭한 소설로서 나를 매혹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함을 더는 믿지 않았지만, 교회 사람들과 있을 때는 계속해서 좋은 기독교인의 역할을 했다. 그들에게 동조하는 척하는 것이 내게는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방법과 성경 구절과 가스펠 찬송가의 멜로디를 이미 알았다. 그리고 남몰래 신앙을 잃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기도하는 것을 즐겼다. 그것은 다른 모든 수단이 실패했을 때 나름의 위안을 주는 습관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결혼이 내게 아버지가 떠난 후의 종교 같은 것 아닌가 싶었다. 절대적인 믿음과 열정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계속해서 기댈 언덕과 위로를 주는, 습관과 의리로 지켜내는 우정 같은 것. 짜릿하지는 않지만 변함없이 만족스러운 것 말이다. 삶의 수단으로 삼기에 나쁘지 않아. 나는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내 아내와 나를 평범한 사람들로 생각하기 싫다.

(루소) 에메 아델은 결혼이 특별함에서 평범함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한때 그토록 특별하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진부함에 지나지 않음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지속적인 과정. 어머니가 부부 관계의 끝을 묘사한 방식과 많이 비슷하게 들린다. 당신이 한때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하다고 느꼈던 아버지의 모든 것들이 알고 보니 그저 지극히 평범한 바람둥이의 특징이었다며, 딱하고 한심하고 상투적이라고 표현했었다.

"가끔은 거짓말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냥 살아남기 위한 노력일 때도 있단다. 미치지 않기 위한 노력 말이야." 미희는 혼란스러움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계속 귀 기울였다.
"연주가 속이는 건 네 것을 훔치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건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감추기 위한 방식이란다. 상처를 보호해주는 붕대 같은 거지.
몇 초간 침묵한 뒤, 아버지는 미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그녀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 그는 너무 큰 동시에 너무 작아 보였다.
"미희야, 가끔은 말이다. 가장 큰 속임수, 그리고 가장 친절한 속임수는 속아주는 거란다. 그것이 상대에게 소중한 위안이 될 수 있단다, 아가야."
미희는 아버지의 눈에서 슬픔을 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속아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