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서울에 17년 살았고 성수동 회사에 다니고 45살에 은퇴를 꿈꾸는 여성인데 월 120만원을 최저생계비로 잡고 생활하려고 한다. 은퇴자금이 수십억인 사람 책도 보고 이렇게 쥐어짜서 최소 소비로 살겠다는 사람 책도 본 결론은, 이런 문제에 정답은 없고 나의 생활 수준과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가 중요하겠다는 것이다. 수십억 있다고 해서 노후 걱정이 없는 게 아니더라 그만큼 소비 수준이 높아서.
젊을 때는 분명 공짜였던 것들이 있다. 반짝이는 피부, 풍성한 머리카락, 오래 걸어도 부드러운 무릎 관절과 가끔 밤을 새도 크게 축 나지 않는 체력과 올곧은 체형까지도. 무료 체험 기간도 오래여서 30여 년 이상을 조금씩 기능은 떨어지지만 아직은 괜찮아, 하는 수준으로 누리며 산다. 그런데 가지고 태어난 내 몸이 이 모든 것의 내구성이 떨어졌다며 돈을 쓰라고 할 때가 온다. 오랫동안 당연히 누렸던 모의 이점이 사라질 때의 상실감은 예상보다 더 크다.
마음을 표해야 할 때 인색하게 굴면 그게 바로 소탐대실이다. 내가 절약하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를 사기 위함일 뿐이고, 돈은 도구에 불과해 또 벌면 되지만 소중한 사람은 항상 내 곁에 있지 않다. (돈은 또 벌면 된다. 있을 때 잘하자. 나도 이 주의다.)
상상해 보면 죽는 순간의 물리적 고통도 무섭지만, 더 나아가 세상에서 내가 잊힌다는 것이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충분히 부유해서 더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다시 일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지도. 얼굴도 모르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며 후손들이 그들을 기리게 한 것부터도 그렇다. 자서전이나 족보라든가 하는 모든 기록도 자신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나의 무언가를 남기고 죽고 싶다'는 바람을 종종 보는데 아직 나는 이 욕망은 잘 모르겠다. 살아 생전에 즐겁게 살고 싶지, 죽고 나서 뒤늦게 인정받는 예술가 같은 삶이 전혀 부럽지 않다.)
'독서기록 > 여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ㅣ최승범ㅣ남성 교사의 여성주의 공부 (2) | 2024.11.20 |
---|---|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ㅣ이미리내ㅣ정해영 역ㅣ천천히 무르익은 예술가 (2) | 2024.11.19 |
아래층에 부커상 수상자가 산다ㅣ케이트 가비노ㅣ이은선 역ㅣ인생과 책을 사랑하는 여자들 (4) | 2024.11.13 |
엄마 아닌 여자들ㅣ페기 오도널 헤핑턴ㅣ이나경 역ㅣ아이 없는 여성의 삶 (4) | 2024.11.06 |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ㅣ박정훈ㅣ남성이 말하는 여성혐오 (0) | 2024.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