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월급쟁이로 살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ㅣ최성락ㅣ50억 벌고 교수를 은퇴한 저자의 경험담

기로기 2024. 8. 15. 20:53

저자의 이력이 흥미롭다. 순자산 50억을 만들어 대학 교수직을 관두고 은퇴자의 삶을 사는 분이다. 50대라서 아주 젊은 파이어족은 아니지만, 저자가 말했듯 순자산 수십억 이상이 있는데도 일을 계속 하는 게 우리나라 중장년 대부분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런 개인 경험담은 매우 귀하다. 이 책은 어떻게 그 순자산을 달성했는가에 대한 책이 아니라, 그래서 은퇴를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를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아는 사람이 들려주는 얘기처럼 몹시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제일 크게 느낀 점은 '50억이 있어도 여유 있지 않다니...'였다. 어떤 생활 수준으로 얼만큼의 기대수명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정도의 액수는 아니라는 것. 써도 써도 돈이 줄지 않고 돈에 대한 어떤 의사결정도 쉽게 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자유'라는 것은, 극소수의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허상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 더더욱 장기적 안목으로 봐야 하고 계속 공부해야 한다. 10년 전 50억과 지금 50억은 다르다. 돈의 가치가 그만큼 많이 떨어졌다. 

 

저자랑 생각이 비슷한 점이 많아 반가웠다. 재력은 상당히 다르지만 비슷했던 점 :

- 은행과 카드사에서 겪는 황당함 (신용평가라는 게 진짜 신용이 아니라, 월급 있냐 없냐 수준이라는 것)

- 호칭이 사라짐 (저자 의견으로는 한국에서 이름 부르는 건 절대 안 된다 하는데, 성별과 나이에서 오는 차이 그리고 권위를 중시하는 학계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 경우에는 00님이라고 이름 부르는 것 완전 오케이다.)

- 일 연락과 관련 인간관계가 끊김 (당연한 건데, 돌아보니 과거에는 정말 카톡을 붙잡고 살았던 것 같다. 일을 떠나서도 계속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 시간이 남아돈다 (내 경우에는 책읽고 공부하고 이것저것 루틴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가긴 한다.)

- 자율적인 일상이 주는 기쁨은 익숙해져서 잘 못 느낀다 (매순간 기쁨을 느끼는 건 확실히 아니다. 퇴사 직후가 가장 기뻤긴 하다. 그렇지만 요즘도 문득 내일 출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나가기 싫을 때 안 나가는 게 가능할 때, 평일에 맛집에서 웨이팅 없이 편하게 먹고 여유롭게 다닐 때, 아무때나 원할 때 장기로 여행갈 때 등 자율성에서 오는 기쁨은 계속 있다.)

- 혼자 있는 것의 위험함 (저자는 사회와의 단절되어 혼자 방 안에만 있으면 인간은 망가진다고 하는데, 히키코모리 수준이 아니더라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모임, 여행, 본가 방문 등 스케쥴링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

- 남 탓을 할 수 없다 (최근에 친구들이랑도 얘기했던 주제인데, 회사 다니면 계속 탓을 하게 된다는 거. 니 탓, 상사 탓, 회사 탓이 끝이 없다고. 하지만 회사를 나오면 탓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냥 혼자 오롯이 책임져야 된다.)

-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한 생각 (아직 누가 나에게 큰 돈이든 작은 돈이든 빌려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만약 그런 경우가 온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둔 건 있다. 주면 줬지 빌려주는 건 절대 없다고. 돈도 잃고 우정도 잃을 거면 그냥 돈만 잃자. 돈거래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학계 내부의 지위 체계라든지, 교수 출신이 세운 연구소가 정말 연구를 빡세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라든지 잘 몰랐던 얘기도 듣게 되어 재밌었다.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볼 생각이다. 루틴에 글쓰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진짜 꾸준히 출간하셨더라. 루틴의 힘이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글쓰기는 계속 한다고 하면서 '이쪽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그리고 도박, 신비주의도 언급되지만 도박은 국내에선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하고, 신비주의는 자세히 나오진 않는다. 

 

글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공부를 하셨나 아니면 일본어를 배웠나 할 정도로 일본어 번역체의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책 내용 중 일본어 공부를 한다는 대목이 있어서 신기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야만 먹고살 수 있다면 회사에 종속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는 독립이지만 회사로부터는 독립이 아니다. 내가 바랐던 것은 따로 직장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는 능력이었다. 

나의 경험으로는 세 집 정도 임대를 주면 그중 한 집에서는 월세가 밀리는 일이 발생한다. 며칠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몇 달 밀리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월세가 100만원이 넘어간다면 밀릴 확률이 증가한다. (저자 본인 경험이지만 비율이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건물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느꼈지만 월세 받는 삶도 마냥 편한 자동화된 삶은 아니다.)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투자를 해야만 살 수 있는 삶으로 되돌아왔다. 파이어족이 되면서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는 걸 몰랐던 무지의 탓이다. (나도 예전에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지만, 뭘 새롭게 하려고 하면 기본적으로는 다 돈이다. 각종 문화 체험비, 입장료, 배우는 레슨비/교재비, 장비 구입비 등.)

뭔가 얻으려 뛰는 삶에 뭔가 이야기가 있는 거다. 지금 있는 걸 지키려고 하는 삶은 지키는 축구 경기처럼 재미가 없다. 이런 소극적이고 재미없는 삶을 추구할 수는 없다. 설사 크게 잃을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역시 투자는 부자가 되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하는 거였다. 그래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고 활력이 있다. 물론 그에 비례해서 걱정과 두려움도 커지지만, 그래도 그게 지키기 위한 삶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소극적인 삶보다는 적극적인 삶, 수동적인 삶보다는 능동적인 삶.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삶.)

있는 돈 빼먹으며 사는 게 이렇게 기분 나쁜 일인지 몰랐다. 많이 쌓여 있으면 좀 빼먹어도 아무 상관 없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최소한 생활비는 새로 들어오는 돈, 수입으로 충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곳간에서 계속해서 빼 쓰는 생활은 문제가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 싫은가 하면, 따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나를 생각할 정도다. (돈이 나가는 흐름은 무섭다. 잘 버는 시기에 그 수입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지나치게 낭비하거나 꺼드럭거리지 않아야 한다.)

난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 기준이라 할 만한 게 있다. 상대방은 돈을 빌려 가면 안 갚는다. 돈을 꼭 갚겠다고 하고 빌려 가기는 하지만, 안 갚는다고 보아야 한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앞으로 안 갚을 거라고 생각하면 결정해야 하는 건 한 가지다. 상대방한테 그냥 돈을 줄까 말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