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일인 생활 레시피 에세이'라는 책 소개 문구를 보고 일본인이 쓴 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일본에서 10년 이상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 레즈비언 여성이 쓴 글이었다. 글에서 성소수자임이 크게 강조되지는 않지만 숨기지도 않는다. 책을 다시 보니 번역가가 없었고 저자명도 닉네임 같은 필명이었다.
고독함과 힘겨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기대와 다른 타국의 사회 모습에 대한 실망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요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마음을 다잡고 일상을 가꿔나가는 차분한 글과 그에 어울리는 레시피다. 이 책을 읽고 나도 아주 옛날에 해보고 접었던 빵 만들기에 재도전해본다. 지금 반죽이 냉장고에서 발효되고 있는데 내일 굽는 시간이 정말 기대된다.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본다. 나를 위해 장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행위는 정말 자주 귀찮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대하려 노력해야겠다.
일본에 빠지게 된 여러 계기가 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랑하는 모습은 개인주의입니다. 주변인들의 지나친 간섭과 예의 없는 관심에 휘둘려본 적이 있다면 냉정할 만큼 서늘한 일본의 개인주의를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왜 머리가 짧은지, 왜 그런 옷을 입었는지, 뒤돌아서서 한 번 더 보거나 나중에 친구들과 흉을 볼지언정, 면전에 대고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여기 살 이유가 충분할 정도입니다. 지나친 개인주의와 체면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발생하는 사회 문제도 많지만, 그런 겉치레라도 할 줄 아는 게 차라리 낫다는 마음도 들곤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사적 공간과 관계에 대한 아무렇지 않은 침범이 빡세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게 무례함인지도 모르는 것 같은.)
저는 혼자서 먹고 마시는 자신에게 연민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혼자 먹는다고 좁고 구석진 공간을 찾은 적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불편해 칸막이가 있는 식당으로 간 적도 없고, 주위 시선에 주눅 든 적은 더더욱 없죠. 외톨이라서 혹은 고독한 감상에 젖어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아니면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고 생각하기 대문이빈다. 외롭기보다는 즐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은 기억을 나누는 것도 행복하지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 생각 등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작은 술집이든, 조금은 촌스러운 식당이든, 트렌디한 화려한 바든, 길에 서서 마시는 술집이든,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자기 취향대로 먹고 싶은 요리를 주문하고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돌아오는 것. 퇴근 후 슈퍼에 들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요리해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 그런 과정의 즐거움, 나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작은 뿌듯함,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자기 응원이 저를 더욱 '잘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저를 이렇게 살게 해준 곳이 바로 '일본'이기 때문에 지금 느끼는 애증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12월이 되면 고타쓰를 꺼내고 탕파를 준비하고 나베 요리를 합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고타쓰 대신 식탁을 뒀고, 탕파 대신 침대와 좋은 이불을 쓰고 있지만, 나베는 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무더운 여름이 낯설어질 정도로 추운 겨울이 또 찾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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