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ㅣ정희원, 전현우ㅣ교통지옥은 해소가능할까

기로기 2024. 8. 21. 00:36

노년의학자 정희원 님의 신간이고 수도권 교통지옥에 대한 책이라 흥미가 있었는데 마침 도서관 신간코너에 있길래 읽어보았다.

두 저자가 서로 교환일기를 주고 받듯이 글을 주고받으며 책을 완성한 모양인데,

나에게는 정희원 작가의 글은 요점이 분명하게 느껴진 반면 전현우 작가의 글은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행정에 대한 푸념이 많고 (그만큼 겪은 게 많아서겠지만)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느껴져 좀 아쉬웠다. 나의 독해력 부족일까? 예를 들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교통 설계에 관해 설명하려면 책 몇 권이 필요하다는 둥.. 그럼 이 책은 왜 쓴 건지..? 명절 통행료 면제 비판과 유류세 감면 비판에는 동의한다.

 

얼마전 경기도 집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친구가 퇴근길 광역버스에서 구토감을 느껴 도중에 하차했다는 말을 듣고 안쓰러웠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이겠지만, 매일 같이 경기-서울을 오가는 출퇴근길이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는 것에 대해 최소한 수도권 국민의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친구는 서울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다가 이사와 이직으로 경기도의 어느 시에서 다른 시로 출퇴근하게 되었는데, 서울과 다른 교통망을 실감했다고 한다. 경기도 내부에서 경기도의 다른 시로 이동하는 것은, 경기도에서 서울을 오가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고 했다. 서울에서 어디든 가기 편했던 건 '서울을 중심으로' 이어져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경기도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친구의 말을 듣고 그제야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 기대했던 것만큼의 명쾌한 해답이나 밝아진 미래상은 얻을 수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우리나라 교통과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66)'하차감', '똥차 가고 벤츠 온다' 등의 말은 모두 승용차가 인간의 미묘한 감정까지 건드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감정의 힘은 너무나 견고해 디젤게이트 따위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 듯하다. 하물며 수십 년 뒤에나 청구서가 날아들 건강의 붕괴, 앞으로 수백 년간 이어질 미래의 기후 붕괴라면 말해 무엇할까. 다차원적 위기를 읽어내려면 자동차의 비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아주 복잡한 자동차 주변의 사물에 이를 평가할 기준이 될 여러 개념적 틀과 정보를 추가로 덧씌워야 한다. 도시 시스템, 에너지 시스템, 다양한 재료 조달 시스템, 이들을 종합한 숙련 노동, 기후 안전성, 인체 역량, 시간 구조, 공간에 관한 권리 그리고 길 주변에서 이뤄지는 다른 모든 사람의 삶... 이에 대해 주입식 교육이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게 될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국 출발점은 자동차 산업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살피는 데 있다. 한 마디로 자동차 산업은 환상을 판다. 이 환상은 벤츠를 사면 당신도 '벤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관련 산업계는 심지어 금융의 힘까지 빌려 사람들에게 바람을 불어넣고 거품을 만들어낸다. 2010년대 들어 자동차 리스 금융 상품이 생긴 이후 '카푸어'가 다수 발생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카푸어를 양산하는 리스 상품의 구조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71)대중교통 요금이 낮아지는 일은 정확히 소득 재분배적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 돈을 어디서 가져오냐고? 부자들이 '거함거포' 자동차를 보유하고 운행할 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면 된다. 승용 자동차의 보유세를 차량 가액과 탄소 배출, 바닥 면적을 조합적으로 고려해 중과세하면 확실한 재분배가 보장된다. (싱가포르의 높은 자동차 관련 세금과 일본의 차량 구입 전 주차장소 확보 의무화 및 경차 선호 사회 분위기가 떠올랐다.)

 

120)학회 발표를 위해 2013년 이래로 매년 한 번 정도는 태평양을 건너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한편으로는 소형 전기차를 타고 채식 비중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만 반대로는 항공유를 물 쓰듯 태우고 있었다. 이후 먼 거리의 해외 학회 참석은 현재까지 그만두었다. ... '가급적 비행기 타지 않기'가 삶의 지침에 추가되었다. (대단하다는 말밖엔. 채소 식습관과 전기차 타기 등 친환경적 생활습관도 비행기 탑승 한 번이면 다 상쇄되어버릴 정도로 비행기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160)'사람들이 과밀화된 서울에서 벗어나 신도시를 향하면, 신도시의 국평 아파트에서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지난 40년에 걸쳐, 정부가 주장한 신도시 개발의 기본 가정이다. 그런데 지금 이 가설이 뒤집혔다. 평균적인 거대도시의 주민이 하루 두 시간을 출퇴근에 사용하게 된 현재 서울과 수도권의 출산율은 극단적인 수치까지 하락 중이다. 

 

191)검사는 적게 하고 생각은 많이 하는 일이라 진료를 하면 할수록 병원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 나는 구조다. 이런 일을 하는 노년내과 의사의 입장에서 철도를 바라보면 묘한 동병상련의 감정이 든다. 철도를 위시한 대중교통을 보급하고 유지하는 일은 사업주로서 돈을 버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 재분배적이고 탄소 감축에 도움이 되며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 건강에 좋은 일이지만, 근본적으로 운영 주체 입장에서는 돈을 쓰는 일에 가깝다. 다시 말해, 철도를 운영하는 주체는 돈을 어떻게 더 잘 사용하느냐를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들을 평가할 때 엄한 잣대를 들이댄다. 마치 의료 복지를 위해 돈을 쓰기 위한 조직으로 존재하는 공공병원이 적자를 낸다고 비난받거나,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제약물관리나 연령친화 의료시스템과 같은 노인 의학적 진료 시스템을 설립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노년내과와 철도의 유사점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구절이었다.)

 

194)자동차는 육식과 비슷하다. 과잉 소비는 건강에도, 지구에도 이롭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곧바로 삶에서 완전히 제거하기에는 상당한 실질적 어려움이 있다. 개인의 건강이나 시간 배분과 지속가능성을 포함하는 사회적 편익을 더했을 때, 현시점에서 자동차나 고기를 줄여나가는 것의 편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밥그릇을 뒤집어놓은 역-U형 곡선일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이 현실적으로 우선 시도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선에서 음식을 먹을 때 최대한 고기를 절제하는 '리듀스테리언'들의 접근처럼, 가능한 선에서 자동차 소비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210)20~30년 뒤에는 이동성이 떨어지기 쉬운 85세 이상 인구가 3~4배가 될 텐데, 사회적인 이동서비스의 접근성이 떨어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만 있어야 하거든요. 전국 단위면 대략 300~400만 명이 장기요양에 놓일 수 있어요.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전국민이 이동성의 저하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매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가속노화를 늦추는 습관을 실천해서 미래에 잘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고, 모두가 사회적 돌봄 요구가 생길 수 있는 사람을 줄이는 데 일조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개인들이 스스로를 교통의 '소비자'로 상상할 것인지, 혼잡도와 기후 위기의 책임을 나눠 갖는 시민으로 상상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일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스스로를 '소비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혼잡통행료에 대한 반발도 있었던 것 같고요. 개개인이 스스로를 교통 '소비자'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의 교통 환경을 만들고 책임을 지는 '생산자'로 상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통 문제는 의료 현실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큰 효과가 없는 영양제는 1년에 몇천억씩 시장이 생기는데, 신체 기능과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은 많은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추진이 어렵거든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더 비싼 차를 사는 데는 1년에 수조 원씩 지출을 해도, 대중교통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약간의 세금을 부담하는 건 저항이 크죠. 중앙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싱가포르의 교통 정책을 가능케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심리에 그대로 좌우되는 시장 논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편적으로만 보지 말고, 뭐가 진짜로 중요한지 잘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