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한국 요약 금지ㅣ콜린 마샬ㅣ미국인이 바라본 한국 사회

기로기 2024. 8. 13. 22:52

요즘 꽂혀있는 한 가지 테마가 '한국에 대한 이해'다. 주로 한국인이 한국인에 대해서 쓴 책이 많은데, 이 책은 한국에서 오래 살고 있는 미국인이 본 한국 사회 이야기라 책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곧장 읽어보았다. 내가 기대했던, 현대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깊이 있게 다루는 식의 글은 아니었지만, 일부 그런 글이 있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공부하게 되듯이). 어떤 말은 완전 공감되고, 어떤 의견은 새로워서 재밌기도 하고. 저자는 최근 유행하는 K팝이나 K뷰티로 인해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아니라서 더 희귀한 경우일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책은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볼 생각이다. 

저자가 직접 트위터에 올렸다는 서울을 사랑하는 43가지 이유를 보면, 서울이 살기에 편리(각종 인프라 접근성, 디지털의 발달 등)하고 치안이 좋은 도시이기는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서울을 사랑하기 힘든 43가지 이유라고 왜 없겠는가 싶기도 하다. 

 

한국어로 직접 책을 쓸 정도로 연마해온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인이 미국인이 쓰는 언어를 배우는 것도 늘 대단하지만, 미국인이 한국인이 쓰는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자료 접근성/체계성, 사회적 압력, 강제성, 영향력 등 여러 면에서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나도 외국어는 평생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영어와 일본어도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중국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항상 한 켠에 있다. 

 

 

 

하나의 외국어를 배우면 또 다른 하나의 자아가 생긴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내가 한국어로 쓴 글과 과거 영어로 써두었던 글은 사용하는 단어에서 사고방식 그 자체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르다. (공감된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직역으로는 한국어로 옮겨지지 않는 그 나라 특유의 표현방식이 많다. 특히 하나의 상황에서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서 각 나라의 차이를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외국어를 배우면 나의 세계가 넓어진다.)

한국의 역사가 어떤 의미에서는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인 동시에 1세기도 채 되지 않은 것이라는 점을 유념하라고 말한 적은 있다. (늘 나의 뿌리는 국사 책에서 배우던 그 시대까지 올라간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후자의 사고방식은 낯설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언제였는가를 기준으로 삼으면 1세기를 갓 지난 짧은 역사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이 그때부터 존재했다고 생각하게 되진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고 가다 보면 다윈의 <종의 기원>까지 말하게 되겠지만.)

도시학자들은 필요한 모든 것이 도보 15분 거리 안에 있는 지역을 '15분 도시'라고 부른다. 카페와 극장만이 아니라 백화점과 책방, 미용실과 병원이 모두 있는 신촌이야말로 대표적인 '15분 도시'다. 대부분의 미국 대도시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편리함이다. (미국에 살아보지 않아서 직접 느껴본 적은 없지만 어딜 가든 차로 이동해야 하는 문화인 걸 보면, 서울 도심의 도보 생활권은 굉장히 편리한 게 사실이다.)

미국 중산층에게는 결혼했으면 복잡한 도심을 떠나 교외의 단독주택에서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적어도 20세기 중반부터 단단하게 자리 잡은 인식이다. 그와 비슷한 한국 버전의 고정관념은 동이나 아파트 이름을 빼면 거의 똑같아 보이는 커다란 아파트 단지로 이사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미국식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나는 대체 언제 '은/는'을 사용해야 하는지, 언제 '이/가'를 사용해야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체념해버렸다. 그럼에도 한국어를 공부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리고 그중 뒷부분의 거의 10년을 한국에서 보낸 지금, 나는 강조점을 가끔 잘못 배치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사들을 충분히 신뢰할 정도로 쓸 수 있다. 아마 그건 이론적 지식보다 정확하고 적절한 예시를 여러 번 듣고 읽은 덕분일 것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설명보다는 실제 예문이 훨씬 유용하고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낀다. 많이 듣고 많이 읽고가 왕도인 것 같다.)

많은 미국인에게서 한 가지 안일함만 제거할 수 있다면 난 언어와 관련된 안일함을 선택할 것이다. 영화 자막을 읽지 않는 사람은 문화적으로만 스스로를 빈곤하게 만들지만 외국어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빈곤해진다.

사진기 대신 카메라camera로 사진을 찍고, 수준 대신 레벨level로 등급이 표시된 운동 클래스에 등록하고, 목록 대신 리스트list를 작성하는 등 '한국식 영어'가 기존 한국어 단어의 위치를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단어들을 '정확한'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미국인 성인 언어 학습자의 뇌는 고집스럽게 그 단어들을 미국식으로 발음하고 싶어 한다.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국말에는 영어가 많으니까 배우기 편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어렵다니!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낮 시간에 방영되는 유명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가 오랫동안 독서 코너를 진행해서일까? 미국에서는 독서 모임이 아줌마나 할머니만 참여하는 것이라는 굳건한 고정관념이 있다. 미국에 계시는 우리 어머니도 나와 통화할 때 독서 모임에서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신다. (이것도 몰랐는데, 책에서 저자가 한국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 갔다가 본인만 남자고 외국인이고 나머지는 전부 젊은 여성이었다는 게 재밌었다.)

영국 작가 제프 다이어는 "지식을 가지고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쌓으려고 책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한글로 된 책을 읽고 한국어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활동을 더 잘하고 싶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그러한 활동을 시작했다. (마인드가 참 좋다. 잘 하고 싶으면 일단 하자.)

미국에 살 때부터 다소 특이한 연습 방법을 고수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방법이란 내가 알아듣기 어려운 표현을 발견하기 위해 매일 아침 한국말로 된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단어를 하나하나 받아적는 것이었다.

내가 직접 쌓아온 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한국 문화에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 간접적인 경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사례일지도 모르지만 시와 같은 고도로 발전한 문학 작품은 물론 수많은 대중 매체도 외국어로 그 의미를 곡해 없이 그대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광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게 오히려 다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광고뿐만 아니라 인터넷 댓글도 읽을 수 없다면 어떤 사회를 살아가든 긍정적인 인상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일이지만 어떤 사회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기본적으로 그 사회의 성가시거나 부정적인 면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긍정적인 특징에만 집중한다면 자신에게 좋게 다가오지 않는 부정적인 것들과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비교함으로써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한 사회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불완전함 또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 여행을 가서 신나게 먹고 쇼핑하고 돌아다닌 뒤 호텔로 돌아와 뉴스를 켜면 그제야 이런 일이 있었구나 알게 된다. 아마 대부분의 여행객은 그 나라의 부정적인 면, 사회 이슈들과는 무관하게 관광과 소비만을 즐기다 돌아가기에 좋은 기억만 간직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한 나라를 이해한다는 게 이런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