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물욕의 세계ㅣ누누 칼러ㅣ환경을 생각하고 신중하게 소비하기

기로기 2024. 7. 22. 23:16

나는 쇼핑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옷 사는 걸 좋아한다. 감당도 정리도 못할 만큼 많은 옷을 쌓아두고, 무슨 옷을 샀는지도 모르고, 한 번도 입지 않고 태그도 제거하지 않은 옷으로 옷장을 가득 채우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옷은 정말 나에게 기쁨을 준다. 계절이 바뀔 때 (정확히는 바뀌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새로 내놓은 옷들을 구경하며 고를 때 행복하다. 취미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나의 옷에 대한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읽은 책이다. 쇼핑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내가 예상한 그런 책이 맞았다. 그런데 책의 방향은 점점 환경을 향했다. 이 책은 소비로 인해 망가지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자 쓰인 책이었다. 그래서 당초 나의 독서 의도와는 달랐지만,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쓴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키워드가 있다. 소비를 할 때의 도파민과 킥, 구별짓기, 군집본능. 특히 '킥'이라는 단어는 내가 쇼핑을 할 때 느끼는 일련의 감정을 잘 설명했다.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은 다소 산만하여 나와 잘 맞지는 않았다. 환경 문제라 더 그렇겠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아쉬웠다. 그렇지만 환경에 대해 다시 한 번 스스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였다. 한편으로는 내가 일회용품을 최대한 쓰지 않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고, 쓰레기를 적게 배출한다고 해도 세상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실효성은 정말 미미할 거라는 생각도 몰려왔지만 환경을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시스템도 변할 거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식당에서 테이블마다 종이컵을 산처럼 쌓아두고 물을 마시게 할 때, 카페에서 여전히 비닐로 하나하나 포장된 플라스틱 빨대를 음료 수만큼 줄 때는 언짢은(?) 마음이 든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받지 않고 내가 가져간 텀블러로 물을 마시고, 빨대를 쓰지 않고 컵에 입을 대고 마심으로써 일회용품 소비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사회의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도 카페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빨대에 담아주는 아이스 음료를 구입하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그러나 생각은 바뀔 수 있다. 

 

종이책으로 읽다가 반납기한이 되어 반납 후 밀리의 서재로 읽었다. 현암사라는 출판사의 책이었는데, 책의 크기와 질감과 폰트 등 여러가지가 내 스타일이었다. 요즘 어떤 책이 맘에 들면 그 책을 만든 출판사에서는 어떤 책들을 만들었나 쭉 보는 습관이 있는데, 현암사가 출판한 책 중에 읽고 싶은 책을 여러 권 찾았다. 읽고 싶은 책이 넘쳐나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요즘이다.

 

 

작가 카를 틸레센은 말하기를, 인플루언서는 "오로지 소비를 통해서만, 즉 그들이 무엇으로 화장하고,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먹는지 매일 보여주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리얼리티쇼, 유튜브, SNS는 사람들에게 슈퍼스타가 되는 무대를 제공했다. 고도로 선별된 라이프스타일을 대중과 공유하는 ..." ( 한때 인플루언서 일상/패션 채널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나의 쇼핑에 참고하기도 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광고와 돈벌이를 위한 플랫폼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강해져서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 마치 홈쇼핑 채널 같아졌다.)

 

행동생물학자 그레고르가 내게 말한, 즉 자신이 가진 것을 보여주는 행위가 또래 집단에서 매력을 높인다는 말과도 잘 들어맞는다. 바로 그 대화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었는데, 본래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을 만큼 부자인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눈곱만큼도 과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아닌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베블론의 유한계급론과는 배치되는 주장이네.)

 

더 적게 사고, 특별한 품질을 갖추고, 수선 가능성을 유념하고, 그리고 공정하고 친환경적으로 의미 있게 만든 제품을 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다시 가야 할 가장 좋은 길이다.

 

미국 승려 빅쿠 보디는 불교가 의심 없이 소비주의를 받아들였다며 이렇게 경고했다. "날카로운 사회 비판 없이 이루어지는 불교 수행은 현재 상태를 정당화하고 안정화시키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손쉽게 소비자본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 나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진정 우리가 모두 잘 살기 위해서는 이제 '나'만의 관점에서 빠져나와 공동체를 생각하고, 좀 더 인도적이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은, 연대감 없는 개인화로 인해 정치적 통합은 더 이상 없고 오직 "개인 사업가와 소비자 집단"만 존재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꼬집었다.

 

그 온라인 숍은 너무나 터무니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그리고 자기가 쓴 책들과 영상물로 백만장자가 된 한 여성의 끝없는 욕심이 어이가 없었다. 그것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버리기 철학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것(그리고 그것으로 소비의 악순환이 된 것)은 완전히 부조리하다. 아니, 이제 그녀는 사람들이 쇼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래서 완전히 정신 나간 것들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고 있다. 또다시 탐욕이 시장을 지배한다. 정리하기 트렌드가 단지 또 다른 소비를 부추길 뿐이라는 나의 의혹은 증명됐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정리의 여왕에 의해 선동되기까지 했다. (이건 국내도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에서도 나온 내용인데, 친구에게 처음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자낳괴'라는 말이 떠오르고 현실이 아니라 풍자소설 같았다. 곤도 마리에 이야기 맞다.)


내 돈을 원하는 기업들은 모두 법적인 처벌은 고사하고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계속 인권을 유린하고 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데, 도대체 왜 나는 세계의 정의와 건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갑 속에 넣어둬야 할까? (SPA 브랜드가 임금보장과 관련한 약속을 아직도 안 지키고 있다는 건 진짜 실망스럽고, 그게 어떻게 아직까지 가능한지 모르겠다.)

자신을 소유물과 새 상품의 구입으로 동일시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의 안녕에 언제든 난관이 된다. 소비는 단기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지만 '지나침'의 경계는 간과하기 매우 쉽다. 우리는 포기를 유익으로 이해해야 한다. 끊임없이 물건을 사들이지 않고, 최초의 쇼핑 충동에 굴하지 않으며, 쇼핑 킥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통장 잔고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도 그릇된 동일시의 예로 재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