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여성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ㅣ크리스티안 자이델ㅣ남자가 여자로 살아보고 쓴 책

기로기 2021. 10. 4. 10:44

남자의 바람기, 남자가 여자를 정복하고 끌어당기려 하는 것에 대해서도 남자가 진짜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 여자와 여성성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권력의 문제로 생각하는 저자.
그리고 저자가 남자로서 들려주는 남자의 속내는 도덕적이지 않았다.
그게 내면의 여성성의 추방에서 비롯된다는 것일까?

여자로 사는 것도 피곤한 일이지만 남자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고정된 성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렇게도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는 걸까?

내 안에 남성성이 있다면 그것을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나의 존재는 안에도 겉에도 있었을 터다. 내 좀재를 내적 가치에서 찾으려 했던 나의 자기이해가 궤변이었을까? 존재는 외적 가치와 연결되었을까?
어쩌면 내가 느끼는 창피함이나 두려움이 겉모습 때문에 나온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 안 깊은 곳에서 나온 게 틀림없다. 내가 남자로서 평소 경험했던 성역할의 모순과 나의 진짜 존재에서 나온 것이리라. 남녀의 분리는 애초에 없었다. 그것은 모순되는 삶의 철학과 이원론이 만들어낸 문화가 우리에게 강요한 것일 뿐이다.

결국 남녀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고 남자는 못 한다. 남자들은 정자를 제공하기 때문에 아기의 탄생에 대등한 몫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자가 평생 생산하는 엄청난 양의 정자로 봤을 때, 아기를 낳는 데 남자는 많지 않아도 된다. 반면 여자들은 많아야 한다. 아기 한 명을 (뱃속에서) 키워서 낳으려면 반드시 여자 한 명이 필요하다. 게다가 아기를 낳고 인류를 보존하는 큰 역할을 여자가 담당한다. 여자들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능력이 있다.
남자들의 역할이 높여지고 여자들의 역할이 폄하되는 일은 참으로 이상하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여자들은 홀로 아기를 책임진다. 한 남자의 몇 초간의 흥분된 활동이 한 여자에게는 280일의 임신 기간을 의미하고 종종 신체적 정신적 부담으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남자를 약한 존재로, 여자를 강한 존재로 묘사해야 마땅한 게 아닐까? 내가 여자로 사는 동안 거슬렸던 남자들의 행동들이 어쩌면 자기들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이기 위한 안간힘이자 방어였을지 모르겠다.

남자들은 여성성의 추방으로 잃은 것을 나르시시즘으로 보상받기 위해 글자 그대로 밖으로 투사를 해. 미인대회 말고도 중독에 가깝게 포르노를 보고 매춘을 하고 온갖 변태 게임을 하지. 그 속에서 여자들은 늘 상품화되고.
또 다른 도구는 호전성이야. 술, 과도한 승부욕, 금전적 성공욕구, 근육질 몸매로 운동고문, 덩치 큰 자동차 등

나는 남녀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가 생각했다. 내게 성별은 흐르는 파도에서 끊임없이 뒤섞이는 물거품 같았다. 모든 것이 그 안에서 표류하고 뒤섞인다. 사람은 그저 동참할 수 있을 뿐이다.


최초작성일 : 2017.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