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꼈지만 깊이 생각해보거나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던 것들이 글로 표현되어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정말 내 안의 큰 발견과 큰 깨달음과 시원함과 찝찝함을 동시에 준 책인 것 같다 ..
여학교를 나와서 이성애적 제도에 들어섰을 때 순진했던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그 제도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집착했던 다이어트와 식이에 대한 스트레스..
다른 친구가 나를 윙걸로 이용하는 것 같다고 했던 친구의 말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들이 어리고 예쁜(젊고 아름다운) 그리고 학력이나 직업은 모르겠는 여성과 결혼한 많은 사례에서 느낀 위화감..
남성이 승인을 부여하는 자의 위치에 있음을 몸소 느끼고 그것에 부응하기 위해 내 스스로를 달리게 했던..
타인의 외모 평가에 내 하루의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여성이 여성 상사를 더 기피하는..
공부를 하면서 어디까지가 유전적인 것이고 어디까지가 문화적인 것인지, 어떤 것은 여성 혐오이고 어떤 것은 아닌지, 어떤 것은 내가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것은 용납하면 안 되는지.. 자리를 잡아갔으면 좋겠다 어렵다
이 오랜 여성 혐오의 역사로 인해 나 자신이 남성 혐오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 ㅡ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 ㅡ를 '여성 혐오'라고 한다
남자가 남성으로서의 성적 주체화를 달성하기 위해, 여성 멸시를 아이덴티티의 핵심 깊은 곳에 위치 시키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여성 혐오다
성의 이중 기준은 여성을 두 종류의 집단으로 분할하게 된다. 성녀와 창녀, 아내/어머니와 매춘부, 결혼 상대와 놀이 상대, 아마추어와 프로 등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분법이다. 생식용 여성은 쾌락을 빼앗긴 채 생식의 영역으로 소외되고 쾌락용 여성은 쾌락에 특화되어 생식으로부터 소외된다
성도 연애도 결국은 타자의 신체에 접근하기 위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술은 넓은 의미로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일부이다
호모소셜리티 개념에 의하면 남자는 여자에게 선택되는 것에 의해 남성에 되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남성 집단의 정식 멤버로 인정됨으로써 최초로 남성이 되는 것이며 여자는 그 가입 자격을 위한 조건, 또는 그 멤버십에 사후적으로 딸려 오는 선물 같은 것이다
여자는 관계를 추구하고 남자는 소유를 추구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논해지는 남녀관계의 근본적인 젠더 비대칭성을 간결하고 탁월하게 표현한 문장
젠더나 신분의 차이가 변경 불가능한 운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는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다. 같은 인간으로서 공약될 수 있는 분모가 생김으로써(근대 산업 사회/남녀 공학 교육 시스템) 비로소 차별을 부당하게 여기는 심성이 생겨나게 된다. 성차별 그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나 근대는 비교에 의해 역설적으로 성차별을 강화하였다. "구별이 차별로 승격되었다." 이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은 끈질기게 차별을 구별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바보에다 별 볼 일 없는 여자와 왜 결혼을 했는지 되묻고 싶지만 남성 입장에서 보면 바보에다 별 볼 일 없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를 결혼 상대로 고른 것일 테다.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조롱하며 자신이 우위에 서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것이 목적일 테니까. 때문에 남자는 바보 취급 가능한 여자를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그런 여자를 한 명 확보해 놓는 것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시키기 위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아키하바라 사건의 K군의 인기남 욕망 역시 그런 여자를 하나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지 않았을까
학업 평가와 여성성 평가와 여성 그룹 내 평가의 관계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여성 세계는 이들 척도에 의해 분열되어 있다. 때문에 여성 세계는 남성 세계의 그것처럼 일원적인 가치 척도(돈, 권력)로 잴 수 있는 호모소셜한 집단을 형성하지 않으며 또 형성할 수도 없다
여성에게는 두 가지 가치, 즉 여성에게 인정받는 가치와 남성에게 인정받는 가치 두 가지가 필요하며 그 둘은 양립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있어 현대란 스스로 달성하는 가치와 타인 즉 남성에 의해 부여되는 가치 모두가 필요하며 어느 한 쪽만으로는 결코 만족될 수 없는 시대이다
여자를 성기로 환원하면서 동시에 그녀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자신의 성욕을 채울 수 없는 성욕의 자승자박 구조를 누구보다도 저주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남성 자신일 것이다. 이 속에 남성의 여성 혐오가 품고 있는 수수께끼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여자에 깊이 의존하고 있으며 또한 그 때문에 여자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남자. 그것이 바로 호색한이라는 이름의 여성 혐오적 남성이다
셀러브리티 남자는 고급 콜걸을 부르거나 모델이나 탤런트를 돈으로 사려고 하는데 그것도 자신의 성욕에 매긴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들은 부가가치가 있는 여성에게만 욕정함으로써 자신의 성욕이 평범한 남성의 성욕과 다르다(더 고급이다)는 것을 자신, 그리고 다른 남성에게 증명하려고 한다
남자의 성공을 나타내는 사회적인 지표는 아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돈이 얼마나 드는가이다. 내 성욕은 어지간한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내 성욕을 관리하는 데는 이만큼의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그런 아내를 가리켜 트로피 와이프라 부르기도 한다. 승리의 전리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귀부인들은 피부 관리나 패션 등 자신을 갈고 닦는 데 여념이 없다. 내가 바로 내 남편의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들은 나는 우리 남편에게 어울리는 여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하는데, 이걸 반대로 말하면 남편의 가격을 매기고 있는 것은 바로 나가 되는 것이다
매매춘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여성의 개별성을 소거하고 그 기호성에 발정할 수 있는 페티시한 성욕 메커니즘이 남성에게 성립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성의 미니스커트나 알몸, 궁극적으로는 성기와 같은 신체 일부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성욕이 있기 때문에 매매춘은 성립한다. 이것은 남성의 성욕이 짐승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남성의 성욕이 그만큼 조건에 제한된 문화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 = 여성의 존재 가치는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에 있다.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은 여자가 아니게 된다. 너무나 간단해 졸도할 지경이다
남성은 승인을 부여하는 자의 위치에 있다. 모순은, 그가 승인을 구하는 자에게 깊이 의존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여성 혐오란 그 모순을 간파한 남자들이 느끼는 여성에 대한 증오의 대명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자가 여성 혐오를 자기 혐오로 경험하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이 있다. 바로 예외적 여자가 되어 자기 이외의 여성을 타자화함으로써 여성 혐오를 전가하는 방법이다. 두 가지 전략. 하나는 특권적인 엘리트 여성, 즉 남자들로부터 명예 남성으로 인정받는 능력 있는 여자가 되는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이라고 하는 범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여 여성으로서 가격 매겨지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추녀 전략.
(사제관계의 여성과 결혼 후 관계가 대등해지자 다른 사제관계의 여성과 불륜으로 이혼한 남자) 그는 자신이 지도를 주며 우위에 설 수 있는 여성에게만 사랑을 느꼈던 것인데, 그걸 설명하기 위해 굳이 DNA나 테스토스테론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여자 역시 처음에는 지배당하고 지도받는 기쁨을 느꼈고 그리고 나서 졸업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피해자라고만은 할 수 없다
"평생 모든 힘을 다해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지킨다고 말할 때 지켜야 할 외적이란 종종 자신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다른 남성을 가리킨다. 소유를 다른 말로 표현했을 뿐인 지킴이라는 말이 사랑의 대명사가 되는 것이 권력의 에로스화이다. 남성의 사랑이 소유와 지배의 형식밖에 취할 수 없음을 이 개념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여성의 사랑이 종속이나 피소유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평생 당신을 따르겠어요 / 죽을 때까지 나를 놓지 말아줘. 좋아하게 되자마자 밀린 청소, 빨래, 도시락 만드는 여자의 행동은 주부가 하층 중산 계급의 무상 가사 노동자로 전락한 이후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귀족이나 부르주아 자제라면 여자가 도시락을 만들어오는 순간 하녀로서는 적합하지만 아내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성을 성적 개체로 삼아 내가 성적 주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을 때 비로소 동성 집단으로부터 남성으로 인정받는다. 즉 호모소셜한 집단의 정식 멤버로 참가를 승인받게 되는 것이다. 윤간이 성욕과는 무관한 집단적 행위이며 남성다움의 의례라고 하는 사실은 두 번 언급할 필요가 없다
성적 욕망의 객체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호모소셜한 남성 집단에 귀속되는 것을 통해, 그것이 설령 간접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권력 자원의 배분을 추구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 의한 선택을 둘러싸고 잠재적인 경쟁 관계에 놓이는 한 여성 간 호모소셜한 유대는 있다 하더라도 취약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질서는 여성의 질투가 자신을 배신한 남성에게 향하지 않고 같은 여성에게 향한다는 사실로부터도 유추할 수 있다
남자들이 종종 친구의 연인 또는 스승의 아내, 영주의 부인 등을 연모하게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세 기사도의 연애 대상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기혼 귀부인이었으며 그녀에게 가치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바로 그녀가 권력자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기사도 연애는 같은 여성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기사단이라는 호모소셜한 유대를 유지하는 장치로 기능했다는 것을 중세 역사가 조르주 뒤비가 밝히고 있다
여성 혐오는 역사적인 구축물이지만 너무나 깊숙이 신체화되어 있고 욕망의 핵심에 파고 들어가 있어서 그것을 없애려 하면 빈대 잡으려다 초삼간 태우는 즉 욕망 그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꼴이 될 수 있다
여성은 신체의 노예라고 하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저주하며 남성은 신체를 타자화한 대가를 죽을 때까지 지불한다. 남성의 신체 혐오는 남성임에서 오는 숙환이라 할 수 있을지도.
여성에게도 규격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공포와 고통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공포를 극복하여 규격에 달했을 때 이번엔 자신이 여성 혐오의 틀 안으로 꼭 들어맞게 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규격 외 여자들이 자기 혐오와 격투를 벌이며 연대하기 시작한 것이 페미니즘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자기 혐오의 보편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부정하고 있는 것은 '남성성'이지 개개의 '남성 존재'가 아니다
최초작성일 : 2017.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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