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여성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ㅣ이다혜ㅣ눈물 쏟으며 읽은 책

기로기 2021. 10. 9. 17:45

와닿는 구절이 많은 책이었다. 와닿는 정도를 넘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표현을 많이 만났다. 단숨에 읽었다. 책도 영화도 많이 보고 생각도 많이 하는 40대 비혼 여성이 쓴 책이다.

읽다가 어머니에 대한 글에서는 펑펑 울기도 했다. 내 어머니, 그리고 내 아버지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내가 여자라는 것은 숙명이다.

저자가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한 혼자 여행 / 내 취향 대로 책 10권 읽기 / 돈 벌기 세 가지 다 이미 해봐서 뿌듯하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나 자신의 경험과 사회에 대한 시선을 담아 책을 내고 싶다. 책에서 추천하는 것처럼, 매달 내가 번 돈의 조금씩이라도 내가 원하는 곳에 기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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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자신을 당신의 딸이라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 자신이 딸이었던 기억,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기억을 잃어가며 나이를 먹는다. 세 살 난 딸에게는 배꼽 뽀뽀도 해주고 매일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주던 부모들은 이제 늙거나 죽었고, 나 역시 그런 애정 표현은 해준대도 싫다. 그런데 그냥, 사랑하는 내 딸이다라는 확신에 찬 감정만으로도 아주 약간은 고통이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런 감정으로 생각했을까를 생각하면 조금은 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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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언어 사이,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 평생을 살고 생각한 요네하라 마리의 글을 읽다 보면,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곧 듣고자 하는 사려 깊은 자세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편견 없는 호기심으로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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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나에게 마흔 살의 나는, 타인의 시선에 멋진 것은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무 살의 나는 아마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구질구질한 건 싫다고, 그럴 거면 때려치우라고 마흔 살의 나에게 충고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저 쓰게 웃으며, 여기 사람 있어요, 하고 누구에게랄 것 없이 구조 요청을 하리라. 시야 밖으로 밀어내지 말아주세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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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것을 낮게 보고 화내는 것을 권력으로 해석해 버리면, 그 맥락에 여성성과 남성성을 자기도 모르게 대입해버리면, 위로 올라갈수로 얼마나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지로 자신의 성공을 가늠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성공한 여성이 남자보다 더 남자같이 일한다고 칭송받는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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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대신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근본적으로는 가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이 남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왜 여성과 남성이 함께 결혼을 하고 아이를 선택했는데 여자가 자꾸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선택을 지켜갈 수 있는가. 이것은 당연한 것도,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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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성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어했고, 또한 그 솓을 알고 싶어 하며 성장했다. 잠재적 연애 대상의 심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성 독자는 남성 독자와 같은 방식인 일인칭 시점으로 모험할 수 없음에도 거기에 자신을 이입하는 데 굉장히 능숙해진다.

그렇게 학습해왔기 때문이다. 늘 피해자가 생각하는 것이다. 왜 가해자가 가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왜라니. 마치 이유가 있으면 그래도 된다는 듯이. 그런데 이런 식의 사고는 남성 중심의 스토리텔링에 잘 길든 결과가 아닐까? 그런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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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여자가 등장하는 모든 전래 동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극강의 인내심으로 복을 받았다. 모든 모험은 그녀들이 어디로 떠나면서 시작되는 대신, 행운의 존재들이 그녀를 찾아오면서 비롯된다. 여성들은 투덜거리기보다 인내하는 쪽을 선택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최초작성일 : 2017. 8. 25.

덧1. 초록우산에 매달 기부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국내아동과 해외아동을 위해 꼭, 꼭 잘 써주시면 좋겠다.
덧2. 이 책을 읽은 후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이다혜 작가님은 꾸준히 출판을 하며 작가로서 계속 성장하고 계셔서 너무 멋지고 응원하고 싶다. 서점 신간에서 '이다혜'라는 이름 세 글자를 발견하면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또 책을 내셨구나! 정말 대단하시다! 라는 마음) 앞으로도 좋은 글 꾸준히 내주시면 저도 꾸준히 찾아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