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소설이다. 하지만 이 '읽어야지'가 흔히 그렇듯 그 시간이 오래 될수록 '읽어야지'로만 남는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전국민을 놀라게 한 기쁜 소식이 있은 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은 친구의 책은 아래 표지가 아니라 갈색의 예전 표지였다.
가부장제, 사회적 기준이라는 폭력과 억압
고작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갑분싸가 되고
아내라면 모름지기 이러이러한 역할을 해야 하고
인간이라면 고기는 반드시 먹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써서라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닌 폭력성에서 벗어나려면 영혜처럼 될 수밖에 없는 건가
자유로워지려면 그 정도까지 가야 하는 건가, 그만큼 어렵다는 건가
'정신줄'이라는 말이 있다. 그 줄 하나만 놓으면 인간은 미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끈을 다들 어떻게든 부여잡고 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게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회가 이 지경인데 안 미치고 대부분 어찌저찌 살고 있는 게 대단하다.
기본적으로 화자1(남편)과 화자2(형부)의 영혜를 보는 시선이 싫고 역겨웠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게 현실에서 그렇게 드문 케이스가 아닐 것 같다.
게다가 이 둘은 와이프의 자매에게 욕정을 느낀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었다.
형부라는 인간의 예술적 욕망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건지 계속 혼란스러웠다.
형부와 처제의 섹스라는 건 역겹고 비상식적인 동시에 어째서 금기인가 생각해보게도 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더 깊게 읽도록 도와주는 평론은 아직 찾지 못했는데 읽어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가부장제나 여성주의나 정상성에 대한 자각이 없고 사회적 기준에 충실한 사람이 이 책을 보면 어떻게 느낄까?
책을 가까이하면서 사회적으로 '이래야 해' '이게 맞아' 라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왜? 라고 질문하고 생각해보고
사회의 기본값이 아니라 나만의 값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너무 좋다.
경제적 자유를 넘어선 더 큰 개념인 정신적 자유에 있어 이 감각은 내가 계속 쌓아가고 싶은 감각이다.
당연히 월급 받아야지, 결혼해야지, 애 낳아야지,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좋은 여자지, 남들 하는 대로 살아야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왜? 라고 꼭 스스로 생각해보는 거.
나 자신에게 진실되게 그것을 납득시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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