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경제&투자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ㅣ김웅철ㅣ세상은 정말 많이 달라질 것

기로기 2024. 9. 20. 17:13

몇 달 전 서점에서 보고 꼭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다. 드디어 완독했다. 집안에 고령자 상황에 따른 대소사가 없거나 사회 변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우리나라의 고령화와 그에 따른 문제를 체감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먼저 초고령사회를 겪은 일본 사례를 공부한다면 다가올 사회 문제에 더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걸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여러 가지 사회 제도를 많이 알게 되었고 (슬로우 키오스크, 치매 카페, 반려동물 요양원, No기저귀 돌봄 등) 앞으로 실버 산업에서 비즈니스 기회도 엄청나게 많을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성인용 기저귀 판매량이 유아용을 앞지른지 10년도 넘었다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듯. 내가 어릴 때부터 겪은 사회의 모습에 대한 고정된 인식에서 벗어나 늘 상상력을 발휘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느낀다. 존엄사, 안락사, 연명치료거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더 활발했으면 좋겠다. 

 

 

단카이 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부머가 75세가 되는 2025년에는 일본의 치매 환자가 730만 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사람도, 자산도 함께 고령화하는 일본. 이제는 돈의 간병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8050 문제'가 골치 아픈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8050 문제란 80세 부모가 50대의 '고령 자녀'를 돌보며 사는 현상을 말하는 것인데, 생계 능력이 없는 중장년 자녀는 대체로 80대 부모의 연금에 의존해 살고 있다. 넉넉지 않은 부모 연금을 자녀와 함께 쓰다 보니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공멸할 위험성이 크다. (우리나라에도 이 문제가 심각해질 것 같다.)

시니어 대학원생의 증가 추세는 전체 대학원 진학자가 크게 감소하고 있는 현상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문부성은 퇴직 후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긴 베이비부머들이 주로 대학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원하는 꿈을 이루고 싶다' '젊은 세대와 교류하고 싶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라고. 단순한 인적 교류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 이외에 실제로 대학 과정을 통해 얻은 지식과 인맥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대학에는 학생들의 졸업 후 활동을 지원하는 서포트센터가 있는데, 이 센터를 통해 현재 9개의 졸업생 그룹이 재일 외국인 지원, 고령자 시설 지원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노인 대국 일본에는 팔순이 넘은 어르신이 1,230만 명이나 된다. 200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이후 십수 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이 많다 보니 사망자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유통그룹 이온AEON은 2016년부터 이온 라이프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온센터가 가족을 대신해 신원 보증인이나 긴급 연락처 응대를 맡고, 긴급 입원 시 절차를 대행해준다.

타워형 납골당의 등장도 종활이 낳은 비즈니스다. 이 납골당은 주차 빌딩처럼 번호나 카드를 대면 타워에 비치된 납골이 참배 부스로 자동 이동되면서 참배하는 방식. 핵가족화로 가족묘가 사라지고, 후대에 조상 묘지 관리를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 '납골 빌딩'을 출현시켰다. 일본에서는 같은 장소에 납골묘를 마련한 고령자끼리 교류하는 사람을 '묘 친구'로 부르는데, 저세상을 함께 준비하는 동창생쯤 된다. 묘 친구들은 매년 벚꽃이 필 즈음 한자리에 모여 시를 낭송하거나 애도식을 갖고 먼저 간 고인의 명복을 빌어준다.

다사사회가 본격화되면서 간병과 함께 임종도 사회가 떠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5년 초 요코스카시에서는 고독사한 노인이 남긴 쓸쓸한 생전 편지가 공개되면서 충격을 줬다. 시는 그해 7월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 고령자를 대상으로 사후 절차를 지원하는 '엔딩플랜 서포트 사업'을 시작했다. 시청에 담당 창구를 두고 고령자의 희망에 따라 장례업체와 생전 계약을 체결하도록 중개해준다. 비용은 20만 6천엔 정도. 시는 장례업체에 일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가나가와현 야마토시는 1인 세대 종활을 지원하는 전용창구를 설치하고 종활 컨시어지(집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종활 컨시어지는 장례, 납골 이외의 방 정리나 유품 정리, 상속 재산 처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손자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손자가 제일"이라는 의견도 있는 반면, "예쁜 손자도 3일 지나면 피곤하다", "손자와 놀아주는 교제비가 만만치 않다"는 등 과거에 비해 메마른 손자관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75세 이상을 후기 고령자로 부르는데, 후기 고령자의 단기적 급증은 의료와 간병비 등의 재정 압박과 간병 인력의 태부족 사태를 야기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책으로 탈 병원, 향 재택 방침을 세우고, 실천 방안으로 지역사회가 고령의 주민들을 함께 돌보는 이른바 '커뮤니티 케어(일본에서는 지역포괄 케어라고 불림)'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삼포요시 연구회의 리더격인 오구시 테루오 오구시의원 원장은 수상식 소감에서 "이제는 환자 치료를 의사 한 명에게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의료와 간병을 비롯한 다직종 분야가 공동으로 힘을 합쳐 환자에게 논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의사들은 잘난 척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전문직의 일을 방해하지 않고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어야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회는 "환자가 치료 도중에 헤매지 않도록 지역 전체가 하나의 병원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목표"라며 "최종 목표는 재택 임종이 자연스러운 마을이 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일본에서는 치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국민적 합의를 거쳐 2004년부터 정부 공식 용어에서 추방됐다. '치매'라는 말이 갖느 부정적인 어감(어리석다) 때문에 치매 환자들이 차별적 대우를 받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 공모를 통해 '인지증'이 치매를 대체하는 공식 용어로 선정됐고 이후 정부와 시민들의 노력에 힘입어 인지증이라는 말이 정착. 일본에서 인지증은 감추고 싶은 가족의 질병이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성 질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드레스는 일본 전국의 빈집 등 유휴자산을 리모델링해 지방에서 살고 싶은 이들에게 대여하는 서비스이다. 급증하는 빈집 문제 해결과 '다거점 생활'이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요즘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은퇴 후 지방 이주를 희망하는 시니어들에게 지방 거주 리허설용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전국에 어드레스 거처는 2022년 9월 기준 약 240개(방 500개)가 있다.

이듬해인 2016년 나카야마 씨는 안타큐에이AntaaQA라는 온라인 상담 서비스를 론칭했다. 안타큐에이는 의사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질환의 처치나 치료에 어려움을 겪을 때 온라인상으로 해당 분야 전문의와 상담할 수 있는 서비스다. 

성인용 기저귀 판매량이 유아용을 앞지른 것이 이미 2012년의 일이다.

<은퇴전문가 오에 히데키 대표 인터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노인이나 여성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개인이 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오래 일하고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것이다. 그러면 연금 수급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피크아웃 코리아>에서 나온 말과 똑같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일하기.)

Q. "직장인 뇌를 버려라"고 했다. 또 '회사 인간'에서 '일하는 인간'으로 변모하라고 강조했다. 직장인의 뇌란 무엇인가? 또 회사 인간과 일하는 인간의 차이는? A.직장인의 뇌라고 하는 것은 지시받은 것 이외의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현역 시절에는 자신의 주장이 회사 안에서 좀처럼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회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스스로 일을 한다면 아무도 지시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회사 인간이란 회사에 대해 로열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란 자신의 일에 로열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소설가 가키야 미우 인터뷰>
일본은 저출산의 영향으로 개호시설과 개호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 그래서일까, 정부가 노인 간병은 자택에서 알아서 해결하자는, 시대착오적인 방침을 주장하고 있다. 집에서의 노인 간병은 누가 담당하나.

백세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일본에만 10만 명이나 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 자신도 장수해서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과 늙고 병들어 몸을 가누지 못할 때까지 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동요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대기업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던 사람도 일단 퇴직하면 다 똑같은 처지가 된다. 퇴직하면 그 직위도 함께 사라진다. 취미 동호회나 지역 이웃 간 회합하는 자리에서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OO대학 출신'이라든가 'OO기업 부장이었다'든가 하는 얘기를 들먹이며 자랑에 열중하는 사람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누구든 길든 짧든 누워서 일정 기간 누군가의 수발을 받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부정한다면 정말 살벌한 세상이 될 것이다. 노인뿐만 아니라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약자를 보살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야 비로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감각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