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여성

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ㅣ후지타니 지아키ㅣ쉐어하우스의 모습

기로기 2024. 9. 8. 22:21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덕질하는 취미를 가진 친구 넷이서 쉐어하우스를 하게 된 계기와 일상을 소개한 책이다.

요즘 가족이라는 제도, 주거의 형태 등에 관심이 있다 보니, 책 제목을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책은 매우 현실적이고 소소하면서도 재미있었고, 결국 쉐어하우스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선을 지키는 예의,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정이 없다, 친밀하지 않다고 해석하기보다는 나를 위해 신경써주는 거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부부가 함께 사는 가족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결국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이니까, 가족이라고 편하다고 내키는 대로 막 대하기보다는, 친한 친구나 회사 사람들 앞에서는 하지 않을 행동이라면 함께 사는 사람 앞에서도 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으로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남과 함께 살면 함께 사는 남을 배려하는 것이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 그게 어렵고 힘든 사람이라면 혼자 사는 게 더 만족도가 높을지 모른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렇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좀 더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주거에 마음이 열리고 기회가 제공된다면 이러한 형태의 하우스 쉐어도 많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짧게라도 이러한 경험을 해보면 나에게도 새로운 시각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집을 합치는 건 만나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나들이를 가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기에 실천이 쉽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주거가 존중받고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인식변화를 제도가 잘 뒷받침했으면 좋겠다.

 

 

의무감을 느낄 만한 일은 늘리고 싶지 않다. 집에 오면 밥이 있다는 게 당연하지 않은 편이 마음 편하고, '저녁밥 있으니까 좋아' '기뻐하니 나도 좋아' 정도로 거리를 두고 음식을 대접하거나 대접받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다.

셰어 하우스 생활은 상부상조가 기본이다. 내가 마감으로 정신이 없을 때는 다른 멤버들이 집안일을 해준다. 게임으로 치면 항상 목숨이 세 개 남은 상태다. 목숨 세 개가 잘못되더라도 게임 오버가 아니라는 사실은 꽤 든든하다.

한여름이 되자 본가X4에서 채소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아, 왜 부모님들은 환갑이 넘으면 밭을 일구는 걸까.

평소 평정심을 잃지 않는 가쿠타가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이건 큰 사건이다. "뭐가 싫은지보다 뭐가 좋은지로 자신을 표현하자!"라고 종종 말했었는데, 뭐가 싫고 뭐가 거북한지에 대한 얘기로 열을 올리는 밤도 있다.

넷이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함께 있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단점보다는 누군가 함께 있다는 안도감과, 수입이 줄어도 저렴한 집세로 넓은 집에 사는 편안함 같은 장점이 훨씬 크다. 집세가 저렴한 건 정말 좋다! 게다가 우리 셰어 하우스 멤버들은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성격들이라 그 점도 참 다행이다. 늘 기분 좋은 사람은 없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혼자서 기분 나빠하면 되는 것이다.

셰어 하우스에 산다고 이야기하면 "나도 해보고 싶긴 한데,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비결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위생관념과 경제관념 그리고 성관념이 일치한다면 어떻게든 잘 지낼 것 같다고 대답한다. (친구랑 살다가 안 좋게 갈라서는 경우를 보면 주로 저 세 가지 관념 중 하나에 문제가 있어서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다르게 표현하면 결국 타인을 배려하느냐 아니냐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생활은 공유하지만 인생은 공유하지 않아서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하우스에서는 가족애나 연애 감정처럼 관계에서 오는 성가신 감정이 배제된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요컨대 가족, 혹은 연인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해방된 기분이다. 물론 그런 게 없는 관계도 많겠지만 난 의외로 관계성에 압박을 느끼는 피곤한 유형이라. 반대로 '가족, 혹은 연인이라는 관계를 확인받고 싶다, 즉 소속감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는 유형은 셰어 하우스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노후에는 친구들끼리 함께 모여 살자~'라는 얘기를 덕질 메이트뿐 아니라 덕후가 아닌 친구들에게도 했던 것 같다. 2018년 연말, NHK에서 방송했던 <독신 여성 7인, 함께 살아보니> 라는 다큐멘터리가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71세부터 83세까지 여성 일곱 명이 같은 맨션에 살면서 서로의 집을 오가고 협력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었다. 방송에서 '친구 근처에서 살기'라고 불린 주거 방식은 트위터에서도 이상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물론 이런 삶의 방식에 나도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하지만 아마 우리 세대에는 금전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연금도 퇴직금도 기대할 수 없을 테고, 노후에 맨션을 장만하다니 어림없는 일이다.

우리 하우스는 상부상조가 기본인데, 이것은 모두가 건강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건강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기약 없이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만일 내 몸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자기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나를 돌보는 건 원치 않는다. 요즘은 가족 간에도 병간호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당연한 모양이다. 따라서 훗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행정 기관이나 민간 기관에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모든 돌봄 노동을 가족에게 맡기고 그게 당연하며 그것을 수행하지 않거나 못하는 가족 당사자에게는 죄책감을 심어주는 행정은 이제 그만)

사람이 많으면 엥겔 계수는 낮아지고 음식의 질은 높아지는 것 또한 장점이다.

친구끼리 집을 구할 때 계약 같은 게 덜 까다로웠으면 좋겠다. 이건 정말 글자 크기를 두 배로 키우고 볼드체로 강조하고 싶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