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여성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ㅣ가키야 미우ㅣ딸을 결혼시키려는 부모의 대리 맞선기

기로기 2024. 9. 5. 22:16

가키야 미우 작가에 대해서 처음 알았는데, 여성의 관점에서 매우 현실적인 주제로 소설을 쓰는 작가인 것 같다. 제목만 보고 읽어봐야겠다 했던 <노후자금이 없습니다>의 작가였다. 이 책도 제목 때문에 안 읽을 수가 없었는데 컨셉은 28살 딸을 필사적으로 결혼시키려고 엄마가 대리맞선을 보러 다니는 것이 큰 줄기로, 결혼과 이혼을 둘러싸고 갖가지 상황의 인물들이 현실적으로 소개된다. '여자는 이러이러 해야 해, 결혼은 이러이러 해야 해.'라고 주장하는 책이라기보다, 지금 여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따라서 진보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정도? 

 

흔히 결혼의 이유가 되는 것(즉 결혼을 통해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왜 꼭 결혼이라는 형태여야 하는가, 왜 결혼과 출산은 한 세트여야 하는가(유럽은 이미 예외지만 한국과 일본에선 여전히 이 생각이 강하다 못해 압도적이고 지배적)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주제는 계속 공부해보고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다들 자기가 행복하고 싶은 방식으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남한테 자기 기준 강요하지 말고.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첫 음을 ㅋ->ㄱ, ㅌ->ㄷ 이런 식으로 다 바꾸는 표기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한글에 없는 소리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표기하면 되는데 왜 굳이 바꾸는 것을 표준으로 정했을까? chatGPT랑 대화도 해봤는데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체면 때문에 결혼하라고 하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네 노후가 걱정돼서 그러지." "노후? 엄청 먼 미래까지 벌써 걱정해주네. 노후면 아직 멀었는데." "너한테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래. 엄마 아빠가 영원히 사는 건 아니잖아. 친척 어른들까지 돌아가시면 의지할 사람도 없어질 테고. 지금은 젊고 건강해서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긴 인생 살다 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엄마 아빠는 오래 살아봐서 가족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도모미보다는 많이 알잖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손자가 생기고 그러면서 가족이 느는 거야. 태곳적부터 인류는 그렇게 맥을 이어왔어." (결혼에 대해 가장 대표적으로 하는 생각인 것 같은데, 결혼을 해서 노후에 대한 리스크 해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리스크가 생길 수도 있다. 왜 그 점은 간과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옆에 누군가 있으니 암튼 의지할 수 있다는 막연함일 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족 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즐거웠다든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든가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어? 그래, 없구나. 결혼한 친구와는 연락이 뜸해져서겠지. 아니면 결혼한 친구들이 도모미를 배려해서 즐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아니야? 그럼 도모미는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거야? 그저 언론에 떠도는 말뿐이잖아. 그렇게 결혼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만 기억하는 건 네가 미혼이라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 아니야?" (결혼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결혼 생활이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다. 결혼하는 당사자들끼리 잘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누구나 자기 가족이 1순위가 돼. 다른 데 쓸 돈이나 시간이 없어진다고. 도모미가 친구에게 의논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그 친구들이 들어주지 않을지도 몰라. 그걸 야박하다고 할 수는 없어." (굉장히 수동적인 생각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도 관계가 잘 유지되는 친구들도 있고, 미혼 친구들도 있다. 이것도 공포를 조장해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사람을 가두려는 발상 같아서 거부감이 든다.)

"아빠 회사에 40대 미혼 여자 직원이 몇 명 있는데, 평생 결혼 안 할 거라고 확실하게 마음 먹은 사람들은 미래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거든. 들어보면 평수는 좀 작아도 역에서 가까운 아파트를 사놨거나, 정년까지 대출 상환을 마치겠다는 계획을 세운 사람도 있지. 하지만 언젠가 멋진 사람이 나타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노후 계획이 없어. 해외여행이나 옷 사는 데 돈을 펑펑 쓰더라. 그러면서 아무 근거도 없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더라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거라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인생 설계를 해야 할 거야." (이건 주인공 아빠가 한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본인 스스로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것과 노후 준비를 미리 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후는 계속 길어질 것이다.)

"하지만 결혼하면 시간제 일자리도 괜찮지 않아?" 지극히 바른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도모미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엄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요즘엔 여자도 벌이가 없으면 위험해. 내 친구 야마시타 미코 기억나?" (결혼한다고 회사 관두는 사람, 회사 관두려고 결혼하는 사람, 나중에 후회하면 늦는다. 결혼을 위해서 경제력 포기하지 마라. 경제력은 단순히 경제력이 아니라 생존권이자 발언권과도 연결되더라.)

결혼한다고 해서 평생 편안하게 살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런 것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실제로 지카코의 친구 미스즈나 언니 세키코처럼 가까운 사람 중에도 이혼한 사람이 있고, 불의의 사고와 병으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확률로 보면 그런 건 여전히 드문 사례여서, 그런 일이 하필 내 딸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지카코는 자신도 모르게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런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는데도.

나이와 외모는 여자에게만 해당하는, 허물 수 없는 벽이다. 남자들은 의사나 IT 기업 사장 같은 근사한 직업 혹은 재산으로 그 벽을 허물 수 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같은 여자로서 심사가 뒤틀린다. (이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안 바뀔 것 같다. 아닌가, 먹고 살기 팍팍해질수록 남성 중에도 나이와 외모를 앞세워 결혼으로 신분상승하려는 케이스가 늘어나려나..?)

애초에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 살면서 무언가를 선택한 결과일 뿐 아닌가. 참고 견디며 억지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잘난 척하는 풍조가 이상한 것이다. (참고 견디며 살고 있으니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라도 하고 싶은 심리 아닐까..? 이혼에 낙인 찍는 문화 사라져야 한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간파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아이가 생기면 어떤 남자라도 아내와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리나 자신이 노력가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듯, 리나의 친구들도 모두 성실하고 근면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 큰코다친다. (슬프지만 사실인 듯)

"남편이나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상상해보면..... 월급도 여가도 나를 위해 마음껏 쓸 수 있는 거니까, 음. 뭐 나름대로 인생을 즐겼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정년이 코앞에 닥치니까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겠더라고. 한 번뿐인 인생, 다른 것에 흔들리지 않고 혼자 오롯이 즐기며 살아도 좋지 않을까 싶어. 물론 결혼한 걸 후회하는 건 아니야. 오해하지 마."

에미가 보기에 나는 아무래도 고생 모르고 산 여자의 범주에 드는 것 같다. 고생은커녕 질투가 날 만큼 복 받은 인생 같을 것이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듯, 친구나 친척들 모두 비슷하게 살아왔다.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른 계층과는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그렇게 격차는 굳어지고 점점 더 벌어지는 게 아닐까. 그 증거로, 나는 에미처럼 사는 사람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좁은 세상에 산다. 그렇다면 다른 계층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상을 뼈저리게 느끼기 어렵다. 정치인 2세나 3세나 서민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고 서민과 동떨어진 정책을 펴는 이유를 새삼 알 것 같았다. (에미라는 여성은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돈 보고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성과 결혼한 케이스다. 끼리끼리 어울리기 때문에 이럴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집에 시집보냈다고 안심했더니 친정 엄마를 무시하다니. 이런 일이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걸까? 틀림없이 유키코는 시집을 가면서 말투를 바꾸고 행동거지도 바꾸었을 것이다. 돈이 있으면 외모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격표를 보지 않고 쇼핑할 수 있는 신분이 됐는데, 고생해서 자신을 키워준 친정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싶은 생각은 왜 들지 않을까. (아비투스가 다른 엄마를 의도적으로 멀리 하는 이런 경우가 드라마 말고 현실에 진짜로 있을까?)

"왕언니 친구 중에 전업주부인 사람들은 모두 남편들이 연봉이 높아서 아내들끼리 멋 부리면서 놀러 다닌대. 왕언니는 그 친구들을 자기 부모님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서슬 퍼렇게 헐뜯더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자로서 졌다는 열등감이 있는 게 아닐까? 자기가 우월하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나쁘게 말할 리 없잖아." 음, 그럴지도 모르지." 그 마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여자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여자 몫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다.' 그런 해묵은 사고방식에서 아직도 해방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일본 사회구조가 구태의연하기 때문이리라. "나로서는 좋아하는 왕언니가 좀 더 느긋했으면 싶어. 돈도 있겠다, 일도 잘하겠다, 휴가철마다 하와이로 떠나겠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잖아. 그럼 전업주부를 보면서도 독신인 내가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그러네." "왕언니가 그랬다면, 나도 결혼 같은 거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왕언니는 결혼과 출산 경험이 없다는 것에 계속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그걸 보고 나는 역시 결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도모미의 말에서 걸리는 게 있었다. 결혼을 해야겠다가 아니라 해봐야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인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강요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왕언니도 워낙 시달려서 저러는 거 같다. 아무리 자기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해도 결혼과 출산이 없는 여자의 인생은 어딘가 부족한 것, 잘못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