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여성

인생샷 뒤의 여자들ㅣ김지효ㅣ기대를 뛰어넘은 책

기로기 2024. 2. 27. 16:09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를 뛰어넘은 책이다. 똑똑한 젊은 여성이 쓴 글은 이렇게나 재밌고 와닿는다.

제목에서 유추되듯이 SNS 특히 인스타를 통해서 젊은 여성으로 살면서 겪는 갈등과 모순과 진짜 미묘한 감정들을 캐치하고 깊게 통찰한 책이다. 청년 여성들이 얼마나 본인 감정과 인생을 SNS에 스스로 내다바치고 있는지 적나라해서 책에 나오는 광적인 수준으로 인스타에 집착한다는 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인생샷을 비판하는 책이 아니고 굉장히 입체적이고 풍성해서, 너무나 생생한 여자들의 생각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작가랑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똑똑하다. 현실의 여자를 연구하는 젊은 여성학자라서 앞으로의 저술도 기대된다. 작가 본인은 보수적인 개신교인이었는데, 페미니즘을 접하고 세계관이 바뀌고 여성학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원 논문을 발전시켜 책으로 내신 것 같다. 만약 논문으로만 머물렀다면 아마 내가 몰랐을 테니 책으로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갑다.

 

내가 살면서 느낀 선명한 감정이지만 언어화하지 않았기에 흐릿한 것 같았던 것들을 명확하게 끄집어내준다. 준거집단과 소속집단의 간극이라는 차원에서 현재 내 입장을 대입해 생각해볼 거리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 나에게는 그 간극이 크지 않은 것 같다. 

 

책의 말미에 '갈팡질팡'하면서도 나아가고 있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도 너무 좋았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이기에.

 

 

(앞부분 체크한 건 종이에 써둔 듯함.)

 

138)현대사회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문화인류학 연구자 김현경은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추상적인 선언이 아니라,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구체적인 대접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단순히 나를 예뻐해달라는 유치한 욕망이 아니라 안전과 고립, 그리고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매 순간 타인이 나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나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고 내가 사랑받을 만한(계속 살아갈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확인한다. 상대를 인정하거나 차별하는 의례는 숨 쉬듯 일어난다. ... 찰나에 이뤄지는 눈빛 교환만으로도 여성들은 자신의 자리가 있거나 없다는 점을, 어쩌면 그 눈빛을 보낸 이보다도 빠르게 눈치 챈다. 

 

143)사람들은 자신이 생래적으로 소속된 집단, 혹은 폭력적인 집단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와 탈출구를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지난 집단에서 자신이 보인 과오를 셀프 피드백한 후, 수정 사항을 반영한 모습을 새 집단에서 선보인다. 이것은 개인에게 분명히 해방적인 측면이 있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들과도 깊게 관계 맺지 못하는 한계로 이어질 수 있다. 너무 많은 만남의 기회가 열려 있는 상황에서는 특정한 집단과 관계 유지를 위해 헌신하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가는 데 시간을 넉넉하게 쓰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품을 환불하듯 실망스러운 관계를 손절한다. 

 

171)차별의 가장 나쁜 점은 삶의 내용인 시간을 빼앗아간다는 데 있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어떤 트랜스젠더 청소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수술 후로 미루며 일상을 유예한다. 어떤 지방대생은 명문대 편입에 성공한 후에 시작될 '진정한' 대학생활을 꿈꾸며 이를 악물고 공부한다. 어떤 여성은 다이어트, 성형 등을 통해 아름다워진 후에 세상에 나가겠다고 다짐하며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다. 사회적 약자는 정상성을 획득한 후에야 남들 같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으며 현재를 무한히 유예하는 사람들이다. ... 여성들은 사진과 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분열했다. 사진을 준비하고 찍고 고르고 보정하고 검증받고 업로드하고 또다시 비공개로 돌리는 동안,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낮과 밤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174)연애 프로그램은 예능의 외피를 띠고 있지만 실은 남성의 시선을 학습시켜주는 교육방송의 역할도 한다. ... 예쁜 여자와 예쁜 여자를 보고 감탄하는 남자, 예쁘지 않은 여자와 그 여자에게 관심 없는 남자를 보여준다. 아름다움의 효과는 아름다운 여성을 봤을 때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 발생한다. 여성들은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남성들의 시선을 학습했다. (이게 2012년에 나온 논문 속 내용이라니)

 

207)인생샷은 여성들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첫째는 개인적 차원에서, 사람들이 "페밍아웃"을 들은 후에도 자신에게 여전히 매력을 느껴 쉽게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인스타에서의 '팔로워 취소'는 온라인에서의 관계 단절을 넘어 오프라인 관계의 변화로 이어진다. 또래 집단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매력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아름다움은 그중에서도 단연 힘이 센, 페미니스트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일부 '상쇄'할 수 있는 자원이다. 두 번째는 운동의 차원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전시하는 것이다. 성차별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구조적 차별을 열등한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전략을 자주 사용한다. 네가 못생겨서, 멍청해서, 무능해서, 뚱뚱해서, 남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미움받은 것인지 결코 성에 따른 차별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은 차별의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 무능이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변수를 모두 소거해야 한다. 

 

212)메갈리아 외부에서 남성에게 외모 강박을 되돌려주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내부에서는 과연 여성의 외모 꾸밈이 주체적인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남성에게 외모 억압을 덧씌우려는 시도는 여성을 자유롭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에서 외모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230)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귀여움, 청순함, 예쁨, 섹시함 등으로 가치를 평가받는다. 여성 또한 이런 기준을 내면화하기에 다른 여성들을 남성적 기준으로 평가할 때가 많다. 여자친구들을 인정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에 여성간 갈등을 '질투'로 폄하하거나 심지어 여성에게 미움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평소에는 남자친구를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두다가 헤어졌을 때 잠깐 의존하는 상대로 이용하는 일도 있다. 그간 여성들의 관계는 너무 자주, 너무 쉽게 무너져왔다. 

 

263)인스타그램은 이곳에 게시되는 이야기들이 '페미니스트인 나'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문제로 귀결되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타인의 반응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그에 맞게 메시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은 나를 전시하고 증명하며 타인에게 인정받는 문제와 뗄 수 없이 얽히게 되었다. 서로 다른 상대를 보고 있던 탈코르셋 여성과 인생샷 전시 여성은 자신의 이미지를 고민하는 지점에서 한 곳으로 모였다. (정말 아이러니한데, 인간은 인정 욕구가 강한 동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나?)

 

270)문제는 인스타에서 페미니즘이 정치성을 상실했음에도 여성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소재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성들은 '확실한' 불이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기에, 개인은 운동에 기여하거나 헌신한다고 느끼기 쉽다. 실제적인 변화의 폭에 비해 여성들이 소진되는 정보가 너무나 큰 기이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페미니즘은 무엇을 하려는지보다 페미니즘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꺼내는 개인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생긴다. 

 

284)SNS는 일기장이나 사진첩 같은 개인적 아카이빙의 영역부터, 단체 카톡방과 수다방 같은 친밀성의 영역, 심리 상담실이나 감정 쓰레기통 같은 정서적 안정의 영역, 명함이나 포트폴리오와 같은 자기 홍보 및 노동의 영역, 정치 토론장이나 길거리 집회장과 같은 정치의 영역까지 모두 포괄한다. 이 곳은 공과 사를, 일상과 정치를, 오락과 토론을, 과시와 소통을, 친구와 대중을, 시민의 정치 참여와 생활인의 일상을 뒤섞는다. 

 

290)일을 열심히 하는 여성은 가정을 돌보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에 충실한 여성은 남편의 밥벌이에 빌붙는 의존적인 여성으로 여겨진다. 똑똑한 여성은 남성의 자리를 뺏거나 '공정'을 해치는 특혜 입은 존재로, 멍청한 여성은 무능한 '짐'으로 여겨진다. 예쁜 여성은 외모에만 신경 쓰느라 능력 개발과 내면의 성장에는 게으른 이로, 반대로 외모 관리에 공들이지 않는 여성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게으른 이로 여겨진다. 여성은 똑똑하되 '순진'하고, 유능하되 적당히 맹하고, 청순하되 섹시하고, 조용하되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 여성은 여성 같아도 남성 같아도 비난받는다. 이것은 인간의 기준이 남성으로 설정돼 있어 발생하는 문제이기에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292)페미니스트의 이미지가 화려하고 멋진 것이 될수록 그것을 꿈꾸기 어려운 여성들은 거리감을 느낀다. 멋진 여성들은 자신이 이 정도 지위에 올라도 '여전히' 차별받는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보는 여성들은 '이 정도로' 예쁘거나 똑똑해야만 페미니스트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 지위를 활용해 성차별의 실재를 주장하고자 하지만, 바로 그 지위 때문에 성차별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296)사실 여성들이 완벽한 모습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의 결과이기도 하다. 권력자에게는 그가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이해받을 서사가 존재한다. 우리는 약하고, 아프고, 가난하고, 못생기고, 뚱뚱하고, 도박과 술에 중독되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의 '인간다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들을 안쓰러워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반면 여성은 바늘귀 같은 기준을 통과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여성에게 쓸모와 완벽함을 강요하는 일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휴머니즘 어쩌고 하면서 해선 안 될 짓을 포장하고 옹호하는 문학이 싫습니다.)

 

312)세계'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게 맞는지 헷갈려 하며, 이쪽에서 받지 못한 돌봄을 저쪽에서 받고 이쪽이 후진 기준을 저쪽의 기준으로 대체하며, 너무 비장하게 선을 긋지도 너무 편안하게 타협하지도 않으며, 모든 것을 정치로만 환원하지 않고 그렇다고 모든 것이 정치와 무관하다고 믿지 않으며, 때로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를 미워하고 또 때로는 현실에 매몰된 여자들을 미워하며,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얼굴과 새롭게 알아갈 얼굴을 교차해 마주하며, 그렇게 서로를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증거로 여기는 악순환을 끈흥며,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아슬아슬해서 오히려 지속 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세계들 사이에서 여러 참조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생존 조건이자 운동 전략이 될 수 있다. 사실 '갈팡질팡'은 이미 정해진 결말이기도 하다. 성차별적 세계의 구성원인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무결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여러 세계 사이를 헤매며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