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존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언젠가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다. 어느 날 친구가 인생이 허무하다고 토로하길래, 그럼 같이 이 책을 읽어보자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곱씹으며 읽게 되는 책이라 한참이 걸려 완독했다.
제목처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지'를 내내 얘기하며 답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고, 살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면 좋을까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인생이 허무하다던 친구는 이 책을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욕망이 너무 많아서) 인생의 허무를 크게 고민으로 느끼지 않아온 내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에필로그는 에필로그다우면서 참 좋았다. 홀로 하는 산책 예찬.
10)인간의 선의는 답이 아니다. 선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답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이들에게 인간의 선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간의 선의는 선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끔 주어지는 선물이 되어야 한다. 의미는 답이 아니다. 의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답이다. ... 인간에게는 희망이 넘친다고, 자신의 선의는 확고하다고, 인생이 허무하지 않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103)관건은 정해둔 목표의 정복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선생이 되고 나서 공부를 지나칠 정도로 치열하게 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왜 그토록 열심히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공부하는 순간이 좋아서요. ... 언제 올지 모르는 영광된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인간은 우연의 동물이며, 순간을 살다가 가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하는 간명한 대답이었다. 삶을 연주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대답이었다.
122)이미 이루어진 것을 소원으로 빌기. 그것이 내가 노년에 기대하는 즐거움이다.
157)노동을 없애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노동의 질을 바꾸는 것이 구원이다. 일로부터 벗어나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즐길 수 있어야 구원이 있다. 공부하는 삶이 괴로운가? 공부를 안 하는 게 구원이 아니라, 재미있는 공부를 하는 게 구원이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게 괴로운가? 사람을 안 만나는 게 구원이 아니라,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구원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좋다)
208)현실이란 인간 정신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인다. 누구의 관점과도 무관한 '순수한' 현실은 없다. 타인, 권력자, 혹은 정부가 하는 가스라이팅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 길은, 어디에도 없는 순수한 현실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 순수한 현실이라고 가장하면서 사람들에게 해대는 가스라이팅. 그것이 바로 이데올로기다. 물리적 폭력이 통제되고 있는 정치 세계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가스라이팅이 진행 중이다. (내 세계관과 일치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믿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모든 게 상상의 산물.)
218)이 세상이 하나의 가치나 기준으로 수렴되는 획일적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경쟁이 격화되다 보면 삶의 전 영역을 제로섬 경쟁 원리가 작동하는 곳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다원적인 곳이며, 자원 역시 다원적이다. 제로섬 경쟁 밖에 없는 영역도 있지만, 제로섬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도 있다. 리베카 솔닛 왈 자본주의적 희소성 개념에 집착하지 말라. 희망, 자신감, 정의 등 비물질적인 가치는 양이 무한하다. 누군가 더 누림에 의해 내 것을 빼앗길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여성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줘도 남성이 누리는 것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더 자유를 누리고 존중을 받는 것을 남성들도 희망했으면 한다. (가끔 특정한 영역에서의 실패로 목숨을 포기하는 사례를 접할 때, 그들의 세상에는 오직 그것 뿐이었기에 이제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고 느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고, 진심으로 사람들이 세상에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을 공유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238)건강과 활력을 유지하려면 자신의 사고방식에 정면 도전하는 비판적인 존재를 환영하는 것이 좋다. 기존 가치와 불화하는 이질적 존재를 환영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적마저 환영하는 것이 좋다. 그러한 이들이야말로 자신의 지속적이고 건강한 생존에 필수적인 긴장과 자극을 제공하는 존재들이니까. 비판이 없으면 긴장도 없고, 긴장이 없으면 퇴화는 불가피하다. 관건은 그러한 비판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공격과 위협으로 밖에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266)<할머니의 팡도르>는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은 삶에서 달콤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 그 달콤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죽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에게 달콤함의 레시피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세 가지가 사람이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위안의 거의 전부다.
'독서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믹스처ㅣ데이비드 라이크ㅣ인류의 기원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0) | 2024.03.02 |
---|---|
역노화ㅣ세르게이 영ㅣ믿기지 않는 미래가 올까 (0) | 2024.02.26 |
가족각본ㅣ김지혜ㅣ가족이란 무엇인가 (0) | 2024.02.23 |
스토너ㅣ존 윌리엄스ㅣ토론하고 싶은 소설책 (1) | 2024.02.21 |
고통 구경하는 사회ㅣ김인정ㅣ섬세한 저널리스트 (0) | 2024.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