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믹스처ㅣ데이비드 라이크ㅣ인류의 기원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기로기 2024. 3. 2. 23:20

정말 정말 어려웠다.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읽은 책인데, 그걸 알게 된 것 같진 않다. '교잡'이 매우 많았다는 것 정도가 내가 이해한 전부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학자인 저자는 생물학적으로 계통(인종이라는 표현은 지양함)에 따라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우생학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생물학적 차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올바르지 않다고 여겨지는 분위기이지만, 저자는 조심스럽게 그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의 말이 수긍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의 말이 실현된 사회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  태도는 굉장히 이상적이고 고고해서 더욱 멀게 느껴진다.

 

 

인류의 과거에는 나무의 몸통에 해당하는 단 한 개 집단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계속 교잡이 있었다.

 

고대DNA는 매우 다른 집단들 사이의 대규모 이주와 교잡이 인간의 선사 시대를 만든 중요한 힘임을 입증했다. 순혈 신앙으로의 회기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는 엄밀한 과학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정치적 고려 때문에 우리의 분석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서양인인 우리는 인도인에게 그런 연구 결과가 문화적으로 민감한 문제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으로 정확하되, 인도인 공동 연구자들의 감정을 배려할 수 있는 용어를 모색했다.

 

가족을 실망시킬 것이란 걱정은 집단 외부에서 파트너를 선택하는 경우 인도인 다수가 각오해야 하는 수치심, 고립, 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 해도 유대인으로서의 관점을 가짐으로써 나는 수천 년 인도 역사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민족을 초월한 사랑이 카스트 때문에 짓밟혀 버린 수많은 로미오와 줄리엣들에게 강한 공감을 느꼈다. 그리고 내 유대인 정체성 덕분에 카스트 제도가 어떻게 그 정도로 오래 영속할 수 있었는지도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데이터가 보여준 것은 인도 자티 집단들 사이에 실제로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것은 족내혼의 긴 역사 덕분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가 놀랍도록 다양하다는 사실은 일찍이 17세기부터 알려져 있었다. 몇몇 유럽 선교사들은 그런 언어의 다양성을 악마의 소행으로 여겼다. 한 집단을 개종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워 봤자 다른 집단을 개종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악마가 그런 식으로 원주민 집단의 개종을 방해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헐)

크리스토퍼 타일러-스미스가 이끄는 2003년 연구에서, 몽골 제국 시대에 살았던 비교적 소수의 힘 있는 남성들이 현재 동유라시아에 살고 있는 수십억 명에게 월등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밝혀졌다. 15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는 몽골 제국 시대에 살았던 한 명의 남성이 몽골인이 점유했던 영토 전역에 남성 계통의 직계 자손을 수백만 명이나 남겼음을 암시했다. (ㄷㄷ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과거에는 권력자라면 첩도 공개적으로 두고 자식을 엄청나게 낳기도 했으니 이럴 수도 있구나 싶고 그저 놀랍다.. 근데 진짜 이럴 수가..)


'계통'은 완곡어법도, '인종'의 동의어도 아니다. 그것은 절박한 필요에서 생긴 용어다. 과학의 발전으로 마침내 사람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를 찾아내는 수단이 생겼을 때 그런 차이를 논의하기 위한 정확한 용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많은 형질에 집단 간의 사소하지 않은 유전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현재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인종이라는 용어는 정의가 불분명하고 역사적 부담이 너무 커서 사용하기 불편하다. 만일 인종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한다면, 지금과 같은 논쟁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논쟁은 설득력 없는 두 입장 사이의 언쟁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믿는데 그것은 편협한 사고에 기반을 둔 것으로 현실적 근거가 거의 없다. 다른 쪽에서는 집단 간 생물학적 차이는 너무 미미해서 사회 통념상 무시하고 없다고 쳐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 그릇된 이분법에 마비된 상태에서 벗어나 게놈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할 때다.

 

게놈 혁명을 겪은 지금은 새로운 종류의 진부한 견해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인류의 과거에 교잡이 반복된 역사를 근거로 집단 간 차이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현재 전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두 사람을 무작위로 고른다면, 우리는 그 두 사람에게 DNA를 기여한 집단들의 다수가 오래 분리되어 있었고 따라서 두 사람 사이에 실질적인 생물학적 차이가 생길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집단 간의 실질적 차이를 발견할 때 올바른 대응은 차이가 있어도 우리의 행동이 그것에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국 인종주의의 진정한 죄는 개인을 그 집단의 고정관념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고 고정관념을 특정인에게 적용하면 거의 항상 빗나간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흑인이니 음악에 재능이 있을 거야" 또는 "유대인이니 똑똑할 거야"와 같은 말은 의문의 여지 없이 해로운 말이다. 모든 사람은 그만의 장점과 약점을 가진 독자적인 존재이고 그런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

고대 DNA 혁명이 진행되는 속도는 아찔할 정도다. 기술 진화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지금 발표되고 있는 논문에 사용되는 방법들은 몇 년 안에 낡은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