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정이라는 기자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게는 흡사 소설가 최은영의 감수성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만큼 섬세하고 사려깊은 사람 같았다는 의미에서. 앞으로 저널리스트로서 계속 나아가며 써낼 글들도 기대가 된다.
책은 훌륭하고, 평소 사회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스스로 더 깊게 생각해볼 주제들로 가득하다. 흉악범의 신상공개 사안 등 저자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물론 있었고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들여다보며, 자기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지닌 사회관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있다.
94)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통계는 이 기사 저 기사에 인용되며 산업재해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잘 정리된 숫자 속으로 진짜 이야기들을 빨아들여 감춰버리기도 한다. 산업재해가 흔하면 흔할수록 '끊이지 않는 산재' 같은 제목을 단 기사를 계속해서 만들기도 새삼스러워진다.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뉴스를 왜 뉴스NEWs라고 부르는지 생각해본다면 고질적이고 고착화된 문제일 수록 크게 다뤄지기 어렵다.)
136)특혜에서 배제된 집단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선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악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약자라는 맥락 안에서 조명받곤 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지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무릎을 탁 쳤던 구절이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와 악행을 바라볼 때의 관점을 더 넓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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