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ㅣ아르투어 쇼펜하우어ㅣ의지와 판단

기로기 2024. 2. 19. 14:56

대학생 때 친구의 추천으로 쇼펜하우어를 읽고 위로도 되고 멘탈이 강해지는 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쇼펜하우어가 대한민국 서점가를 휩쓸게 될 줄은 몰랐다.

철학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게 엄청나게 오랜만이라고 하던데!

일단 제목부터 매력적이다. 강한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철학책이지만 위트 있는 표지가 거부감을 낮춘 것 같다.

그렇지만 매력적인 제목과 표지를 갖추고도 팔리지 않는 책이 많다. 쇼펜하우어가 어딘가 대한민국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게 틀림없다.

내 생각에는, 대학생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치고 힘든 상황 속에서 독설인듯 팩폭인듯 강하게 말해주는 누군가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인 것 아닐까 싶다. 그만큼 사람들이 강해지고 싶다는 니즈가 있다는 거고, 그건 곧 상황이 힘들다는 반증 아닐까.

 

이번에 읽으면서도 역시나 재밌었고 끄덕끄덕 하게 되는 구절이 많았다.

특히 요즘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똑같은 얘기가 있었다. 

살짝 나심 탈레브의 향기도 났다. 특유의 쿨하고 단호한 문체.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비판할 때.

수백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 시대랑 똑같네 싶은 것도 많았다.

그 시대에 돈 걱정이라고는 없이 살던 사람도 본인 인생이 나름대로 힘들었구나 싶기도 했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글도 많고 (아무래도 책으로 출판할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후세에 편집을 통해 책으로 엮은 거라 그럴 듯)

 

오랜만에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옛날 생각도 나고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고전의 매력도 느끼고 좋은 시간이었다.

워낙 남기신 글이 방대하다고 하니 다음에 다른 쇼펜하우어 책을 보면 또 다른 재미일 것 같다.

이런 책을 읽으며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이려고 하기 보단, 지금 내 상황에 끼워맞추거나 내 스타일에 맞게 적당히 걸러듣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쇼펜하우어 본인도 모순으로 가득한 복잡한 보통 인간이었을 거다.

 

 

자신에게 적절히 어울리는 규칙을 정해놓고 인내라는 재능을 발휘하여 습관화한다. 그렇게 일생에 걸쳐 긴 시간이 흐르는 사이, 남들과 비교되지 않는 자기만의 위대한 삶이 쌓여간다.

 

오늘날 체면과 명예가 그 사람의 전부인 양 절대적인 대접을 받는 이유는 이 시대의 인간관계, 혹은 권위와 신분이 편견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체면을 중시하는 까닭은, 내세울 인간성이 직분에서 얻은 명예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다. 능력이 없으니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도 못하고, 그런데 또 권력은 욕심나고, 그러니 스스로 자기 이름에 금칠을 해버리는 것이다.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할 자신이 없어 반대급부로 명예가 훼손됐다는 아집에 사로잡힌다. 명예훼손이라는 협박으로 타인에게 존경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사회에서 명예란,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 나 혼자 주창하는 권리,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휘두르는 입속의 칼날, 증오하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위협의 명분으로 남용되는 중이다.

 

실패할 때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선 사람에게는 영광이 주어진다. 그에게는 좌절을 떨치고 일어났다는 아문 상처가 새겨져 있으며, 절망의 끝이 어디쯤인지를 알고 있는 눈동자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은 판단이다. 판단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타인의 의사를 수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 정신의 정점이다. 자기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만큼 개체로서 완성도와 독립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판단은 스스로 사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제시된 의견을 비판하고 보완하고,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야말로 사색이라는 직관적 표상의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처럼 정신적 세계에 자기만의 영토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고독으로 두 가지 이점을 얻는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 함께할 시간을 얻고, 둘째로는 타인과 함께하지 않을 자유를 얻는다. 교제에는 많은 강제와 고충, 위험이 따른다.

 

우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고상한 만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내면에 자극이 되고, 분발하려는 촉진제가 되어야 한다. 함께 진보하지 않는 우정은 나태와 방종이다.

 

인생이 당신에게 축복으로 남기를 소망한다면, 당신이 먼저 인생을 사랑해야 한다. 친해지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

 

인간은 정직해져야 한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져야 한다.

 

자연스러운 본성에 의해 사람은 마흔 살이 넘어가면 사람을 싫어하는 성향으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ㅋㅋㅋㅋㅋ)

 

확고한 자의식을 갖춘 사람들은 타인의 칭찬이나, 재촉, 경멸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하든 상처받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줄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자의식이야말로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나가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명백히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변명하거나 축소하거나 미화할 필요는 없다. 깨끗이 인정하고 징계를 받고 우연히 생긴 비극으로 인생의 페이지에 적어둔 뒤 책장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과거의 잘못으로 자신을 끝도 없이 괴롭히지 말란 소리)

 

의사와 간호사와 목사가 의술과 간호와 신앙을 통해 피폐해진 이웃의 삶을 치유함으로써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봉사의 금전적 대가를 추구한다면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의료와 신앙에 소모되는 비용과 고통을 약한 자들에게 떠맡기는 사회의 안일함이다. (쇼펜하우어가 지금 대한민국의 의대 증원 이슈, 미국의 의료 체계를 보면 뭐라고 할까?)

 

첫째는 불행이 닥칠만한 상황을 피하고, 둘째로는 최악의 불행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를 계획해두어야 한다. 불행이 닥칠만한 상황을 피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 환경이 늘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인데, 나 한 사람의 깨달음과 준비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과 친구, 다시 말해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촉하는 사람들이 나만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돌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이타심이 발휘되어야 한다. (<역노화>에서 말하는 거랑 똑같네. 완전 동의)

 

이런 시대를 살아가려면 좋든 싫든 정의와 거짓을 구별해낼 줄 알아야 한다. 시대가 제공하는 갈등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갈등의 결과가 아닌 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 당장이라도 시대를 둘로 쪼갤 것 같은 분쟁에 휘말려 재판관 앞을 서성이고, 누구 목소리가 더 시끄러운지에 귀 기울일 게 아니라 싸움을 시작한 패거리들의 소속을 알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에서 생존하는 비법이며, 문명의 발전에 희생당하지 않는 비결이다.

 

청소처럼 하찮은 일은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내 인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보통 사람의 일생이고, 청소일지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겉만 닦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과 정신이 닦여져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믿었던 것이 성현들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다. 이를 뒤집어 생각했을 때 하찮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의지의 출현을 연습하는 중요한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일생일대의 대사건이 발생하기를 기다리며 힘을 비축하는 것은 말이 좋아 비축이지 방관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나의 자존심을 정당하게 만들어줄 것이며, 나는 나의 자존심을 떳떳하게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통해 나는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직접 확인한 참만을 인정하며 승인한다. 눈동자가 다른 누군가를 쫓는 순간, 낡은 관념이 그의 삶에서 재탕될 것이다. 독창적인 인생은 독창적인 사상을 통해 실현된다. 독창적인 사상은 의지로 통일된 체계에서 태어난다. 스스로 한 권의 위대한 철학책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대수의 공식이 아니다. 인생은 시와 같은 예술의 한 갈래다. 직관의 세계에서 누구도 흉내 못 낼 아름답고 독창적인 시 한 편이 탄생하듯 직관의 파악으로부터 인생은 시작되는 법이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한다는 것은 예술가가 자신의 의지를 밖으로 표출하는 작용이다. 그 같은 표출을 감상한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의지가 침투하여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 같은 의지에 자극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자극은 감상자의 내부에서 공명작용을 일으키며 새로운 의지의 도출을 유인한다.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작품은 감상자의 의지를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경박한 그림과 음악은 감상자의 의지를 경박하게 만들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예술가와 감상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공명 작용이야말로 감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위대한 미술가와 작곡가의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과 기쁨, 비장함, 순수 같은 표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작품을 창조할 때 작가의 내부에서 일었던 의지가 우리에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