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에 미칠 수밖에 없는 게, 저성장에 한정된 파이로 원하는 만큼 다같이 잘 먹고 잘 살기 힘들어서 그걸 나누는 - <커밍업쇼트>에서 본 논리랑 똑같다. “나도 힘든데 안 도와줬으면서 쟤는 도와준다고? 안 돼 도와주지 마.”
저자의 주장이 한없이 이상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파이와 예산은 무한하지 않고 한정되어 있고 자원의 재분배는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경쟁과 비교가 없는 보편적 정의..?
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개인적 차원에서만 생각하지도 사회적 차원에서만 생각하지도 않고 양쪽을 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싶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싶다. 사회에 목소리를 내되 내 개인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시도하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모든 개인이 그렇게 할 때 사회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필하모니 에피소드는 진짜 쇼킹하고 상징적이다.
연대의 중요성.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안 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29)장기적 비전도, 구조적인 해결책도 없이 많은 이들이 공정 경쟁과 능력주의 실현이 마치 위기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인 것처럼,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인 것처럼 외쳐댈 뿐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나 구조적 제약에 대한 논의는 부재한 채로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고 한다.
73)시험은 누구에게나 공정한다? 시험은 우리에게 ‘노력 대비 공정한 보상’을 가져다줄까? 물론 노력하지 않으면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핵심은 나의 노력의 양, 질, 효과가 구조적 불평등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럼에도 청년들이 시험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나마’ 내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개입할 여지라도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아니라면 부모 재력, 인맥으로 좋은 자리는 다 가져갈 거니까)
86)내 옆에 있는 여성이 소수자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성차별이 종식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순수하게’ 능력에 따라 채용하고 ‘공정하게’ 실력에 따라 연봉을 산정하라고 하지만,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차별과 혐오는 항상 존재하며 능력주의는 언제나 소수자에게 더 가혹하다.
89)왜 어떤 사람들은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기 위해 늘 공부하며 의견을 묻는데,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호소해도 신경을 쓰지 않을까? 평생을 “선택적 무지”의 상태로 살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무지와 무감이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사실 조차 모를 정도로 기득권의 덫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을까?
107)명문대에 입학해 부와 성공을 획득한 소수자들이 ‘학벌 사회’ 그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소수자도 명문대에 보내자, 약자도 명문대에 갈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결국 대학의 서열화를 공고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밖에 없다.
120)번아웃은 나의 내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번아웃은 나와 내 일의 관계, 나와 내 일터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즉 내가 구조와 맺고 있는 관계의 문제다. 따라서 번아웃의 뿌리에 대한 그 어떤 진단도 없이 당신의 성격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152)부모의 학력이나 계급, 출생 지역, 젠더, 장애 유무, 인종 등 수많은 요소들이 우리의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먼은 순수하게 객관적인 능력이 존재한다고 가정. 그러므로 당연히 사회경제적 구조 및 문화의 영향은 없으며, 오직 개인의 능력 격차 혹은 노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163)보편적 정의(저자가 주장하는)는 한 사회의 평등적 이상을 설정하고, 그 이상에 모두가 분명히 도달할 수 있도록 배분의 수준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즉 모든 이들이 누려야 할 이상적 삶의 조건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모두가 그 조건을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분배정의를 실현하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분배해야 할 몫은 개인들 사이의 상호 비교와 경쟁이 아니라, 개인적 현실과 공동체적 이상 사이의 비교를 통해 결정된다. (…이상적이지만 이걸 시행한다고 해도 여기저기서 불만 터져나올 거 같은데. 이상적 삶의 조건은 계속 변할 거고 사람마다 다를 거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게 가능할까? 애초에 이게 어떻게 합의가 될 수 있지? 양극화를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다같이 똑같아지자는 것처럼 들려서 거부감이 들기도 함)
167)구조적 불평등을 ‘자유’와 ‘공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동시에 개인의 ‘무능’과 ‘무책임’이라고 비난하는 세계를 무너뜨리자. 경쟁과 능력주의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공동선의 세계를 상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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