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도시에서 살다가 20대 때 대학/취업의 이유로 상경하여 10년 넘게 서울살이의 고달픔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와 유사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당히 공감하면서 읽을 것 같다.
교통 지옥 때문에 수도권을 떠나 전라도에 취직한 20대 케이스가 나옴.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지고 만족한다고 함. 이걸 읽다보니 최근 부읽남 유튜브 채널에서 다룬 아파트 공화국 이야기가 생각남. 우리나라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하루에 n시간씩 쏟으며 힘들게 출퇴근하며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 그놈의 아파트 때문이다.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싼데 경기도로 나가면 그래도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왜냐. 아파트 아니면 자산 증식과 노후에 답이 없다 생각하기 때문. 왜냐. 우리나라는 부동산 원툴이고 주식 시장이 그만큼 안 따라주니까. (완전 동의는 안 되는 게, 요즘은 전세계 주식, 통화, 대체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시대긴 해서. 최근 상황만 봐도 국내에서 부동산 갖고 있던 사람들은 입지에 상관 없이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이중 타격이다. 하지만 투자와 공부라는 행위에 많은 시간과 관심을 쓰지 않는/못하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해당사항 있는 말일 수 있기도 함.)
우리나라는 명실상부 서울공화국이다. 거의 모든 면에 있어서 서울이 최고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의료, 예술, 연예, 음식, 패션, 주거, 트렌드 등. 가장 재능 있고 똑똑한 사람이 다 서울에 모인다. 사회를 이끄는 혁신과 사고방식은 서울에서 생겨나 지방으로 전파된다. 이걸 정확하게 인지한 건 아니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명문대에 진학함으로써 서울에 가서 사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인정받으며 다니는 사람에게조차 쉽지 않은 게 서울에서 터 잡고 살기다. 그럼에도 고향이 서울이 아닌데 왜 서울을 고집하느냐. 앞서 말한 대로 서울공화국에서는 모든 척도가 서울이며 성공의 기준이 되니까. 방송에서도 서울이라는 지역이 기본전제로 깔리기 때문에 마포, 여의도, 강남 등 서울이라는 지명을 생략하고 언급되는 게 일상적이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이게 비서울 지역 사람이 보기에는 물음표로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 책에서도 예능에서 출연자끼리 성수동 얘기 한참 하는 장면을 짚어 타지역에게 문화 소외감 유발한다는 걸 지적함. 굉장히 서울 중심적인 것. 자연재해에 있어서도 수도권에 영향이 큰 경우와 아닌 경우는 속보나 언론이 다루는 관심도가 다르다고도 한다. 주요 언론사와 언론인이 서울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서울이 생활권에 인접한 국민(수도권 인구)이 이미 과반을 넘어섰으니까. 서울 또는 수도권에 살지 않는다는 자체가 인생 자체에 마이너성을 부여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던 중에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본가 지역에서 사용 가능한 영화 예매권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사용 가능한 극장은 내 본가가 있는 지역에는 없는 극장 체인 두 곳이었다. 붙어 있는 바로 옆 지역으로 차 타고 30분 정도 넘어가면 되긴 하지만 마침 이 글을 쓰던 중이라 지방 소도시의 삶은 이렇다는 게 또 한 번 느껴졌다. 서울에는 수십 군데 있는 극장 체인 지점 한 군데가 없는 것.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절대 탈서울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서울을 기반으로 두고 국내외 여러 지역을 자유로이 다니는 생활을 지향하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버텨볼 생각) 그럼에도 이 책의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고 씁쓸함. 이런 느낌은 날 때부터 서울 중심부의 도심 내에서만 모든 생활이 이루어져온 사람이면 공감이 어렵겠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일 거고,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토박이 정도만 돼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갈 것 같다.
내 출퇴근 시간은 남들보다 조금 늦은 편이라 아주 피크타임은 아니었고 그나마도 환승 없이 지하철로 한 방에 15분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고단했다. 문이 열리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틈바구니와 분주한 발자국이 일으키는 먼지들은 겪어도 겪어도 적응되지 않았고 싫었다. 경기도에서 환승에 환승을 거쳐 1~2시간 이상 매일 출퇴근에 쓰는 생활은 엄두조차 안 난다. (그 대가로 수 년에 걸쳐 높은 전월세 비용을 감당해왔다.) 하지만 매일 같이 너무나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자 일상 풍경이다. 서글프다. “아등바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름 서울공화국 문제에 관심이 있어 기사를 찾아보고 관련 교양 프로도 보고 했지만 닭이냐 달걀이냐 문제가 떠오르는 난제라 나도 답을 모르겠다. 이 문제에 있어 영향력 있는 몇몇 교수들의 주장도 현실적으로 갸우뚱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어느 정도는 이상적일 수밖에 없나 싶다. 우리나라의 서울 집중화를 문제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조차도 절대 탈서울 안 할 거라는 입장인 것만 봐도. 그런 주장을 하는 교수들도 수도권 소재 대학의 현직 교수라는 사실도. 하지만 이런 책이 나오고, 이 주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여론이 생기고 토의를 하고, 그러다보면 조금씩은 길이 더 보이지 않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지방소멸과 빈집 문제는 중대한 국가적 사안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이대로라면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 없다. 이건 개개인이 어떻게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고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비전을 보여줘야만 가능하다. 모두에게 있어 생존과 삶의 터전이 걸린 문제니까.
크게 생각해보지 못한 탈서울의 단점들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싱글에게 우호적이지 않고 4인 가정을 정상가족으로 생각하더라 (경험상 지방 어르신들은 아직도 공무원/공기업이면 최고의 직업이고 자랑거리로 생각함..ㅋ 결혼이나 출산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식으로 사고방식이 올드한 경우가 많음. 심지어 같은 또래여도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의 차이가 느껴짐.), 인적 네트워크에서 멀어져 기회에서도 멀어질지 모른다, 지역 토박이들의 텃세와 보장되지 않는 익명성(이 분은 인구 20만명 이상을 추천함), 2등 시민/계급에 대한 인식. 현재로서는, 확실히 더 젊고 다이나믹하고 다양성이 존중받고 사고방식이 열려있는 건 지방보다 수도권, 특히 서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수도권에는 계속 사람이 몰리고, 지방에서는 계속 사람이 빠지는 악순환의 심화. 충격적인 건 탈서울 키워드가 최근 새롭게 급부상한 게 아니라 이미 몇 십년 전부터 보도되어 온 어떤 사회현상이라는 거. 예나 지금이나 별반 개선된 게 없단 소리다.
탈서울도 다 똑같은 탈서울이 아니다. 서울에 인접한 도시로 가느냐, 귀촌 귀농이냐, 서울에서 멀지만 웬만큼 인프라는 있는 조용한 중소도시로 가느냐, 방문객이 많은 핫한 관광지로 가느냐. 탈서울을 하더라도 핫플/관광지로 가느냐 아니냐도 차이가 크겠구나 싶었던 사례 : 양양으로 이사해서 카페 차린 분은 그동안 쌓아온 인간관계를 벗어났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오히려 지인들 더 자주 만나게 됐다고 함. “요즘 핫한 양양 사는 친구”가 된 거겠지. 아예 탈서울 키워드를 이용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경우들도 보이고.
반전 같은 건, 저자가 갑자기 결혼을 하고 남편과 힘과 돈을 합쳐 서울 마곡에 30평대 신축 아파트 전세 마련한다. 그리고 강과 산도 가깝고 교통도 편해서 만족해하고 너무 좋아함. 너무나도 당연한데, 서울이라 살기 힘든 게 아니라 서울도 서울 나름이고 지방도 지방 나름임. 서울 내에서도 고덕 가보니 자연(숲)이 바로 붙어있고 조용하고 쾌적하고 좋았음. 고급주택이 모여사는 전통적인 서울 부촌들도 그럼. 하나의 작은 시 안에서도 동네별로 주민 인식과 집값이 차이 큼. 지방이라고 급 나누기가 없는 게 절대 아니다. 서울은 이래, 지방은 이래 라는 것도 어떤 점에서는 고정관념이다. 탈서울 한다고 유토피아가 아니라던 어떤 인터뷰이 말이 맞다.
여유로운 사람에게는 서울이든 지방이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애초에 서울에서 내가 원하는 생활을 마냥 누릴 수 있으면 탈서울을 고민하지도 않겠지. 그래서 이런 식의 전개는 좀 당황스러웠다. 정답은 제시 못하더라도 좀 더 통찰력을 보여주길 바랐는데. 저자 왈 전세라 2년 후에는 자기도 또 어찌될지 모른다고 끝나기는 하는데. 마치 엔딩이 이상한 영화 같아 결말이 아쉬웠다.
그래도 탈서울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해볼 만한 거리를 많이 제시하는 책이라 추천한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 정부 차원에서는 거시적 관점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국민에게 동기부여해주고 동의를 얻는 것이 현실화 되면 좋겠다. 단기간 내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너무나 고질병이 된 현상. 다양한 선택지가 펼쳐지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인데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
51)이렇게 첫 대면에서 ‘정읍’이란 프레임으로 날 보는 사람들과 만난 사회생활 10년. 한번은 회사에서 “시골에서 온 애”라는 말을 들었다. 분명 나쁜 말이 아닌데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뭐였을까. 모든 것이 대도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에서 ‘시골에서 온 애’는 나를 뭔가 소수자의 자리에 위치하게 했고, 나에게 비주류적 감수성을 선물해주었다.
101)서울이 아니라도 지방에서 괜찮은 주거를 구하려면 전세자금대출이 필요했고, 대출을 잘 받으려면 직장이 필요했다. 직장이 필요하면 서울에 붙어 있어야 했고… 결국 돌고 돌아 생각은 제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110)사회적 기회는 결국 사람에게서 오는데, 인적 네트워크에서 떨어져 나 홀로 어딘가에 가 산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감도 끈도 떨어진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서울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지식과 트렌드, 감수성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일이 쉽게 마음먹어지지 않았다.
124)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지방에 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기회에서 사실상 한 발짝 뒤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143)모든 것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구조에서 10대와 20대를 보낸 이들은 어떻게든 자원이 많은 환경에서 버티며 경쟁에서 이기는 방향으로 생존 본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251)지방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길 때는 이중에 급여소득자로서의 지위를 사실상 내려놓아야 가능했다. 시장에 당장 내다 팔 것이 없는 평범한 사무직 근로자가 급여소득자로 살기 위해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현실을 나는 인터뷰 과정에서 재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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