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작가가 쓰고 싶기도 하고 쓰고 싶지 않기도 한 마음에 대하여 쓴 글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9명에게 같은 주제를 주면서 각각 계약을 하고 받아 실은 기획인 듯하다.
영화계와 관련 있는 분들이 꽤 있고,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책을 쓰신 작가님들도 있어서 궁금한 책이었다.
일기에 가까운 느낌이라 아주 가볍게 이틀 만에 읽었다. 다 읽고 드는 생각은, 노라 에프런 에세이에서도 느꼈고 사카모토 유지 작가 인터뷰에서도 느꼈지만.. 창작의 고통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사람 마음 다 똑같다? 잘 쓰는 사람도 쓰기 싫(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 : 그레이 - 하기나 해
너무 잘 하고 싶고 완벽하고 싶어서 아예 시작조차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잘 할 생각 하지 말고 일단 하기나 하라는 거. 난 이 정신이 진짜 중요한 거 같다. 그리고 이 정신이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같기도.
그러니까 “하기나 해”라고 나에게 말해본다.
아래는 작가 별로 마음에 들었던 구절과 글에 대한 짧은 코멘트.
전고운
26)늘 녹차를 그리워하며 재스민차를 마시는 이마저 메타포로 다가온다. A를 원하지만 B에 머무는 삶. 늘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며 대체재로 만족하는 현실.
글에서도 자기 색깔이 정말 진하게 느껴졌다.
이석원
63)나는 내가 쓴 글을 팔아 나 자신과 부모님 두 분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책을 썼다. 그렇기에 책의 판매 상황은 내 기분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지배했다. 책은 팔릴 때도 있고 안 팔릴 때도 있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불안감이 나를 떠나본 적은 없다. … 자연히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들도 더는 즐거울 수가 없게 되었다.
내는 책마다 족족 성공하는 것 같았던 작가도 이런 생각을 계속 하며 살았다니.. 역시 본업에 밥벌이가 걸려있으면 이렇게나 힘든 건가.
이다혜
마찬가지로 이렇게 쉼 없이 잘 쓰는 작가도 집안 사정 때문에 받을 돈 생각해가며 글을 썼었다니.. 그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 잘 쓰게 된 건가? 쓰기 중독 같아 보일 정도로 열일하시는 작가고 응원하게 되는 작가.
이랑
114)그때부터 그냥 나는 내 편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릴 적부터 구원 콤플렉스가 너무 심했던 나로서는 아주 큰 결정이었다. 그동안은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영원히 사랑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연인이나 친구를 사귀어도 그 마음은 충족되지 않았고, 언젠가 이별이 찾아온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 … 그래서 나는 그 구원받고자 하는 욕망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 책 저자들 9명 중 유일하게 존재를 몰랐던 분인데 말 그대로 예술가.. 예술하는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드네.
박정민
127)혼자 메모장에 삐죽이 적어놓은 글들이 훨씬 더 좋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글, 보여줘선 안 될 글, 나조차도 두려워 들춰보기 어려운 그 글들이 더 좋다. … 사실 이건 봉인의 한 과정이다. 속 썩이는 온갖 것들을 적은 후 금고 안에 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그 감정들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글이.. 웃기다 ㅋㅋㅋㅋㅋ 유머로는 제일이었다. 대충 쓴 듯 해보여도 숨길 수 없는 똑똑함(재치) 그리고 개성이 글에 느껴진다.
김종관
팩션이란 말?
이야기꾼이시구나.
백세희
이 분은.. 정말 운이 좋은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첫 책이 너무나 큰 성공을 거두면서 글 실력에 대해 쏟아진 평가와 호불호가 나뉜 리뷰에 상처를 받기도 하신 것 같은데, 계속 집필하면서 자신을 증명해 내는 수밖에. (근데 증명을 못하면 또 어떤가? 증명하려고 글 쓰나?) 타인을 많이 의식하고 연연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서 괴로웠을 것 같다. 하지만 첫 책부터 성공한다는 게 어마어마한 행운이란 것은 사실이고, 소포모어 징크스가 되지 않게 잘 극복하셨으면..
한은형
214)나의 가장 큰 적은 나고, 가장 큰 지지자도 나고, 나를 죽이는 것도 나고, 나를 살리는 것도 나라서 나를 잘 돌봐야겠다고, 나를 잘 돌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굴러가게 되어 있다고.
소설 E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100% <레이디 맥도날드> 인 것 같다. 이렇게 몇 년 동안 힘겹게 쓴 소설이구나..
임대형
238)우주는 인간의 의미 체계와 상관없이 그저 존재할 뿐이고, 나는 그 우주의 방대하고 복잡한 우연 속에서 그저 미미하게 존재할 뿐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 놀라운 위안을 준다.
솔직한 글이었다. 영화만 보고는 알 수 없었던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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