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레이디 맥도날드ㅣ한은형ㅣ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낀 소설은

기로기 2022. 6. 14. 17:38

기이함 혼란스러움 거부감 안타까움 경악 슬픔 무서움. 나에게 참으로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마침 투자 시장 안 좋고 가계 긴축 재정 실시 중인 때 읽어서 더.

김윤자의 심리를 허영이나 허세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취향이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봐야 할까? 능력에 비해 원하는 기준이 높다는 거. 있어보이고 싶어 하고 고고하고 싶어 하고. 근데 금수저였으면 안 가져도 됐을 내면의 싸움인 건가 생각하면 참 쉽고 허무하기도 하고..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해준 친구는 이걸 읽고 ‘분수’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한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 분에 넘치는 것..이라는 표현을 우리가 쓰는데 그 분수란 게 뭘까? 또한 김윤자의 태도를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세로 보지 않고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 그걸 고수하는 태도에 어떤 숭고함까지 느꼈다고 한다. 같은 이야기를 읽고도 시각이 다르다는 게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다.

주민등록 말소하고 매달 20만원 적선받아서 길거리 전전하며 사는 게 김윤자의 삶인데, 그것보다는 기초수급자 되는 게 낫지 않나? 살 집을 준다는데도 안 받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건가? 그럼 집사 돈은 왜 꼬박꼬박 받지? 그건 납득할 만한, 괜찮은 돈인가? 남의 시선이 중요한 사람인데 왜 머리는 안 잘랐지? 등등 나에게는 의문이 계속 떠올랐다. (친구랑 이런 얘기하다가 국민연금 얘기까지 나옴)

이 사람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게 되기까지 잘못한 게 있나? 있다면 뭘까? 좀 그지같아도 돈에 맞는 집을 구했어야 한다? 비대한 자아를 깎아내고 현실에 순응했어야 한다? 그 삶을 비참하다고 얘기하는 것도 실례인가?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도 많고 노숙자도 많은데 가난한 노숙자이면서 본인을 노숙자가 아니라 여기는 사람은 희귀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주목을 받은 건가? (친구의 표현에 따르면 ‘노숙자다움’이 없어서)

찾아봤는데 작가 인터뷰는 없네.. 고인은 자기를 모티브로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걸 안 좋아했을 것 같다. 특히 318쪽에 오타니 쇼헤이 인간성 덕목 얘기하면서 ‘배려, 예의, 감사, 신뢰받는사람, 사랑받는사람 이것들 중에 내가 제대로 한 게 있나?’ 라는 생각을 하는 장면은 꼭 필요했나? 너무.. 잔인한 거 아님? 싶었다. (작가를 비판하겠다는 건 아니고 독자로서 아쉬웠던 대목)

젊고 돈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바짝 벌어야 되나. 언제까지 빡빡하게 벌어야 되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고 괴로워지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얘기해보고 싶은 소설이다.



122)”작작 좀들 해요”라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다 그런 거지 뭐”라던 목소리도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는 왜 저런 태도를 배우지 못했나? 그랬다면 사는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131)이렇게… 먹는 얘기를 누군가와 하고 싶었다. 먹는 얘기가 아니더라도 아무 말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날씨나 열대어 키우기나 고교 야구 순위나 서울시의 화단 조경이나 공공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146)(피디 시선) 모두의 삶이 다 고되지만 더 고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러니 모두들 좀더 견뎌주기를 원한다고. 그런 자신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한다. 우리 모두 태어난 이상 풍파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228)사실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아주 심하게 이상한 게 아니라면 표가 나지 않는다. 섬세하게 보지 않으면 그렇다. 사람들이 그렇게 된 건 세상 때문이고, 앞으로 그런 이들이 더 많아질 거라고 신중호는 생각한다.

243)다음날 최신양은 드링크를 넣어두던 통을 치워버렸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녀가 선의로 한 일로 인해 그렇게 피곤한 일을 겪을 거라곤. 남자는 비치해둔 드링크를 먹고 탈이 났다며 그녀를 고소할 수 있는 사람으로도 보였다.

255)김윤자가 인생에서 잃는 게 많아질수록 인생에 거는 기대는 커졌으므로 그 기대가 충족될 확률은 점점 줄어들었다. 예전의 김윤자 눈에 겨우 들었을 남자들조차 지금의 그녀를 원하지 않는데, 그녀는 예전에 원하던 남자 이상으로 뭔가를 더 갖춘 남자를 원하게 되었던 거다.

283)김윤자도 그간 스쳐온 사람들을 생각했다. 왜 더 친절하지 않았을까? 왜 더 친절하지 못했을까? 또 생각했다. 만약 되돌아갈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하게 굴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리는 없겠지만.

300)무엇보다 자기들처럼 살지 않는 레이디의 방식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잘 참아내지 못하니까. 신중호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신중호는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레이디가 여태까지 몰랐던 걸 계속 모르더라도 문제없었다. 레이디의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말이다. 그는 레이디가 살아온 칠십몇 년간의 방식을 부정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