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즐거운 소설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소설이다.
다양한 여자들이 나온다. 딱 나 같다! 라고 느껴지는 여자는 없었지만 부분 부분 내 모습이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인물들이 전형적이지 않기 때문에 복잡한 맘으로 보게 된다.
예쁜 여자는 예뻐서 고통 받고, 못생긴 여자는 못생겨서 고통받는다는 말이 다시 생각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새로운 의미의 여성 억압을 우리가 서로에게 하지 않길 바란다. 지나치게 날 서지 않길 바란다. 이런 여자도 있고, 저런 여자도 있음을 받아들이되 나아가면 좋겠다.
‘세연이는 진경이한테 왜 그러는거야? 어릴 때 자기 트라우마에 발목 잡혀서 친구 미워하는 거야?’ 라고 꼭 친구들한테 물어봐야지. 친구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봤고 뭘 느꼈을지 너무 궁금하다.
[책 속 구절]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 무언가를 하니까 또다시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연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미움이야. 가진 것이 다르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계속 밀어내고 비난하기만 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어? 그리고, 사람은 신이 아니야. 누구도 일주일에 7일, 24시간 내내 타인의 고통만 생각할 수 없어.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니? 너도 그럴 수 없는 걸 왜 남한테 요구해?
하지만 만나서 얘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평행선이잖아, 채이는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말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걸까? 의제 하나에 쌍둥이처럼 집회가 두 개씩, 그것도 동시에 열리는 게 너는 바람직해 보여? 나는 부조리해 보이는데. 언제까지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살면 어떻게 발전을 하지? 우리는 서로의 대립항이 되기 위해서 이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잖아. 우리가 가진 공통점은 왜 중요하지 않아?
여성은 여성에게 너무 쉽게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해요. 서로를 그렇게 적대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어요.
너는 가끔 사람들의 눈앞에서 문을 꽝꽝 소리 나게 닫아버리잖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 사람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말이야. 그럴 때마다 말하고 싶었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좀 기다려줄 순 없는 거니? 모두가 애써서 살고 있잖아. 너와 똑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삶이 전부 다 잘못된 거야? 너는 그 사람들처럼, 나처럼 될까 봐 두려운 거지. 왜 걱정하는 거니, 너는 자유롭고, 우리처럼 되지 않을 텐데. 너는 너의 삶을 잘 살 거고 나는 너의 삶을 응원할 거고 우린 그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평론]
상냥하게 미소 짓는 페미니스트, 외모 가꾸기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페미니스트는 존재하지 않는가? 그런데 진짜 페미니스트는 누구인가?
‘진짜’, ‘좋은’,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우리 사회의 젠더 문제를 해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왜냐하면 순수하고 완전한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아는 이 현실 세계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당위와 대의명분에서 벗어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재단하지 않는, 각자의 복잡한 경험이나 개별 특성을 인정하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난,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모순이 공존하는, 잡종적인, 오염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멀어진 옛 친구들과, 지금 나를 견뎌주는 몇 안 되는 보석 같은 사람들과, 한없이 미워했던 게 이제는 너무 미안한 나 자신을 떠올리며 썼다. 그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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