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여성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ㅣ이반지하ㅣ예술가의 에세이

기로기 2021. 12. 23. 21:05

친구 추천으로 읽었다. 친구한테 왜 추천했냐고 꼭 물어봐야지. 나는 감당하기 버거운 예술가적 기질이 풍부한 사람..이신 것 같은데 친구에겐 어땠는지 너무 궁금하다.

부모가 서로를 목 졸라 죽이려는 장면을 목격하고, 고등학생 때 인터넷에서 아저씨들을 만나 자고, 손목을 긋고, 재수해서 서울대 갔지만 졸업 후 고정적인 직업 없이 이 일 저 일 전전하고, 레즈비언이라는 소수자 성 정체성, 수면제를 먹고, 우울증에.. 객관적으로 비극적이다. 오죽하면 스스로를 숙련된 정신병자라 일컫는다. 하지만 유머리스트라는 소개처럼 글에 재간이 살아있음. 그리고 앞으로 더 잘 되실 것 같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겪은 인간들에 대한 글, 튀김에 대해 쓴 글은 진짜 너무 웃겨서 현웃 터졌다. 호텔 조식 뷔페 알바하면서 만난 인간들에 대한 글은 웃긴데 동시에 소름끼쳐서 저런 인간이 되지 않아야지 싶다. 킹받음.

퀴어 에세이인데 퀴어에 관한 내용은 생각보다 적다. 작가 본인의 퀴어 일대기(?)는 아예 없다시피 하다. 돈 없고 불안정하고 마이너한 예술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글이 많다. 하지만 희망적이다.

그리고 출판사가 문학동네인데 내 머릿 속의 이미지로는 문학동네가 아주 보수적인 출판사인 줄 알았는데 이런 진보적인(?) 책을 냈다는 게 놀랍다..고 쓰면서 보니 문학동네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내는 출판사지, 참 하고 떠올랐다.



47)검열은 잔인하다. 검열하는 쪽은 간편하되 당하는 쪽에서는 정말로 내가 당당한 피해자인지를, 내 쪽에 정말로 한 점의 원인 제공도 없었는지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잔인함의 핵심이다. 검열은 저쪽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그걸 지속하는 것은 이쪽, 나 자신이 된다.

215)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고 그냥 당신만 살아서 오라는, 그 대단한 두 팔 벌림 앞에 섰던 강렬함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살면서 그런 호의를, 받아들여짐을, 이곳에 당도해냈다는 이유만으로 주어졌던 잠자리와 밥과 어메니티를 어떻게 잊을 수가. 나는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어메니티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219)웃기는 여자는 남자에게 인기 없다는 얘기도 아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말은 마치 ‘너는 영원히 실패할 거야’ 같은 말이어서 항상 나를 주춤하게 했다.

344)존버의 시간도 고통이 담보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길 하고 싶다. 그냥 재밌게 버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런 요소를 계속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