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신경쓰였던 책인데 이번에 알라딘이 선정한 책 리스트에도 있어서 이참에 친구들이랑 같이 읽어보기로 했다.
책이 시작하면서 나오는 그림자와 영혼 이야기부터 아주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동시에 전반적으로 학술적이고 어렵다. 그래서 나중에 한 번 더 읽어봐야 될 것 같다.
'성원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운이 좋게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절박함 없이 편하게 속해서 살아왔고 책을 많이 접한 이후에야 소수성이나 차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누군가에게는 사회가 언제나 환대가 아닌 언제나 적대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과연 타인에게 절대적 환대를 하며 살아왔나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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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노동 통제는 신분적 모욕을 새로운 형태의, 더욱 미묘하고 일반화된 모욕으로 대체하였다. 문자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한다든가, 프로페셔널리즘의 이름으로 노예 깥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모욕이 주로 저학력, 여성, 육체노동자의 몫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모든 노동자, 즉 노동자로서 모든 사람이 모욕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비자로서만 의식하려 하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되도록 잊고 싶어 한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우리는 연대 의식을 느끼는 대신에 소비자로서 겪게 될 불편을 먼저 생각한다.
얼굴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든다. 사회라는 연극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배역을 수행하려면, 적절한 의상과 소품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아 이미지는 그리고 자기에 대한 감각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해주면서 동시에 동등하게 만들어주는 이런 소유물들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 군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체적 시설은 먼저 입소자들에게서 이런 물건들을 빼앗는 것이다. 얼굴을 유지하려면 또한 사교라고 불리는, 명예가 걸린 게이멩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선물은 이 게임에 사용되는 화살이자 방패이다. 경제력을 상실한 사람은 이런 무기들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탈락하게 된다. 경제적인 소외가 이리하여 사회적인 소외로 이어진다.
신원을 묻지 않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복수하지 않는 환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절대적 환대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한번도 그런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현재 속에 그런 사회는 언제나 이미 도래해 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 의례적인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임을 뜻한다. 사회는 산 자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죽은 자들 역시 사회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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