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권력의 심리학ㅣ브라이언 클라스ㅣ권력이 부패할까 부패한 자가 권력에 끌릴까

기로기 2024. 9. 16. 22:08

권력에 대해서도 평소 궁금했는데 친구 덕에 책을 알게 되어 같이 읽어보았다.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이 매우 좋았다. 남성 작가임에도 젠더 감수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권력자들을 실제로 인터뷰한 점도 좋았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권력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리고 신입 옷걸이에게 선배 옷걸이가 옷이 너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책의 끝부분에 9.11 테러 피해자 가족 지원 과정에서, 테러로 최고의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여성에게 사실은 남편에게 여자친구와 그 사이에서 낳은 자녀가 있었다는 진실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딜레마를 겪는 담당자의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다. 그 담당자는 알리지 않기를 선택한다.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설 몇 가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첫째, 권력은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권력은 부패한다. ... 둘째, 권력이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이 권력에 이끌린다. 즉, 권력은 부패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 셋째, 문제는 권력을 쥐거나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나쁜 이유로 악한 리더에게 이끌리기 때문에 그들에게 권력을 '안겨주는' 경향이 있다. ... 넷째, 권력을 가진 개인에게 집중하는 것은 잘못됐다. 모든 것은 시스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나쁜 시스템은 악한 리더를 배출한다. 올바른 맥락을 만들면 권력은 부패하는 대신 정화할 수 있다. (+책 내용에 따르면 '더 잘, 더 능숙하게 부패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도 있음. 이 책에서 제시한 이 네 가지 가설이 명료하여 좋았다. 책의 결론은 넷 중 무엇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고 심리학이 그러하듯 복합적인데, 그것이야말로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호모 사피엔스의 30만 년에 걸친 역사를 단 1년으로 축약한다면, 우리는 새해 첫날부터 거의 크리스마스 즈음까지를 대체로 위계질서가 없고 평평한 사회에서 살아온 셈이 된다. 그러다가 1년의 마지막 6일 동안 복잡한 문명이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면서 위계질서가 규범으로 자리를 잡았다.

분명한 결론은 위계질서와 권력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위계질서와 권력은 협력과 공동체가 생겨나는 데 일조한다. 또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죽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준다. 터친도 여기에 동의했다. "위계는 불과 같습니다. 먹을거리를 익히거나 사람을 불태우는 데 사용할 수 있죠." 그러나 위계가 없다면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모든 이기는 있을 수 없다. (이 논리는 좀 반박하고 싶다. 총기 소지는 허용되어야 하는가? 마약 소지도 허용되어야 하는가? 음주운전을 하고도 사람을 해하지 않았다면 음주운전은 죄가 아닌 게 되는 건가?)

지역공동체의 경찰을 군인처럼 무장시키고 군인의 채용을 강조하는 대신, 뉴질랜드 경찰은 웰링턴 시내에서 군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애초에 경찰이 될 수 없음을 확실히 한다. 경찰 활동에 자연스레 이끌리지는 않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유인하여 채용하고 심사하는 것이다. (인상적인 에피소드였다. 특정 조직의 '인재상'이라는 게 왜 중요한지 알겠다.)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재산을 허세적으로 전시하는 행위를 19세기 말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과시적 소비'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기존의 관념과는 정반대로 이런 전시가 돈을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레이스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는데, 만드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엘리트 여성들은 가장 정교하게 돋보이는 레이스를 가지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쏟았다. 그러다가 레이스를 짜는 기계가 발명됐고, 누구나 레이스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레이스는 거의 하룻밤 새에 의미를 잃어버렸다. (소위 명품 브랜드들이 계속해서 가격을 높이는 이유 중의 하나인 듯.)

우리의 석기 시대적 뇌는 아직도 리더십에 대한 인식과 신체적 크기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정치적 지도자에 관해서라면 현대 사회는 대개 남성적인 힘을 전시할 때 후한 점수를 준다. 진화적 불일치의 결과일 뿐, 이런 신호는 이제 실제와 아예 관련이 없다.

우리는 같은 행동을 남이 하면 유죄 선고를 내리고, 내가 하면 무죄를 선언한다. 이런 종류의 기본적 귀인 오류를 오스트리아에서 체계적으로 검증한 적이 있다. 연구 결과는 투명할 만큼 분명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다른 사람들의 부주의한 운전을 악의적인 행동으로 해석했지만, 본인의 부주의한 운전은 불가피하거나 정당화된 행동이라며 합리화했다. 타인이 나쁘게 행동하면 우리는 곧장 그 사람의 못된 성격이 드러났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나 자신이 나쁘게 행동할 때는 못돼서 그렇게 한 게 전혀 아님을 안다. (지금 읽고 있는 <페이크와 팩트>에도 나오는데, 반성해야 할 얘긴 거 같다. 도덕적인 판단을 함에 있어서 내로남불은 되지 말아야지.)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사람이 마치 권력에 의해 부패하는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지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같은 수준의 악의를 가지고 그 효과만 증대됐을 수도 있다. 그들은 언제나 부패해 있었다. 다만 악행을 더 잘 저지르게 됐을 뿐이다.

증권 관리자 해리 마르코폴로스는 메이도프의 사기에 관한 증거를 모아 2001년부터 2005년 사이에 세 번 이상 증권거래위원회에 제보했다. 마르코폴로스는 메이도프의 펀드 중 하나를 보고 단 5분 만에 수익이 가짜라는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4시간 후에는 이것이 조작된 수치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냈다. 그러나 탄탄한 증거가 뒷받침하는 문제 제기가 반복됐음에도 겉핥기식 조사 이외에는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메이도프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에서도 본 내용인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나도 이 사람처럼 꿰뚫어볼 수 있는 분별력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수가 되고 싶다. 지금도 어딘가에 제2의 메이도프가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