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이 솔직할 때 나오는 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한참 다른 글이었지만.
제3자로서의 인사이트를 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 자신이 당사자로서 성형외과와 '얽힌' 이야기다.
그리고 성형은 마법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도 다시 느낀다.
82)어떠한 금전적 이득도 추구하지 않고 숭고한 의술을 베푸는 의사만이 진정한 의사라고 믿는 순진함, 단순한 미용만 추구하면 안 되고 정신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기능도 개선해야만 진정한 의학이라고 믿는 순진함, 정상적인 성형수술이란 염증과 같은 부작용 없이 기대하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성형수술이라고 믿는 순진함, 그래서 그런 의사와 그런 의학, 그리고 그런 성형수술이 아니라면 비난해도 좋다는 순진함. 이 순진한 믿음을 고수하는 대신 의사, 의학, 그리고 성형수술의 불순한 현실을 인정하면 어떨까? 최선을 다하여 수술하면서 돈도 벌고 싶은 의사의 불순함,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이 목적이지만 그것을 정신과 몸으로, 그리고 다시 몸의 여러 부위로 쪼개는 의학의 불순함, 원하는 변신과 함께 원하지 않는 염증과 부작용, 증상 등이 동반되는 성형수술의 불순함 말이다. ... 그러한 불순함을 전제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152)결국 내가 가진 얼굴과 원하는 얼굴 사이의 불일치가 사라진 걸까? 그렇지 않다. 단지 하루 종일 머릿속에 그 생각이 맴돌고 그 생각이 나의 감정을 지배하는 상태가 아닐 뿐, 지금의 얼굴이 내가 원하는 얼굴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단지 이제는 내 얼굴이 내가 기대하는 얼굴, 내가 수술을 해서라도 갖고 싶었던 그 얼굴일 수 없음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 그러다가 어느 날 '왜 내 얼굴이 내가 원하는 얼굴이어야 한다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166)그가 어쩌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긴 얼평을 늘어놓을 수 있게 되었을까? 그는 성형수술은커녕 평소 옷 입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남성의 몸을 가졌다. 그런 그가 왜 성형수술을 하고 나타난 여자 동료의 얼굴과 행동을 관찰하고, 그것을 왜 당사자에게 직접 말해주는지 성찰과 고민, 사유의 흔적을 충분히 보여줬더라면, 즉 그의 '얽힘'을 드러냈더라면 어땠을까? ... 대상화하는 자신의 위치성과 당사자성을 고민하지 않는 이들의 대상화는 그런 이들로만 채워진 세계에서는 흥미롭겠지만, 그들의 논읫거리로 소비되는 당사자들과는 연결되지 못한다.
168)좋은 대상화의 기본 조건은 연구 대상과 자신의 관계를 드러내, 대상이 되는 당사자의 몸뿐만 아니라 대상화를 하는 자기 몸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형미인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이 책에서 성형한 내 몸과 성형외과를 참여관찰하는 내 몸을 감추지 않는 이유이다.
173)학계 주류는 중년 남성으로 그들은 대개 외모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이들처럼 보이지만, 내 눈에는 젊어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과 멋진 외모에 대한 동경이 엿보였다. 학계 여성의 외모는 그야말로 양면적이다. 예쁜 여성 연구자는 주목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학문적 능력을 의심받기도 쉽다. 물론 공식적으로 학계의 권력은 그 사람의 지적인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사람의 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런 기이한 세계와 비교하면 성형외과는 차라리 솔직해서 좋은 곳이었다.
182)흔히 여자는 외모로 평가된다고 하지만, 예쁜 여자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클럽에서 세 명 중 가장 먼저 테이블을 떠나게 된다고 해서 그곳의 남자들보다 우월하거나 그들과 동등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자로서의 나의 집, 나의 안식처는 남자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세계에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나는 끝까지 가보고 나서야, 성형수술의 세계에 얽혀 마침내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성을 온전히 수행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 여자 됨에 남자보다 열등하거나 보조적인 역할 혹은 성적 대상화가 필수요건임을 깨달은 이상 그러한 방식의 여자 됨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5)성형외과 수술실에서 변하는 것은 몸의 해부학, 생물학적 구조일 뿐이고, 그외의 모든 변화는 오롯이 자녀가 부모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다. 그 과정에서 외로움과 고립감을 얼마나 덜 느끼는가는 심리적으로도 중요할뿐더러 정보 습득 및 문제 발생시 공동 대처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230)성형수술의 이야기가 몸을 바꾸는 기술 일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여성의 성형수술 이야기가 인간 향상 기술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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