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가 많다고는 하지만 1인가구로 오래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는 많지 않다. 바로 윗세대만 하더라도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사는 게 지극히 일반적이었고 그래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박도 심했으니까. 이 책은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1인가구로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함께 저자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참고로 저자는 결혼 후 이혼을 함으로써 1인가구로 살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한국이 정말 가족중심적인 사회라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내 세대에서는 다를 것이다. 특히 노후라면 40-50년 후의 이야기니 지금과 얼마나 천지개벽 수준으로 인식과 사회 제도가 다를까. 비혼도 많아지겠지만 이혼도 많아질 것이다. 느낀 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기 보다는, 돈이 많아야 하고 건강관리를 잘 해야겠구나 쪽이었다. 결혼이냐 아니냐보다 돈/건강/인간관계 3요소를 잘 가꾸어야 한다. 하나 더 있다면 지성. 너무 지나치게 그리고 미리 걱정할 건 없을 것 같다. In good company.
주류의 삶에서 벗어나도 삶이 끝나는 게 아니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상상하는 거죠. 그리고 그런 사례도 꽤 있어요.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현재의 비주류가 나중에는 주류가 될 수도 있고 주류나 아니냐가 내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지는 않는 것 같다.)
이 해로운 단언의 흔한 변주는 "자식을 낳아봐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자식을 여럿 두고도 어른이 되기는커녕 성숙한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사례가 현실에 넘치도록 많아서, 나는 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독립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 관계 맺을 줄 알게 될 때 어른이 되는 것이다.
비혼모를 '인생의 가장 깊은 가치'를 마침내 알게 된 온전한 성인으로 대우하기는커녕 비난하고 멸시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성숙의 정도와 인생의 가치를 출산과 연결해 바라보는 시각은 위선적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에게 화를 내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세계관이 침해받는다고 느껴서 그런 게 아닐까. 사람의 삶과 이 세상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이 그 믿음을 따르지 않고 거부했을 때 마치 자신이 모욕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분개하는 이들이 있다. 게다가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이 비참하고 외롭기는커녕 행복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하다니, 장관급 고위 공무원 후보자로 인사청문회에까지 올라오다니,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다.
비출산을 선택한 여성을 이기적이라고 탓하는 것보다, 잘사는 집 아이들은 잘 교육받고 자산을 물려받는데 못사는 집 아이들은 교육 기회도 부족하고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를 탓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 중에서도 외로움을 심각한 문제로 꼽은 사람은 없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다. "혼자 있을 때 가장 나 자신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외로움을 반긴다"라는 사람에서부터 "외로움은 사람이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존재의 기본 조건"이라고 받아들이거나 "외로움이 고립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관계망에 기댈 수 있어서 괜찮다"라는 응답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외로움은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 하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얼마나 통하느냐 하는 질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을 때와 관계를 맺고 싶을 때를 제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어요. 가끔 외롭더라도, 싫은 사람과 같이 있지 않아도 되는 게 제일 좋아요. 물론 외로움이 정말 문제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고정관념에 전염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막 너무 즐겁지는 않지만 그냥 혼자 있는 감정 상태에 사람들이 외로움이라고 딱지를 붙이니까, 이게 외로운 거구나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봐요.
중요한 건 그 감정을 붙들고 얘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저는 외로움과 같은 감정이 '혼자'여서 오는 게 아니라 살아 있으니까, 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오는 걸로 생각하고 꼭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는 여기지 않는 편이거든요. 숙제가 아니니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사람들이 대개 결혼을 낭만적 결합으로 여기지만 사실 낭만적 사랑에 기반한 결혼은 18세기 이후에야 등장한, 역사가 짧은 발명품이다. 실제로 낭만과 결혼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대중매체와 콘텐츠에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이 넘실대는 현실에서, 솔로는 낭만적 사랑을 거쳐 결혼에 도달하는 경로 바깥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삶에서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아니, 본인이 아무 생각이 없더라도 주변에서 "언젠가는 좋은 사람 만나게 될 거야", "짚신도 짝이 있는데 너도 곧..." 같은 소리를 줄기차게 듣다 보면 혼자 사는 내가 뭔가 모자란 게 아닐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느끼기에 십상이다. 부모 형제자매 친구도 있고, 보람을 느끼는 일도 있고, 즐기는 취미도 있고 다 있는데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 그리고 그와 이룬 자신의 가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에서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회사에서 힘든 일을 함께 겪으며 서로 위로했던 동료 중엔 제가 회사를 그만둔 뒤 멀어지거나 연락이 끊긴 사람이 많죠. 그렇다고 삶의 어떤 국면에서 가진 그 순간의 친밀함이 피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순간의 친밀함을 여러 사람과 이어가면서 살아가는 것도 삶의 한 가지 방식 아닌가요? (시절인연)
혼인 관계가 친밀함을 독점하지는 않죠. 결혼은 낭만적 관계라기보다 정서적 친밀감과 성 자녀 경제가 모두 연루된, 삶이라고 하는 비즈니스의 파트너 관계예요. 동업자 같은 관계인데 끝까지 좋게 가기도 쉽지 않아요. 포유류가 젊었을 때 만나서 3~4년 지나면 로맨틱한 감정이 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비혼이 친밀감에 대한 욕망을 충족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건 오해죠. 인간의 관계는 다양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보다 각기 다른 친밀한 관계를 여럿 갖는 것이 삶의 만족도를 더 높여준다는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있다. 슬퍼서 위로가 필요할 때, 행복한 일을 같이 나누고 싶을 때, 불안을 누그러뜨려야 할 때 등등 서로 다른 감정을 나눌 각각의 관계를 여러 개 가진 사람이 그 모든 감정을 아주 가까운 소수의 관계에서만 나누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특정한 감정을 다룰 특정한 관계를 그냥 관계 relationships 대신 감정 관계 emotionships 라 불렀는데, 그런 감정 관계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는 것이 삶의 질을 더 높여준다고 했다.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들은 비혼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안정성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현실의 불안, 미래를 바라보고 계획하는 시야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도 소득 또는 일자리보다 주거 안정성이었다.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에서도 저자는 부모 돌봄을 떠맡은 솔로들의 가장 큰 문제로 고립감을 꼽았다. '패러사이트 싱글', 즉 부모에게 기생충처럼 얹혀살면서 살림을 축낸다는 부정적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것과 부모를 돌보면서 겪는 갈등이 중첩되는데, 여기에 사회생활이 단절되면서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고통까지 더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돌봄 부담으로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고, 한번 그만둔 일에는 좀처럼 복귀하기 어렵다.
빅데이터 컨설팅 기업인 아르스프락시아 김도훈 대표가 '유럽과 한국의 행복 인식 데이터 분석'을 발표하는 동영상. 북유럽 사람들 100여 명 인터뷰 녹취록과 한국인들이 브런치에 쓴 4만여 편의 글을 자료로 데이터 비교 분석을 한 결과. 북유럽 사람들의 말에서는 나I와 사람들People이 포함된 문장에서 긍정적 감성이 높게 나타났는데, 한국 사람들이 쓴 글에서는 나와 타자 대신 가족을 중심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즉, 북유럽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자신이 행복하려면 다른 이들의 행복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그 결과 불평등 해소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사회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면모가 나타났다. 반면 한국 사람들의 사고에는 몰입의 대상인 '가족'만 있을 뿐, '나'와 '사회'가 없었다. 가족에게 매달리는 정도가 높은 만큼 가족은 교육비로 대표되는 엄청난 비용을 유발해 고통을 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한국인들은 가족을 통한 행복의 희구가 강렬한 동시에, 남 눈치를 보느라 스트레스를 받지만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남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의 조건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진짜 공감가고 의미심장하다. <특권 중산층>에서도 한국 상류 중산층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극히 물질주의적, 가족이기주의적, 성공지상주의적이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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