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여성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ㅣ박미소ㅣ웃긴 책인 줄 알았는데 슬픈 책이었다

기로기 2022. 9. 1. 23:30

무서울 정도로 솔직한 글이다. 이렇게 세상에 자기 얘기를 내놓을 수 있다니 대단한 용기다. 글 만으로 저자를 판단할 순 없지만 현실에서 만났다면 나랑 제법 안 맞았을 것 같은 사람이다. 성향, 가치관이나 행동방식이 아주 다른 사람인 걸 알겠다. (술 취해서 부리는 주사나 추태 난 진짜 너무 싫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나를 망가뜨려가면서 뭔가 해로운 것에 의존하는 것도 싫고)

내가 알기론 블로그에 쓰던 글을 출판하게 된 케이스라 그런지, 책의 구성이 기획적이라기보다는 단편 에세이들을 모은 느낌이다. 그래서 반복된다, 왔다갔다한다는 느낌도 꽤 받긴 했다. 그럼에도 진정성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진짜 안타깝다. 저자를 동정하겠다는 건 아니고.. 이렇게 알콜에 취약하고 중독되고 스스로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하고 그 악순환에서 못 헤어나오는 게. 회사 그만두고 직업이 없는 전업주부란 게 그렇게 못 견딜 정도의 일인지 나로서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고 그런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라면 사회에 다시 나가서 뭐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잘 할 텐데. 뭐 결국 중독을 어느 정도 벗어나고 이렇게 책으로 결과물을 냈으니 잘 해낸 거고.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왜 문제의 답이 될 수 없는지, 빠지긴 쉬워도 벗어나긴 얼마나 어려운지, 객관적인 상황이 나쁘지 않은 사람도 얼마나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이유로 망가질 수 있는지.. 등 평소 중독을 일부러 멀리 하고 주의하는 나에게 더 경각심을 주는 책이었다.

작가는 금주가 아닌 절주를 선택했는데 출판 이후로도 잘 지켜지고 있을지. 한 번 알코올에 깊이 중독됐던 사람에게 절주가 가능한 건지. 책은 희망을 보여주며 끝이 났지만 현실은 어떨까.

자신을 잃지 말고 잘 붙들고 살아가자.


47)중독된 물질에 내성이 생기는 게 중독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73)다니엘 슈라이버는 중독이란 의지의 문제를 넘어서 뇌에 각인된 기억이기에 완전히 끊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중독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103)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주어진 내 삶에서 충족감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중독으로부터 나를 영원히 벗어나게 해줄 해답이라는 걸.

171)중독의 현상을 돌아보기 위해 글를 쓰던 것이 뜻밖에 중독으로부터의 구원이 됐다.

237)폭음으로 자기 장기를 혹사하는 이벤트가 왜 능력 시험의 장이자 인성 파악의 자리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