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ㅣ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ㅣ목적 있는 다정함

기로기 2023. 8. 18. 22:29

요즘 읽기 아주 적당한 책이었다. 불특정 다수와 안 섞이고 내 맘에 드는 사람이랑만 어울려 살고 싶다는 바람을 나도 친한 친구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인에게 무자비하고 자신의 잇속을 잘 챙겨먹는 인간이 잘 살아남는 것 같은데 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할까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고 나니,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이 내가 생각했던 다정함과는 좀 다르다는 걸 알게 됐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이 진짜로, 찐으로 다정하다는 의미보다는

내 생존을 위해 친근하게 대하고 협력하고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는 쪽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내집단끼리 똘똘 뭉쳐 카르텔 형성하는 것이나

외집단은 배척하고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고 좋아하는,

굉장히 별로인 인간 군상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나에겐 흑인 친구도 백인 친구도 어떠한 종류의 혼혈 친구도 없다.

국적이 다른 친구는 있지만 인종은 같다.

대학생 때 북미 지역으로 교환학생을 반년이라도 갈 걸 그랬나 최근 문득 생각했었다.

너무 좁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종 다른 친구 있다는 게 넓게 잘 산다는 의미는 아님)

사우디 친구는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정말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편견이란 무엇인지 여실히 느꼈다. 실제의 그 사우디 친구들은 매우 선량했는데.

만약 나에게 인종이 다른 외국인 가족이 앞으로 생기게 된다면 친하게 지내고 싶다.

 

지구 인류 전체, 나아가 동식물까지도 내집단이라는 마인드를 지구상 모든 인간이 가지게 된다면?

너무나 이상적이지만 바라게 된다.

현실은 '내집단'이 점점점점점점점점점 좁아지고 있고 그게 사회적으로 큰 문제인 것 같다.

나 또한 거르고 거른 내 사람들, '내집단'이랑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 '내집단'이 자신의 혈육에게 국한된 경우 자기 자녀를 보호한답시고 타인을 인격적으로 짓밟는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살아가기만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초딩 때 나는 왜 그렇게 강아지가 키우고 싶고 병아리가 키우고 싶고 그랬던 걸까?

 

친구는 이 책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최재천 교수 : 개인적으로 나는 가장 다정한 늑대들을 우리가 잡아다가 길들인 게 아니라 가장 붙임성 있는 늑대들이 우리와 함께 살기로 선택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친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랑 살면서 발현되고 향상된 것이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우리 종은 갈수록 복잡한 방법으로 협력하고 소통했고 이로써 문화적 역량도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 종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혁신할 수 있었고 또 그 혁신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다른 인류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누군가를 비인간화하며 비하하는 표현을 쓰는 사람을 조심해야겠다. 다른 책에서도 나치가 유대인을 핍박하기 시작할 때 인간이 아닌 존재로 비유하는 것이 비극의 시그널이었다는 식의 설명을 본 적 있음.)

 

눈이 그려진 인쇄물을 받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쓰레기를 덜 버렸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탕비실에 눈이 그려진 비품비 모금 상자를 놓아두었을 때 돈을 넣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자전거 거치대 위에 성난 눈 사진을 붙여두었을 때는 자전거 도난 건이 기존보다 60퍼센트 감소했다. 하얀 공막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협력을 증진하는 데 두루 이바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이 눈일 뿐인데 신기하다. 인테리어 적으로는 참 별로지만, 인력 투입 없이 양심적 행동 유도가 필요할 때 좋은 전략이겠다.)

 

밴듀라는 비인간화가 인간의 잔인성을 설명해주는 중심 요소라고 결론 내렸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친화력을 지닌 동시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닌 종임을 설명해준다.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말했다. "폭군의 최우선 관심사는 갖가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도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관용이 없는 사람들을 '교육'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애슐리 자디나가 설문조사에 참여한 백인들에게 흑인들이 수감과 사형 집행에서 부당하게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이미 흑인을 인간 이하로 보던 사람들은 흑인을 더 비인간화하게 되고 흑인에 대한 징벌 정책을 더 지지하게 되었음을 기억하자. 앎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 것이다. 가치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거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치거나 다문화주의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등의 행동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이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대상은 이미 관용을 실천하는 사람들인 듯하다.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문화 감수성 훈련이 본래 자리잡고 있던 불관용 이데올로기를 오히려 더 공고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책 뒷부분에서 실제로 접촉하는 것이 유대감 형성에 효과적이라고 나옴.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서 사람이 자기 생각을 바꾸는 게 아니라는 것은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에도 잘 나옴.)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는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그 위협받는 느낌을, 아주 잠깐만이라도 없앨 수 있다면 다른 종류의 피드백 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답성 인간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집단들과 자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사회적 유대감이 더 많이 형성되며 타인이 지닌 생각에 대한 감수성도 전반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 문화, 인종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은 우리 모두가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효과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다. (이데올로기, 인종이 다른 사람 말고 매너 수준이 다른 사람과도 접촉하고 교류하고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박한선 의사 : 다윈이 말한 '적자'란 당장의 '국소적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이다. 그러나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우월한' 자가 더 잘 생존하며, 심지어 더 잘 생존해야 마땅하다는 오해를 낳았다. 자연의 세계에는 우월이 없다. 그렇다면 아예 살아남는 자가 우월하다고 정의해보면 어떨까? 하지만 '살아남는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