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회사인간ㅣ장재용ㅣ이렇게 회사가 다니기 싫다면

기로기 2023. 6. 29. 20:45

제목을 보고 생각했던 것과는 꽤나 다른 책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것에 대해 미화하거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책이 아니다.

회사가 다니기 싫지만 월급 때문에 억지로 다녀야 하는 처지에 대한 고찰을 260쪽 남짓한 책으로 풀어냈다.

난 이 정도 회사가 다니기 싫으면 관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장의 무게에 대해 쉽게 얘기할 순 없다.

 

글 내용을 바탕으로 추측컨대 삼성전자 생산직을 하시다가 해외로 이직해서 해외 세 군데 정도에서 지내신 분인 거 같다. 아닐 수도 있음. 책에서 개인사를 디테일하게 짚지는 않는다. 그리고 출간 이후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 수 없다. 이 책을 낸 뒤로 후속책도 아직 없는 것 같고. 그저 회사인간에서 탈출하여 좋아하는 등산, 야구, 글과 더 가까이 지내는 생활을 하고 계시기를 바라게 된다.

 

이 책은 내가 아마도 회사를 다니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알게 된 책이었던 것 같다.

이제서야 읽게 되었는데 이제 보니 스노우폭스 출판사의 책이기도 하다.

(아니다, 어쩌면 스노우폭스 출판사의 책을 쭉 둘러보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오탈자가 여러 군데 보여서 좀 실망스러웠다.

 

37)자본주의 시대 월급쟁이의 공통 조상은 왕정의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의 양인이나 노예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잉태한 유럽 봉건제 중세의 농노들인 것이다. 덧붙이면 역사적 관점에서 봉건제 유럽의 농노와 오늘 회사인간과의 거리는 조선시대의 '상놈'과 나와의 거리보다 가깝고, 사회 계급적 관점에서는 지금 한국 부자와 나와의 거리보다 가깝다. 요컨대, 지리 문화적으로는 조선의 천민이 나와 가깝지만, 사회 경제적으로는 유럽의 농노가 더 가깝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재밌는 관점이다.)

 

54)오늘에 이르면 국민 대부분의 사람이 임금을 받는 노예다. 주인은 자본이고 이 체계는 극단적 형태의 노예제 사회인 셈이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두 가지 소망을 갖는다. 고급 노예가 되는 것과 친절한 주인을 만나는 것. 전자는 이미 오늘날 부모들의 소망이자 교육의 목표가 됐고, 후자는 노예가 친절한 주인을 만나면 스스로 노예임을 자각하지 못하게 돼 철저한 구조 속에 매몰된다. 회사인간은 저 두 가지 노예의 소망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56)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자들이 물건을 얼마나 많이 팔지만을 고민하게 하고 그 고민이 삶의 전부가 되도록 만들었으니 주인의 승리라 불릴 만하다. 이른바 임금 수준이 높은 고급 노예를 구분했고 주인과의 대등함을 넘어 자신이 바로 주인임을 자각하는 노예를 만들었다. 

 

61)높은 가격의 인간이 고귀한 인간이 되어버린 세계와 그것이 전진하는 세계의 본령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온전하고 의젓하게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 상품이 아니라, 노예가 아니라 특별하고 개별적인 인간으로서, 이 세계에 살아야 할 가치를 묻는 건 허망한 일인가? 그렇다면 회사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71)외로움, 불안은 자유의 조건이다. 집단에 속한 정규직이라는 소속감으로 외로움은 사라진다. 가처분소득의 증가와 그로 인한 소비와 소유는 불안을 줄여준다. 대신 소속감과 소유로 인해 자유는 멀어진다. 자신의 생각을 지우면 편안하다. 집단의 생각을 자기 생각인 양 하면 된다. 힘들게 자기 생각을 쥐어짤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 감정, 내 사유, 내 취향은 사라진다.

 

216)억지로 간 술자리에 부어지는 술을 마시며 맥없는 사내들의 낮고 낮은 가십들을, 듣고 날아가 버릴 그저 그런 얘기들을 듣고 또 듣는다. 마흔은 삶이라는 얼음판에 미끄러지듯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지는 것이다. 이미 내 삶은 내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관성이 지배하고 있다. 마흔은 관성의 최대값이고 꿈과 이상의 최소값이다. (슬프다. 이런 마흔이 되지 않기 위해 전력투구해야겠다...)

 

221)생긴 대로 사는 것이다. 생긴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시켜서 하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밥과 꿈이 화해하는 지점이다. 서두르지 말고 그 지점을 찾아라. 

 

224)두 가지는 늘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대에게 말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를 준열하게 꾸짖는 것이니 첫째, 지금을 떠나선 안 되고 둘째, 나를 떠나선 안 된다. 그대나 나나 지금 여기를 바라보지 않고 늘 먼 미래 어딘가만 바라보고 있다. '여기 지금'을 살지 않고 과거 빛나던 순간만을 기억한 채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그렇다고 지금도 아닌 지금을 살고 있다. 쓸데없는 일이다. 이를테면 그 시절, 그 시기, 그 순간이 자신에게 너무도 강렬하여 시간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시대를 건너오지 못하고 머무르는 것이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늘 그때의 이야기만 한다. 그때의 환희로 사는 사람들이다. 지금 사는 꼬라지가 꼭 그 순간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경계해야 한다. 삶은 멈추지 않고 머물지도 않으며 고이지도 않는다.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는가? 되는 게 하나 없다는 생각의 근원은 과거에 무게중심을 놓고 살기 때문이다. 지나간 봉우리는 잊자. 지금을 어엿하게 살아갈 수 없다면 그때도, 앞으로도 제대로 사는 게 아니다. (좋은 말이다. 지금, 나를 살자. 다짐.)

 

238)회의 : 할 말 다하는 팀장님을 보면 언어의 괄약근이 풀렸다 여길 수밖에. 사람이 모여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시간. 초조한 팀장님의 업무적 자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핏기 없는 얼굴로 모인다. 그래서 죽음의 냄새가 나는지 모른다. 회의는 닦달하는 상사의 물음에 맑게 닦인 목소리로 지체 없이 대답해야 하는 약식의 업무 책문이다. 이 자리에서 날아오는 질문에 어물거리나 묻는 자의 심증을 꿰뚫지 못한 대답을 할 경우 상사의 눈썹은 날카롭게 치켜 올려지고 게임은 끝난다. 직장인은 여기서 거의 자신의 능력 전부가 평가된다. 무능과 유능은 먼 데 있지 않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충성심이 뚝뚝 떨어지는 자는 유능하고 그런 분위기가 정나미 떨어져 침묵하는 자는 무능하다. (웃기면서도 씁쓸하고 공감가는 풀이다. 회사생활 안 해봤으면 뭔 소린지 모를 것 같다.)

 

263)경박한 일상, 무엇이든 알고 있어야 하고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질질 끌려다니는 삶에서 빠져 나와 침묵으로 자신에게 침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