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ㅣ김지수ㅣ다 동의하진 않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

기로기 2023. 6. 7. 16:10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려 완독한 책이다. 천천히 곱씹고 생각하며 읽다 보니 진도가 쉬이 잘 나가지 않았다.

이어령 선생의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 분의 성함 외에는 잘 몰랐다.

말씀 대로 육체가 사라져도 말과 생각이 남아 더 오래 살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영향을 주고 계시니까. 

 

책에 나온 모든 생각에 동의하진 않지만 새겨들을 말씀도 많았다. 어떤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는지 책을 읽으며 메모를 중간중간 해두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기록이 없는 걸 보니 메모하지 않은 것 같다. 

 

본인은 누군가를 용서하기보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이다.

하루 아침에 세상이 바뀌게 하는 건 눈(snow)밖에 없다.

신념을 지닌 사람을 조심하라.

등 친구들이 인상깊게 읽었다고 하는 구절도 따로 정리 좀 해둘 걸 그랬다. 

 

아래는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인데 정리하고 나니 '자주성(자기다움, 자신만의 길)'을 강조한 게 많다.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지 않겠나.

 

보통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다음이 있어. 죽음에 대해 쓰는 거지.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더 갈 수 있다네.

 

결정된 운이 7이면 내 몫의 3이 있다네. 그 3이 바로 자유의지야. 모든 것이 갖춰진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 그게 설사 어리석음일지라도 그게 인간이 행사한 자유의지라네. 아버지 집에서 지냈으면 편하게 살았을 텐데, 굳이 집을 떠나 고생하고 돌아온 탕자처럼 ... 어차피 집으로 돌아올 운명일지라도, 떠나기 전의 탕자와 돌아온 후의 탕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네. 그렇게 제 몸을 던져 깨달아야, 잘났거나 못났거나 진짜 자기가 되는 거지. 알겠나?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수만 가지 희비극을 다 겪어야 만족하는 존재라네.

 

사람들은 말끝마다 '가타부타 따질 거 없다'고 해. 질문을 하면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야?' 공격 신호로 오해를 한다고. 나는 상대를 비방하려는 게 아니라 납득이 안 가면 질문을 하는 본능을 따라갔어. 그런데 질문을 받으면, 다들 자기를 무시하고 놀린다고 착각하는 거야. 질문 없는 사회에서 자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거라네.

 

소설로 쓰여진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전쟁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도 마치 내 비극의 가정사처럼 느껴지거든.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들인데도, 내 형제자매 같지. 그게 기호계의 힘이야. 그래서 나는 답답하다네. 과학 하는 사람, 정치 하는 사람, 경제 하는 사람이 문학을 알아야 해. 교양으로 인문학 하라는 게 아니야. 인문학은 액세서리가 아니라네.

 

오해하지 마시게. 그건 남이 도와줘서 없어질 외로움이 아니야.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거네. 그 외로움이 모든 사회생활에 불리하지만, 그런 자발적 유폐 속에 시가 나오고 창조가 나오고 정의가 나오는 거지. 둥글둥글,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세계에선 관습에 의한 움직임은 있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가 발전의 동력은 얻을 수 없어.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김지수 작가의 말) 내 삶으로 누리지 못하면서, 그 물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도했던 시절. 한편으론 마치 그 탐스러운 것들에 초연한 척, 진지하고 교양 있는 글로 나를 포장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 다리를 딛고 그림처럼 서 있는 홍학처럼, 비단과 누더기를 함께 기운 천 조각처럼 나의 내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불균질했고 아슬아슬했다.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길 잃은 양은 그런 존재라네.

 

(김지수 작가의 말)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일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지셨군요. 그 즐거움의 결과가 애국이 된 거고요. 신기합니다. 나를 위한 놀이가 남을 위한 일이 되는, 그 순수한 자기 몰두의 사이클이!

 

자본주의라도 노동은 재미없는 거야. 인생 그렇게 살면 노예 되는 거야. 노예는 사회주의에도 있고 자본주의에도 있어. 반대로 예술은 사회주의에서도 할 수 있고 자본주의에서도 할 수 있어. 단, 그러려면 자유의지가 있어야 하네. 길을 일탈해서 길 잃을 자유가 있어야 해. 그게 선이든 악이든 일단 나의 행위가 있어야 하는 거지.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

 

남은 내 생각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도 '남이 어떻게 볼까?' 그 기준으로 자기 자치를 연기하고 사니 허망한 거지.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