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특권 중산층ㅣ구해근ㅣ한국의 중산층 변화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기로기 2023. 6. 6. 14:13

어떻게 보면 다 아는 이야기다. 한국 사회 그것도 서울에 살면 체감하는 것들. 그러나 이렇게 정식 출간된 책으로 논리적 분석된 글로 접해 좋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점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친구들과 대화에서 명품 소비, 사실상 같은 동네지만 행정구역 상 표기로 너와 나 구별짓고 갈라치기, 돈은 있지만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 집에서 도피성 해외유학 보내기, 해외 유학파의 국내 기업 취업 시 저성과, 국내 기업 임원들의 서로 서로 자녀 비리취업 (없는 자리도 만들어 인턴 시켜주고 경력 만들어줌) 등을 얘기했었는데 이 책에 이게 다 나온다는 거다. 비판했던 여러 문제들을 하나의 궤로 읽어서 좋았다. 그리고 <지위 게임>이라는 책을 읽은 후였기 때문에 이 모든 게 지위 게임으로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우리가 피곤한 삶, 경쟁에 갈아넣는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느낀다. 

근데 이 모든 난리가 돈이 아주 많은 자산가라면 상관 없다는 것도 킬포다. 돈 원툴인 자본주의 사회니까. (최근 접한 세이노 작가도 손주은 회장도 자녀를 명문대 입학시킨 것 같지 않더라. <재벌집 막내아들> 보면 학벌을 원하는 설정이고 실제 삼성가 2세들도 학벌이 다 좋은데 이건 학벌까지도 가지겠다는 재벌가의 또 다른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미국에서도 돈이 충분히 많은 부유층 집안들의 자녀 입학 비리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멋진 상징인 건 맞는 듯.)

아쉬운 점이라면 한국의 신흥 부자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 인기 유튜버를 포함한 인플루언서들, 주식/코인/부동산으로 투자에 성공한 개인투자자들 등 영앤리치 집단에 대해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기에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말 그대로 '신흥' 부자 계급이라 그럴 거 같기도 하고 하나의 경향성을 추적하기에는 그 수가 그렇게까지 많거나 집단화되지는 않아서일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교수가 계급에 대해 쓴 글은 살짝 자신의 (교수라는 지위를 가진) 계급적 특권에 대해 성찰 또는 반성하곤 하던데 이 책도 그러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자기객관화라도 하는 게 어디인가 싶지만. 
 
한국사회의 계급 또는 중산층에 대해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극추천하는 책이다. 
 
56)오늘의 한국사회에 나타난 중산층 기준의 '비현실적인' 상승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배경을 두고 있다. 간단히 얘기해서 한국 중산층의 준거집단이 변한 것이다. 과거에 중산층이 모두 고만고만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소수의 부유층이 일반 중산층에서 떨어져나와 생활 전반의 특권적 기회를 누리게 됨으로써 새로운 준거집단이 된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핵심적인 요인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불평등이며, 불평등이 중간계층을 양극화의 방향으로 분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글로벌 자본주의가 들여오는 소비주의가 경제적 양극화를 사회적, 문화적 형태의 양극화로 악화시키는 점도 중요하다. 
 
90)리브스는 미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이 기회 사재기의 대표적 예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주거지에서의 배타적 영역 구축, 둘째 명문 사립대학 입학 과정에서 사용되는 동문자녀 우대 선발제도, 셋째 인턴십 기회의 비공식적 배분 등이다. ... 리브스는 원래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 귀화한 사람인데, 그가 특히 관심 있게 본 미국 제도는 유명 사립대학의 동문자녀 우대제도 legacy policy이다. 이 제도는 자기 대학의 동문 자녀들에게 입학사정 과정에서 특혜를 주는 제도인데, 리브스의 얘기대로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이나 옥스퍼드 대학 등 일류 대학에서는 그런 제도가 폐기된 지 오래되었는데도 유독 미국에서 그런 제도가 아직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히 미국 중상층의 특이한 기회축적 현상 중 한 예라 할 만하다. 
 
114)중간계층은 동질적인 계층이 아니며 과거에도 중산층 안에 비교적 부유한 중산층 가정들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신중상층과 과거의 부유층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예전에는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는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어느정도 공평한 혜택을 받았고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반면, 현재는 그러한 상승이동의 기회가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신중상층은 대다수 중산층 사람들이 경제적 불안을 겪으며 하향이동을 할 때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은 호전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즉, 현재의 부유층은 경제적 양극화가 대다수 인구를 패자로 몰아가는 가운데 승자로 등장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일반 중, 하층 집단과 구별짓고 싶어하며, 그 욕구를 자신의 차별화된 거주지역, 소비 형태, 생활양식 등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점점 불안해져가는 사회에서 자신이 획득한 계급적 위치를 자식 세대가 계승할 수 있도록 사교육을 통한 교육 경쟁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117)신흥 부유층은 되도록 더 많은 특권적 기회를 소유하고 싶어하고 동시에 그 기회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미국의 엘리트층과는 달리 한국의 신흥 부유층은 아직 그들의 특권을 담보할 만한 도덕적 정당성은 물론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합법적인 수단이 자주 동원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회적 알력과 불안이 발생하고 있다. 특권적 기회에서 제외된 다수 국민은 가계 사정과 상관없이 부유층의 소비수준과 교육 전략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경제적 불안이 깊어지고 강한 좌절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결과적으로 상류 중산층과 일반 중산층 모두 종류는 다르지만 같은 정도의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138)경제적으로 중, 상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서울의 강북이나 지방 다른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강남의 특이성은 부유 중산층이 대규모로 밀집해서 산다는 점이다. 지리적, 공간적 밀집성은 서로 비슷한 경제적 위치에 있는 주민들 사이의 신분 경쟁을 치열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부유한 소비자가 몰려 있는 지역에는 당연히 고급 소비와 서비스 시장이 발달해서 주민들의 소비 활동을 부추기게 된다. 그러므로 강남 주민들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고급 소비를 통해서 신분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각 가정이 소유한 자동차 종류, 아파트 브랜드와 평수,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구 등을 서로 비교하며 경쟁을 하는 것이다. 강남의 대외적 이미지가 과소비, 사치, 또는 왜곡된 소비문화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소비뿐만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도 신분 경쟁을 한다.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서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부유 중산층 가정 간의 교육 경쟁은 사교육 시장을 발달시킨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151)명품의 민주화 또는 일상화는 신분 경쟁에서 명품의 구실을 약화시키기보다는 무엇이 가치 있는 럭셔리인가의 기준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어 있다. 
 
162)부유층의 소득과 자산이 크게 늘어나면, 그들은 더욱 고급스럽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고자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다른 일반 중산층으로부터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자본주의 시장은 이 신흥 부유층이 원하는 럭셔리 제품을 새로 만들어 공급한다. 이것을 바라보는 중산층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 부유층의 소비 형태를 모방하며 따라가려고 애쓴다. 그러면 부유층은 좀더 희소가치가 있고 품격 높은 럭셔리를 찾게 되고, 시장은 다시금 그런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한다. 일반 중산층은 또다시 이 새로운 럭셔리를 쫓아가려고 노력하게 되며, 다시 또 새로운 사이클의 경쟁이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럭셔리의 기준은 계속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패턴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한국 소비시장의 주요 변화이다.
 
175)교육으로 사회 신분과 보상을 결정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교육이 공정해야 한다는 믿음도 같이 강해졌다. 교육은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교육 경쟁은 공정한 규칙에 따라 진행된다고 믿고 싶어한다. 이런 기대가 배반당하게 되면, 특히 그 규칙을 배반하는 자가 부나 권력을 소지한 자인 경우라면 한국인들은 강하게 반항하는 것이다. 최근의 조국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모두 자신이나 측근의 자녀교육 비리와 깊게 관련이 있었던 것이 그 사실을 잘 입증한다.
 
178)학벌은 개인이 대학입시를 볼 시기에 결정된 후 평생 따라다니는 일종의 신분증서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정해진 학벌은 바뀌지 않고, 또다른 방법으로 대체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정말 무서운 낙인찍기라고 할 수 있다. 김동춘이 잘 지적한 대로, "한국의 수험생들에게 대학 서열은 이후의 인생의 진로와 직결되고 한번 정해지면 뒤집기 어령누 가장 엄한 지위 서열이자 계급이다."
 
192)현재 한국에서 명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스펙 쌓는 일에 거의 미칠 정도로 매달려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한 짓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모든 인맥과 정보를 활용하여 자식이 스펙 쌓는 일을 도와준다. 
 
194)현대사회의 계급세습은 대체로 두가지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는 부모가 자식에게 자산을 직접 상속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을 통한 방법이다. ... 교육을 통한 계급세습은 중산층 가정에 중요하고, 상위 중산층의 전문직 또는 관리직 가정에서 특히 중요하다.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들에게는 교육이 계급세습에 그렇게 중요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재산이나 사업체를 자식에게 물려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직, 관리직 중상층 가정에서는 교육이 거의 유일한 계급세습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식의 명문대 입학에 사활을 걸고 전력투구하는 것이다.
 
211)자녀교육에 헌신하는 것은 바로 유교에서 강조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게다가 유교적인 사고에서 자녀의 교육은 자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집단적인 프로젝트이다. 자녀교육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한 가족의 사회적인 명예나 존중의 척도가 된다. 그러므로 중산층 가정에는, 특히 상류 중산층 가정에는 조기유학이 가족의 계급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 되는 것이다. 
 
233)이 책의 관심사는 단지 경제적 양극화가 중산층을 내부적으로 분화시키고 새로운 상류층을 형성시켰다는 것을 밝히는 데만 있지 않다. 그보다는 계급구조의 그러한 변화가 한국사회에 어떤 새로운 계급관계와 신분 경쟁, 그리고 계급세습을 위한 투쟁을 가져오는지를 분석하고자 했다. 내 연구의 기본 논지는 세계화 시대에 새로 등장한 신흥 상류 중산층이 현재 한국사회의 게급동학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세 분야에 나타나는 변화에 집중했다. 소비를 통한 신분 경쟁, 주거지의 계층적 분리, 그리고 격심한 교육 경쟁이 그것이다. 이 책의 주요 관심은 이 세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경제적 양극화가 어떻게 사회적, 문화적 양극화로 발전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238)강남 부유층이 이렇게 불로소득(부동산 시세상승)으로 얻은 자산을 남보다 더 사치스러운 소비생활과 비싼 사교육에 투여하는 모습은 자연히 비강남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과 반감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강남의 신흥 부유층은 경제적, 사회적 특권을 누리면서도 도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다. 도덕적 정당성의 결여는 이들 신흥 부유층이 왜 집단적으로 불안을 느끼며 과소비와 과도한 교육 경쟁에 매달리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도덕적 정당성으로 인정받는 새로운 계급의 출현을 기대해도 될까? 그런 날이 올까?)
 
244)사실 한국 상류 중산층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극히 물질주의적, 가족이기주의적, 성공지상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자녀교육을 극히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250)특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자신이 자기들의 극히 물질주의적이고 가족이기주의적인 행동이 사회를 점점 더 경쟁적이고 소모적으로 만들며, 결과적으로 자기 자식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상류 중산층 문화가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고, 나눔의 문화를 강조하며, 성공의 기준을 '명문대로부터 화려한 직장으로'의 일직선 서열이 아닌 다양한 가치관으로 대체하고,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뀐다면, 설령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더라도 사회는 덜 소모적으로 경쟁적이 될 수 있고,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불안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은 결코 쉽게 찾아올 수는 없는 변화이다. 그러나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위해 의식 있는 지식인과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라고 굉장히 이상적으로 책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