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라는 화두에 호기심과 문제의식이 생긴지는 꽤 됐다. 그 중에서도 강력한 중독을 일으키는 게 마약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 급속도로 마약이 침투하고 있음에도 (오피셜로 마약청정국이 끝난지는 오래인데), 우리는 구체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마약과 마약사범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도 않고 있는 것 같다. 암수범죄를 20배로 계산하면 수십만명이 마약에 노출되어 있다는 건데..
이런 마약, 저런 마약, 이런 사건, 저런 사건, 여기저기서 자극적으로 보도되지만 우리는 마약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지 않나? 싶은 마음에 마약의 세계를 다룬 책들을 종종 찾아봤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이렇다할 책이 없었고 (피상적이거나 뇌피셜이거나..) 어째서 마약을 제대로 다룬 책이 없을까, 너무 음지의 일이라 그런가, 국내에 마약이 최근 몇 년 새 급증해서 그런가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도 큰 기대는 생기지 않았지만, 최근 책이고 국내 책이라는 점에서 읽어보았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끔찍할 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한국일보 기자 4명이 국내 마약중독의 실태를 가까이서 파헤쳤다. 단발적인 기사 하나 하나 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마약의 충격성에 대해 이렇게 퀄리티 높은 책을 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무서운 건 이 책이 2019년작인데 이 책에서 강도 있게 다루지도 않은 펜타닐이 불과 몇 년 사이 엄청나게 부상했다는 거다. 몇 년 후엔 또 어떤 신종 마약이 세계를 휩쓸지 모른다. 더 싸지고, 더 구하기 쉽고, 더 강력한.
내용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충격적이고 정보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나오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거나 두려운 분께는 추천하지 못하겠다. 아예 읽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정도기 때문에.
마약에 대하여 내가 평소 갖고 있던 문제의식은
- 마약은 피해자가 없다 또는 자기자신이라고..? 엄연한 불법이고 범죄이며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의 불안을 조장한다. 또한 마약 구입대금은 또다른 불법의 원동력으로 쓰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 초범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 처벌을 강화해서 마약에 손 한 번이라도 대면 인생 끝장난다는 걸 분명히 해야 하지 않나.
- 해외에 나가서 대마초를 해보는 경우가 흔하다. 대마가 합법인 지역이 있다고 해도 국내에서는 엄연히 불법인데.
- 대마를 허용하는 지역이 많아지고 있다. 이 흐름이 맞나 과연.
- 유명인의 마약에 대하여 업계와 대중이 관대하다. 좀 쉬다가 쉽게 주연으로 복귀하는 게 정말 문제가 없나?
였고 관련해서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서 처벌강화가 아닌 적극적 치료의 관점에서의 의견도 있다는 걸 알았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예방의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 책에서도 치료와 사회 복귀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나도 치료 관점에서 좀 더 바라볼 수 있게 되기는 했는데..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왜냐하면 치료와 사회 복귀에는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열심히 성실하고 건전하게 사회생활을 하며 국민이 낸 세금에서 비롯될 것이기에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반감이 드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마약은 불법이고 범죄이고 대부분 자발적이기 때문에 소수자/약자/빈곤층 지원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함)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치료되어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국가 존속과 안전에 좋은 일이기도 할 것이고.. 점점 마약이 전파되는 추세를 꺾으려면 지금까지의 대응과는 달라야 하긴 할 것 같다.
그런 걸 다 떠나서 치료와 사회 복귀라는 게 기적과도 같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좀 더 알게 됐다. 마약을 10년을 끊어도 끊었다고 결과처럼 말할 수가 없다. 한 번만 다시 손을 대도 이전처럼 돌아가버린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몸이 마약을 기억하는데 (현재 의료기술로는 특정 기억을 지우는 방법은 없음) 평생을 그 유혹을 뿌리치고 살아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책에는 실제 마약 중독자들의 발언(인터뷰)도 많이 실려있는데 정말 읽는 게 괴로울 정도로 무서웠다. 책을 읽다가 생각난 마약사범 유명인들의 사건을 찾아보다가 놀란 건, 이미 마약으로 잡혀갔던 이들이 또 다른 마약을 해서 최근에 또 잡힌 케이스들. 못 끊는 거다.
사례를 보면 어렸을 때 어울린 친구, 몸이 아프거나 상황이 어려울 때의 지인 권유로 별 생각 없이 마약을 접하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안타깝다. 어린 마음에 절대 호기심으로라도 손대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마약을 권유하는 인간들은 마약 소지 및 투약과는 별개의 죄로 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려버렸다. 마약에 빠진 딸을 십 수년 간 지켜본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을 땐 눈물이 났다. 다행히 10년 단약을 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계시다는데 두 번 다시는 마약에 손 대는 일 없으시길 바라고 또 바란다.
미디어(영화 등)에서도 그 폐해를 알리기보다는 자극성을 소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약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출지도 모른다는 문제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많이 알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과 고민들은 계속 관련 공부를 해나가면서 더 생각해 봐야겠다.
47)당국은 중독자를 구속만 할 것이 아니라 법적 장치를 만들어 치료와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병이 빨리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좋듯 중독도 마찬가지로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 그런 기회가 법적으로 갖춰지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절실하다.
127)누범자들은 검경이 마약 공급책과 '처벌 수위 거래'를 하면서 단순 투약자를 줄줄이 엮고, 수사 협조를 명분 삼아 판매자의 핵심 범죄사실을 빼주는 실적 수사에 매몰돼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인터뷰에서 수십 명의 마약 누범자는 "마약 판매자가 자신의 고객을 무더기로 넘겨 단순 투약자보다 형량을 겨우 2~4개월 더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성토했다. (마약 범죄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함)
158)싱가포르 법은 15그램 이상 헤로인을 소지한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역시 싱가포르..! 엄벌주의.)
164)검찰이 조건부로 기소유예를 해놓고 교육이나 치료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사후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의료계와 법조계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치료보호를 보냈으면 병원이 관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검찰의 생각이다. 일부 검사들은 "수사기관이 사후 관리까지 하는 기관은 아니지 않느냐"며 체계적으로 마약 사범을 사후 관리할 별도의 전문 기관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검사 의견에 동의)
176)마약류 중독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병원이) 손해를 보는 구조여서 치료 유인이 떨어진다. 또 병원은 가뜩이나 수익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마당에 마약 중독 환자가 혹시 병동에서 다른 환자에게 마약을 퍼뜨리거나 자칫 환각 증세 등으로 사고를 일으키면 법적 책임도 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더욱 꺼린다. 아울러 전문 의료진이 크게 부족한 데다 마약 중독 치료, 재활에 별 의지가 없는 우리 의료 현실도 여기에 작용한다. 약물 환자로서는 치료를 받을 길이 갈수록 좁아드는 실정이다. (정신과 의사 채널에서 얘기하기를, 일반 정신과 환자보다 알코올 중독 환자의 치료가 10배 어렵고, 알코올 중독 환자보다 마약 중독 환자가 10배는 더 어렵다고.. 정확한 배수라기보다는 그만큼 비교도 안 되게 훨씬 힘들다는 의미겠지.)
242)20여 년간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동안 전문 수사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단순 투약자를 검거해 실적을 올리려는 일선 수사기관의 행태에서 벗어나 상선과 마약 조직을 소탕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243)"(모 부장판사) 지금처럼 법원이 엄벌주의 기조로 죄에 대해 판단하는 역할만 한다면 중독을 치료하기는커녕 재범 가능성만 높일 수 있다. 법원이 '치료 사법'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미국식 마약법원처럼, 통상적인 형사재판을 진행하는 대신 판사의 감시하에 치료를 받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그 대안이다. ... "치료와 재활과 관련한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이런 식의 사법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원래 목적인 '치료'는 요원할 수 있다." 정부든 민간이든 마약 중독자를 치료할 지식, 병원, 프로그램, 전문가 인프라를 우선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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