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한국과 캐나다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두 나라 8인의 작가가 한 권의 책으로 만났다. 한국의 작가 김멜라, 김애란, 윤고은, 정보라 그리고 캐나다 작가 리사 버드윌슨, 얀 마텔, 조던 스콧, 킴 투이가 그들이다. (사)와우컬처랩의 기획으로 ‘다양성 그리고 포용과 연대’라는 주제를 두고 2023년부터 이들이 구상하고 집필하기 시작한 여덟 작품이 마침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로 출간되었다.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 _ 김멜라 6
어디에서 왔어요? _ 리사버드 윌슨 60
빗방울처럼 _ 김애란 88
머리 위의 달 _ 얀 마텔 134
테니스나무 _ 윤고은 154
보라색 뗏목 _ 조던 스콧 202
미션: 다이아몬드 _ 정보라 222
판사님 _ 킴 투이 262
작품 해설 _ 박혜진 288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 _ 김멜라 6
작품활동 왕성하게 하시는 김멜라 작가. 내가 본 작품들은 거의 퀴어 정체성과 성애를 주제로 한 글이었고 이번 글도 김메라 작가 글 다웠다. 통통 튀고 기발한 상상력이 있는. 이번에는 사람마다 배꼽에서 애착 혹은 성애의 빛이 나온다는 컨셉이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부모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이성의 연인으로 사랑의 양상이 변해갈 때 자신의 애착은 다른 여성에게로 계속 향했던 작가가 의문을 품다가,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읽고 소설을 쓸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읽어본 적 없는 작가인데 리뷰들이 좋아서 다음에 읽어보고 싶다.
어디에서 왔어요? _ 리사버드 윌슨 60
주인공이 같이 사는 연인 제이크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것 같고 주인공은 옆집 남자 스미스와 바람 피울까 생각을 하는데, 알고 보니 제이크의 바람 상대가 바로 그 스미스였다는 이야기. 마침 며칠 전에 비슷한 일화를 봐서 신기했다. 주인공은 캐나다 선주민 혼혈로서 마찬가지로 선주민 혈통의 제이크와 유대감이 있었고 그래서 관계가 어긋나도 놓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소수자성을 지닌 주인공이 제이크가 스미스를 만나는 것 즉 동성애라는 생각지 못한 소수자성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빗방울처럼 _ 김애란 88
김애란 작가의 글을 볼 때마다 어쩜 이리 섬세할꼬 생각하게 된다. 항상 다른 사람을 더 살피고 말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작가. 나의 별 뜻 없는 말 한 마디가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그런 섬세함.
머리 위의 달 _ 얀 마텔 134
그 유명한 <파이 이야기>의 작가였다. 이번 책 8명의 작가 중 2명이 남성 작가였는데, 얀 마텔과 조던 스콧. 정말 짧은 이야기지만 강렬했다.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이민자의 고통을 비이민자가 얼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테니스나무 _ 윤고은 154
윤고은 작가의 글은 아마 처음 읽어본 것 같다. 회사에 AI 수백개로만 이루어진 팀이 도입되고 그 팀에 인간인 주인공이 오발령 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진짜 근미래에 일어날 일 같아서 흥미진진했다. AI 시대 '인간미'는 어디에서 어떻게 우리가 지키고 발견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글.
보라색 뗏목 _ 조던 스콧 202
작가가 말을 더듬는 사람이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쓴 시라는 것을 작가의 말을 읽고 알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은 모른다는 말이 너무 인간적.. 말 더듬는 자신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아들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원망한다는 말이 마음 아픔.
미션: 다이아몬드 _ 정보라 222
정보라 작가님의 으스스함, 기묘함을 기대하고 읽었는데 그런 장르는 아니었다. 작가의 말을 읽고서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 담긴 발상이 너무 좋았다.
261)외국에 합법적으로 가려면 우선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 설문이 그 나라의 첫 관문이고 첫 인상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 비자 신청 설문 페이지를 찾아서 질문들을 들여다보았다. 비자 설문의 질문들은 잘 모르는 사람이 언뜻 보기에도 범죄자나 위험 인물을 가려내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에 개인이 아니라 민족이나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문화와 교류할 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한국인은 어떤 국가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지구인은 어떤 문명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같은 지구인을 살해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행성을 착취하고 파괴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가끔식 비자 설문의 질문들을 스스로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판사님 _ 킴 투이 262
북베트남이 승전했고, 그들에게는 남베트남에 공산주의 체제를 강요할 권리가 주어졌다. 그 삼 년 동안 나는 이십 년 동안 싸우던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지켜보았다. 승자는 자신이 승자임을 느끼기 위해 상대를 패자로 다루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마침내 무기를 쥔 채로 잠드는 사람이 없어졌을 때, 더는 아무도 위장복을 입지 않게 되었을 때, 그 누구도 더이상 어느 쪽 편인지 선택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을 때, 승자들이 패자들과 다른 어떤 방법으로 구별될 수 있었겠는가. 승자들은 모두가 같은 우두머리를 경배하도록,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음악을 듣도록, 같은 장면에 감탄하고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휘둘렀다. 사상, 믿음, 관례, 모든 것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해져야 했다. 정해진 선을 넘어가는 모든 생각이 고발 대상이 되었다.
=> 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상황.
다양성, 형평성, 이민... 나는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미리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는, 식기과 냅킨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경계가 그어진 식탁처럼 다룬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누군가의 접시에 담긴 음식은 절대 다른 사람의 접시로 옮겨 가지 못한다. 내가 오래전부터 지켜 왔고,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예절 규칙이다. 하지만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다 같이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서 하나밖에 없는 똑같은 향연을 다함께 즐기고 있다고, 하나뿐인 똑같은 행성에서 다 함께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아마도 저절로 모두 하나가 되지 않을까?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범주 혹은 집단으로 편을 가를 필요도 없이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 점점 더 많은 것이 오가고, 관점들이 다양해지고, 미소들도 열 배 더 많아지지 않을까?
=>작가가 서양의 식탁과 다른 동양의 식탁을 설명하면서 쓴 글인데 매우 좋은 관점이었다.
작품 해설 _ 박혜진 288
소설을 읽고 작품 해설을 봤다가 괜히 봤다 싶을 때도 많은데, 과하지 않게 좋은 해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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