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슬픔의 방문ㅣ장일호ㅣ책으로 달려가자

기로기 2025. 1. 27. 22:04

예전에 어떤 책인지 기사에서인지 장일호 라는 기자가 남편을 처음 알아갈 때 서로 책 추천을 해서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했다는 구절이 인상 깊었던 적이 있다. 그 덕에 책을 내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책자판기에 있길래 읽어보게 되었다.

 

아버지의 자살, 그로 인한 엄마의 상처와 고생과 가난, 동생은 고졸이고 동생의 친구는 조폭이 된 것, 아동기에 겪었던 끔찍한 성폭행, 가정환경으로 상고에 진학했으나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여 기자가 된 일, 종교에 대한 고민, 유산, 암 투병 등 생각지도 못했던 작가의 삶의 여러 일들을 알게 되었다. 

기자라고 하면, 중산층 가정에서 정규 교육을 잘 받고 자라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본인 역시 고소득까진 아닐지라도 중산층으로 살며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지닌 직업인이라는 인식(또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작가의 이어지는 자기고백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직업이라는 것이, 얼굴이라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으면서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이제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된 작가가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의 모습들도 여럿 나온다. 예를 들면 성폭행을 신고하지 않았던 것이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나 출산을 여전히 내심 바라는 것 등. 많은 청년 세대 자녀와 기성 세대 부모가 충돌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젠더감수성, 정상성, 정치관 등.

 

남동생이 아이의 아빠가 되었을 때 태어난 그 아이를 안고 통곡했는데 그 이유가 가난이 대물림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는 대목은 먹먹하고도 불편했다. 

 

백인 아내가 백인 아이의 이름을 사망한 K팝 아이돌의 이름으로 하고 싶어한다는 사연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면 동양인이 백인의 이름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흔한데 왜 백인이 동양인의 이름을 가지는 것은 드물어서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고, 과연 태어난 아이의 이름에 자살한 가수의 이름을 붙이겠다는 결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는 성찰을 많이 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사명감도 있는 멋진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나 아빠의 죽음에 근사한 데가 있었다는 표현이나, 암에 걸렸단 걸 알게 됐을 때에 내 글이 넓고 깊어질 가능성을 떠올렸다는 것 등 내가 보기에 지나치게 낭만적이라 두렵기까지 한 부분도 있었다. 

술 담배 커피 고기 중 하나를 끊느니 목숨을 끊겠다는 표현에 있어서도, 중독 문제나 육식에 대한 성찰은 전혀 없는 걸까 의문이 떠올랐다.

 

친구와 같이 읽고 얘기하고 싶은 책이다. 다행히 이 책은 꽤나 많이 팔린 것 같다. 작가는 책 팔아 번 돈은 책 사는 데 쓰겠다고 하셨다. 

 

 

83)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굉장한 재능 중 하나다. 꼭 그만큼 삶이 넓고 깊어진다. 싫어하는 것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늘려 가면서 살고 싶다.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날 때마다 싫어하는 것들이 나를 침범해 올 때 숨거나 도망갈 수 있는 요새를 짓는 기분이 든다. 

 

그즈음 내 기도의 내용 역시 달라졌다. 나는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으는 대신 똑바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 것'만을 구하는 것이 믿음이냐고. 진리가 어떻게 하나뿐일 수 있느냐고. 많은 사람이 거리 위에서 아파하고 있는데 나만 하나님 안에서 즐겁고 기쁘면 되겠느냐고. 교회라는 건물 밖에 '진짜 믿음'이 있다면? 교회에 매주 출석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면? 나의 질문 역시 자꾸만 교회 바깥을 향해 뻗어 나갔다. 

 

150)무엇보다 우리는 '효도는 셀프'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며느리나 사위로서 할 일의 목록에 효도를 넣지 않으면 서운함이나 다툼의 여지가 정말이지 아주 많이 줄어든다. 우리가 예의를 지켜야 하는 '남'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가'라는 우리의 질문에는 납득할 수 없는 답만 잔뜩 돌아오곤 했다. 사람들은 종종 우리에게 조언했다. 대부분이 아이가 없으면 부부 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적어도 그 조언 앞에서 우리는 단호했다. 아이가 있어야만 겨우 유지되는 관계라면 우리는 미련이 없으니까. 그런 때가 온다면 잘 헤어져야 한다고 다짐하곤 했다. 무엇보다 짝꿍은 '다음 과제'를 완수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고,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업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당위'와 '정상'에 대한 압력을 거스르고 자기 의지로 살고 싶어 했다.

 

아이를 통해 미래를 사는 게 두려웠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끌어안고 살아온 가난을 내 세대에서 끊어 낼 방법은 비출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내 아이가 살아야 할 미래를 예상할 때마다 몸을 떨었고, 내가 자라면서 경험한 고통을 그때마다 새롭게 곱씹었다. 더 공포스러운 일은 이 사회가 출산한 여성에게 '그 후'를 계획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일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결국엔 일을 포기한 재능 있는 여성을 너무 많이 보았다.

 

216)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준비가 안 된 사람' 혹은 '일반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없는 인생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거라고.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로 여기는 대신 지금처럼 아이가 없는 상태로 살게 되기까지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 사회에는 아이를 낳지 않으면 자녀 양육에 따르는 귀중한 경험의 '기회를 놓친다'는 경고 메시지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인생이 제공하는 모든 경험을 전부 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경험을 선택하고, 놓친 경험에는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은 나도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_

 

내가 회사에서 배운 가장 큰 것은 기사나 취재가 아니었다. 선배들은 선배가 베푼 것은 선배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후배에게 갚으라고 당부하곤 했다. 나는 선배들을 통해 마음은 정확하게 셈해 갚는 게 아니라 흐르는 것임을 배웠다. 고마워하되 미안해하지 않고, 받은 마음을 아직 서툰 타인을 위해 내어 주는 법도 함께 익혔다.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