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한 젊은 여성 작가가 등장했다고 해서 그 정보만으로 읽은 책이다.
읽을 때 보니 작가는 95년생이었고 90% 레즈비언이라 자신을 소개했으며 본업은 사진가이다.
도서관에서 조금만 읽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절반을 읽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집에 돌아와 그 날 다 읽고 잤다.
그만큼 흡인력 있는 글이었다.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다. 위고 출판사였는데, 책의 만듦새도 아주 맘에 들었다.
별다른 예상 없이 읽은 글이라 어떤 글이 나왔어도 예상 밖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생각지 못한 내용의 연속이었다.
'예쁜 여자는 예뻐서 고통받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저자의 성정체성에 대해서도, 저자는 수 년을 사귄 오랜 남자친구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자신은 여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성정체성을 떠나서 저자는 굉장히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요즘 읽은 책들의 저자가 알고보니 성소수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내가 사회변화나 고정관념 탈피와 관련된 주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성소수자 중에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사람의 비중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보다 훨씬 높은 건지, 아니면 성소수자가 우리의 예상보다 더 많은 건지..? 여러 이유가 복합적이겠지만 현실에서는 내 주변에 없는 (있더라도 최소한 내가 알지 못하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많이 접해서 알게 된다.
마음 맞는 친구 네 명이 모여서 그 자리에서 글쓰기를 하고 친구들 앞에서 읽고 서로 감상을 얘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나눠 먹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진 것 같던데 정말 정말 좋은 시간이란 걸 알 것 같다. 나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글쓰기는 아니지만) 책을 읽은 감상을 나누고 같이 고민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정말 행복하기에.
이상한 여자를 미워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여자는 이러이러 해야 해 라는 강박, 그리고 페미니스트인 여자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또 다른 강박. 여자들은 페미니스트이든 아니든 검열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는 서글픈 생각도 든다. 동시에 저자가 설명하듯 성소수자 여성이라 해서 젠더감수성이 다 풍부한 것이 절대로 아니며, 같은 커뮤니티 안에도 다양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어떤 한 특성으로만 납작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게 인간의 복잡성이라는 것도. 알지만 참 매번 당황하게 된다.
살아오면서 학교 친구들의 폭력, 남자친구라는 인간의 언어적 신체적 폭력, 친구가 아닌 몸으로만 바라보는 외국 남성들의 폭력, 성소수자 여성 지인의 성폭력 등 온갖 폭력을 겪고도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멋있는 사람이니 앞으로 사진과 글을 통해서 계속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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