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ㅣ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ㅣ미국 정치 이해

기로기 2024. 9. 2. 21:47

친구 추천으로 읽은 책.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를 보고 갸웃했었는데 이렇게 비판받는 제도인지는 몰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시행되고 있다니.

세계 최고, 세계 최강대국이라 자부하는 국가가 총기문제, 각종 중독문제, 건강보험문제, 노숙자문제 등을 보면 과연...?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낸 의견이 미국 사회에 반영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까?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라는 책도 읽어봐야겠다.

 

 

166)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미국은 더 이상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었고, 한때 굳건했던 인종적 수직체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백인 미국인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사회적 지위가 위협을 받으면서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소외와 추방, 박탈의 느낌을 받았다. 2015년 PRRI는 설문조사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1950년대 이후로 미국의 문화와 생활 방식이 "전반적으로 더 나아졌는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더 나빠졌는지" 물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히스패닉계 미국인, 그리고 종교가 없는 미국인들 대부분은 1950년대 이후로 상황이 더 나아졌다고 답한 반면, 백인의 57퍼센트, 그리고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72퍼센트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들이 보인 반응은 향수를 넘어선 것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사회적 수직체계가 평평해지면서 많은 백인은 부당하다고 느꼈다. 사회 내에서 보장된 지위와 더불어 성장한 사람은 그러한 지위를 빼앗겼을 때 부당함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많은 백인 미국인은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느꼈다. 설문조사 결과는 '백인에 반대하는 편향'의 존재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이 196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212) 모든 반다수결주의 제도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소수를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보전하는 제도, 그리고 특권을 가진 소수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리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프로 축구 시합에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선수를 보호하는 규칙을 통해 위험하고 불공정한 플레이를 금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미국은 언제나 반다수결주의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특성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 이유는 뭘까?
한 가지 이유는 역사적 시점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 헌법이다. 이는 18세기 문헌으로, 민주주의 이전 시대의 산물이다. 평등한 권리와 완전한 투표권을 기반으로 하는 오늘날 민주주의는 미국이 건국될 시점에는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의 통치와 관련해서 미국 건국자들의 이념은 대단히 급진적이었다.

 

이들 사례에서 반다수결주의는 다수의 지배와 소수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숭고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기보다 변화를 가로막겠다고 위협하는 강력한 소수를 달래기 위한 일련의 구체적인 양보의 타협안이라 하겠다. 미국의 건국 과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1787년 여름 미국의 건국자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였을 때, 두 가지 중대한 사안이 헌법적 합의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연합에서 작은 주들의 역할, 그리고 노예제였다. 델라웨어와 같은 작은 주의 대표들은 버지니아와 펜실베이니아와 같은 거대 주들이 그들의 이익을 묵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238) 필리버스터 옹호론자들은 이를 미국의 근본적인 전통이라고 포장해서 말한다. 하지만 사실 필리버스터는 뜻하지 않게 생겨났으며, 미국 역사에서 대부분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절대적인 소수 거부권은 최근의 발명품이다.

 

280) 선거 제도가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게 과잉대표를 허용할 때, 그래서 정당들이 '유권자 다수를 확보하지 않고서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때, 유권자의 생각에 반응해야 할 압박이 줄어든다.

 

바로 이러한 일이 21세기 초 공화당에서 일어났다. 공화당은 시골 지역에 편향된 제도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보통선거에서 계속해서 패하면서도 대선에서 승리하고 상원까지 (그리고 결국 대법원도) 장악했다. 말하자면 공화당은 경쟁해야 할 동기를 무디게 만드는 "헌법적 보호 장치의 수혜자가 되었다. 그들은 전국적인 선거에서 자동적으로 먼저 출발하는 어드밴티지를 누렸고, 이를 통해 경쟁 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공화당에게 내어준 선거 목발은 공화당의 극단주의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공화당이 '전국 선거에서 다수를 확보하지 않고서도 권력을 차지하고 휘두를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변화에 적응해야 할 전반적인 동기를 상실해버렸다. 지금 상태로도 그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계속해서 차지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노력을 한단 말인가? 공화당 정치인들은 스스로 강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었다.


217) 미국 헌법 체계 속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반다수결주의 제도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다음과 같다.
권리장전. 필라델피아 헌법 제정회의가 끝난 1791년에 헌법에 추가되었다.
대법원. 종신 재직권을 받은 판사들로 구성되며 사법심사 권한, 다시 말해 의회 다수가 통과시킨 법을 위헌으로 판단하여 폐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연방주의. 국가적 다수의 영향력을 넘어선 상당한 입법 권한을 주 및 지방 정부에 이양했다.
상하원 양원제. 법안 통과를 위해 두 의회의 다수가 필요하다.
심각하게 불균형하게 할당된 상원. 모든 주는 인구수에 상관없이 상원에서 동등한 대표권을 갖는다.
필리버스터. 상원의 압도적 다수 규칙(헌법에 들어 있지 않은)으로 정치적 소수가 다수가 지지하는 입법을 영구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선거인단. 작은 주에 특혜를 주고 보통선거의 패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통령 간접선거 제도.
헌법 수정을 위한 극단적으로 압도적인 다수 규칙. 상하원 모두 2/3 이상 찬성해야 하고, 전체 주의 3/4이 비준해야 한다.

 

이중에서 권리장전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가장 대표적인 제도다. 반면 다른 제도들은 양날의 검이다.

사법심사 권한을 가진 독립적인 대법원은 소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핵심 제도이지만, 종신 재직권을 받은 선출되지 않은 판사가 여러 세대에 걸쳐 다수의 뜻을 가로막을 수 있다. 나아가 대법원은 과도한 사법심사 권한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위협하지도 않으며 다수가 지지하는 법을 폐지할 수 있다.

연방주의는 흉포한 국가적 다수를 제지하는 보호막으로 볼 수 있지만, 미국 역사의 오랜 기간에 걸쳐 주와 지방 정부들이 시민권과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을 허용했다.

헌법 수정에서 압도적 다수 규칙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수 제도이지만, 미국 헌법은 수정이 극단적으로 까다롭다. 그리고 비교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우에 헌법 수정을 위한 장벽이 미국보다 훨씬 더 낮다.

비민주적인 반다수결주의 제도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제도는 선거적·입법적 다수의 희생으로 정치적 소수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중 한 가지는 선거인단이다. 선거인단 제도는 더 적은 표를 얻은 후보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또 다른 하나는 상원이다.

 

312)선거인단 제도 폐지는 왜 실패했는가
한때 민주주의 개척자이자 다른 나라의 모범이었던 미국은 이제 민주주의 세상에서 느림보가 되었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이전에 만들어진 제도를 허물어뜨리는 동안에 미국은 그 제도를 그대로 유지했고, 이로 인해 미국은 21세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여전히 반다수결주의 민주주의 사회로 남았다. 다음을 생각해보자.
•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권자가 아닌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다. "선거 다수의 의지에 반해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국은 강력한 상원을 기반으로 양원제를 유지하는 소수의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다. 그리고 강력한 상원이 "불평등한 주들을 평등하게 대표하는" 심각하게 불균형한 훨씬 더 소수의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다 (미국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곳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은 강력하고 불균형적인 상원과 '동시에' 소수의 거부권(필리버스터)을 모두 유지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의회 소수가 의회 다수를 반복적으로, 영구적으로 가로막지 못한다.
미국은 캐나다와 인도, 자메이카, 영국과 함께 최다득표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다. 최다득표자 선출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정당이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도록 하지만, 때로 더 적은 표를 얻은 정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게도 한다.
미국은 대법원 판사의 종신제를 유지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 모두 임기 제한이나 의무정년제, 혹은 두 제도를 동시에 유지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 중 미국 헌법은 가장 수정이 힘들다. 그이유는 양원의 압도적 다수에다가 3/4에 달하는 주들의 비준
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예외적인 국가다. 이제 다른 어떤 민주주의 국가보다 소수의 지배에 더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은 어떻게 미국을 앞질러나갈 수 있었을까? 노르웨이와 같은 나라는 어떻게 19세기 초 군주제에서 오늘날 모든 기준에서 미국보다 '더'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걸까? 한 가지 분명한 대답은 노르웨이의 헌법 수정이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서 헌법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두 번의 연속적인 선출 의회에서 2/3에 해당하는 압도적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처럼 예외적으로 까다로운 주 차원의 비준 요건은 없다.

 

341) 우리가 제시하는 개혁안이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덴마크와 독일, 핀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큰 성공을 거둔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 표를 더 쉽게 만들고, 게리맨더링을 없애고, 선거인단 제도를 직접적인 보통선거로 대체하고, 상원 필리버스터를 없애고, 상원을 보다 비례적으로 만들고, 대법원 종신제를 폐지하고, 헌법 수정을 좀 더 쉽게 만드는 개혁. 이 모든 변화를 통해 미국은 세상의 모든 나라를 따라잡게 될 것이다.

* '게리맨더링' (Gerrymandering) : 미국 정치에서 선거구를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인위적으로 경계를 조정하는 것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