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됐는데, 나는 처음 보는 작가라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수 년 전 업계 선배 분이 내게 추천하셨던 책을 쓴 분이었다. 그 책은 바쁘다는 핑계로 항상 '읽을 책 목록'에만 박제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이 분의 책을 접하게 되어 좋았다. 그리고 그간 이 분이 활동해오신 이력을 보니 사회문제에 너무 무지했나 싶어 이 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반성하는 마음도 들었다.
저자는 의대를 나왔는데, 의사가 되기보다는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요즘 세상에 거의 할 수 없는 결정 아닌가. 저자는 이에 대해 큰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의사가 되면 돈을 얼마나 버는지 몰랐기에 연구자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세 딸의 아버지로서 나중에 딸들이 아빠가 어떻게 살아가고자 했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나에게도 감동적이었다.
장애인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 차별에는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의 사고방식에 대해 또 한 번 놀란다. 그럼에도, 인류애까지는 모르겠지만, 부당한 낙인과 혐오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고 싶다.
공부가 가진 힘을 믿는다고 답했다. 공부가 당장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내거나 속 시원한 말로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지는 못하지만, 인류가 유사한 문제를 두고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얻게 되는 통찰이 있다고. 그 통찰의 힘이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출생 시 정해진 법적 성별이 남성이었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지하는 MTF(Male-To-Female) 트랜스젠더들의 옷차림을 탈코르셋 운동의 맥락에서 반동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인정받지 못해 고통받았던 숱한 시간들 속에서 온전한 자신이 되고자 외모를 꾸미는 길을 찾은 이들을 두고서, 가부장제가 강요한 여성의 옷을 입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폭력이다. 시스젠더 여성과 MTF 트랜스젠더는 같은 시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전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미국의 중산층 백인 여성들은 여성을 정치와 관련된 활동을 하기에는 충분히 '능력 있는 몸'을 가지고 있지 못한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남성중심사회에 맞서 투쟁해야 했다. 여성을 출산, 육아, 가사에 묶어놓는 가부장제는 백인 여성에게 잔혹한 억압으로 작동했다.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투표에 감정적이고 열등한 여성이 참여해선 안 된다고 말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노예제의 유산이 남아 있던 미국 남부에서 흑인 여성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키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육아는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권리였다. 같은 시기, 같은 나라를 살아가는 여성이라 해도 인종에 따라 육아의 의미는 달랐다. 낙태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고, 그 판단의 권리는 당사자 여성에게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낙태를 범죄화했던 많은 정책이 실제 낙태의 감소를 가져오기보다는 낙태 암시장을 형성해 비용을 높이고 전문적인 의료진의 시술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낙태 범죄화는 낙태 감소가 아니라 모성 사망률의 증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 오늘날까지도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여성은 아이를 키울 충분한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암묵적으로 또 명시적으로 가족과 병원에서 낙태를 강요받는다. (특히 첫 번째 사례에 대해 나도 항상 불편한 감정이 있었는데 이 설명을 통해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과 한국인의 인종차별 성향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검열과 긴장이 부족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인종별 거주지 분리가 심각한 미국 사회에서, 같은 질문(이웃에 인종이 다른 사람이 사는 것)에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응답한 5.6%가 실제 미국인의 속마음을 반영하는 숫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5.6%는 적어도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인종차별주의자로 여겨지고 싶지 않은 미국 사회의 긴장을 반영하는 숫자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그 긴장조차 부재한 것이지요.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인 공동체가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의 문제점을 상세히 따져보지 않고 교사 개인과 학생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직관적이고 쉬운 일입니다. 그만큼 폭력적이고, 또 그만큼 문제 해결로부터 멀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갈등 상황에서 갈등 당사자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갈등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은 없었던 건가 생각해보도록 해야겠다. 비건을 비난하기보다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하나라도 제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육식 중심 식당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건설적이듯이.)
원칙-실행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흑인이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서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으면 95%가 넘는 사람이 "그렇다"라고 답하지만 집주인이 상대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집을 팔지 않는 것을 금지하는 법에 찬성하는지 물으면 65%만이 "그렇다"라고 답한다. 주거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인종차별 금지 원칙에 찬성하는 것과,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것 사이에는 대부분 30% 가량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 30%의 차이가 나는 이해가 정말 잘 안 된다..)
낙인이 가져오는 가장 나쁜 결과 중 하나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병원에 가길 꺼리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 중 10%만 실제 치료를 받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전에는 우울증 상담을 받는 것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요즘은 상담받으러 가는 게 예전보다는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 같던데 아직도 낙인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할 순 없는 듯)
한국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수치스럽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정신질환을 가진 사실을 알게 되면 당황스러워 아무런 말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 외면하며 치료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치심을 없애려 하는 것이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사회가 그런 낙인을 만든다. (이혼 못하게 하고 숨기는 거랑 사고방식이 똑같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마땅히 거쳐야 할 경청과 조율이라는 과정을 생략한 채 장애인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장애인과 시민을 분리시키고 그들이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내기를, 그렇게 여론의 불만이 점점 더 커져 장애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시민'의 범주에서 멀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근거의 무게로 주장의 합리성을 판단하는 법정에서 자본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우아한 얼굴로 합리적인 주장을 하고, 종종 승소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고된 역사와 몸 깊숙이 새겨진 상처 말고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갖지 못합니다. 근거는 언어의 형태를 한 지식으로 표현되는데, 그 지식의 생산에는 자본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싸움에 연대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의 투쟁을 함부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연구자는 이미 존재하는 사실관계에 따라서, 그 데이터에 기반해 세상을 이해한다. 그런 합리성은 종종 보수적인 현실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역사는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의 질서에 도전하며 판에 균열을 만들어 낸 이들이 열어왔다.
오랜 시간 인간의 몸은 낮에는 햇빛 아래에서 일하고 밤에는 어둠 속에서 수면을 취하도록 진화되어 왔습니다. 야간에 불빛에 노출된 채 노동하는 일은 인간 세포의 생체시계를 무너뜨리고 호르몬을 교란시켜 암 발생 위험을 높입니다.
성폭력은 개개인의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비대칭적 권력관계와 폭력적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민주주의의 최전선입니다.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의 연쇄를 막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적이고 성급한 대책 발표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정책으로 생겨날 영향력을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난한 협의 과정이고, 그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의지와 인내이다.
한국에서 동성애자 자녀를 둔 부모 5명 중 4명은 자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비율이 생각보다 너무 낮아서 깜짝 놀랐다.)
(서지현 검사 인터뷰) 피해자들에 대한 기사 내용이나 댓글을 보면, 피해자는 항상 고통받고 있어야 하고 항상 슬퍼야 하고 절대로 행복해선 안 되고... 이런 것들이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죽어도 장례식장에서 유족은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지요. 일상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저는 피해자야말로 행복해져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검찰에서는 정의롭지 않은 상사의 지시를 거역한 검사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불의를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해야 잘나가요. 대부분의 검사는 굉장히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무기력한 상태예요. 그것도 메시지이지요. 정의를 좇기보다는 명령에 복종해야 출세한다는. 그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검찰은 바뀔 수 없어요.
제가 초임 때 어떤 글을 읽었어요. 세탁소에 새 옷걸이가 들어왔는데 헌 옷걸이가 말을 걸어요. "앞으로 너는 다양한 옷을 입게 될 거야. 하지만 그 옷이 너 자신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새 옷걸이가 물어요. 헌 옷걸이는 이렇게 답해요. "나는 그 옷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옷걸이를 너무나 많이 봤어." (권력을 가진 직업인으로서 그 권력이 곧 나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얘기겠지. 인간의 그릇된 동일시 중 한 가지가 역할이라 했던 것도 떠올랐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하고 함께 연대하며 싸우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장애 인권 운동을 통해 법적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내며 일군 일련의 성과 덕분이었다.
여성참정권, 인종 불평등, 전쟁, 자본주의에 대해 냉철하게 정치적 분석을 하던 헬렌 켈러는 장애를 두고서는 비슷한 수준의 분석을 하지 않았다. 혹은 하지 못했다. (시대적 한계)
저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말하는 게 항상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거꾸로 당사자들은 스스로 처했던 사건에 대해 말하는 데 필요한 학술적 언어를 갖추기 위한 훈련을 받기 어려웠고 또 무엇보다 삶이 너무 바빴어요.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제도에 대해 공부하고, 낙인에 대해 공부하고, 참사에 대해 공부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건에 있잖아요. '이 사건을 연구자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내 몫이구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해고 노동자들에게는 정리해고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만큼이나, 그 과정에서 갑자기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 어제까지 형, 동생 관계였던 '산 자'들이 "나라 망치는 빨갱이"라고 욕하는 것을 경험하며 생겨난 트라우마가 큰 상처였다. 그런데 해고 노동자의 아내들도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어제까지 같은 아파트에서 언니, 동생 하며 함께 다니던 이들이 남편의 '생존' 여부가 갈리자 길에서 마주쳐도 눈맞춤을 피했던 것이다. 그 인간적 배신감이 때로는 남편의 정리해고 자체보다 더 아팠다.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에 맞는 사실들만 모아 말하며 상대 진영을 비난할 수 있는 길을 찾고 끝내면 안 되는 거예요. 사람이 나아가는 건 답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질문을 잃지 않아서 나아가는 거예요. 중요한 질문들을 놓지 않고 있어서, 삶에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어서 그 긴장으로 나아가는 거거든요. 자신의 정치적 진영을 옹호하는 수준에서 천안함 사건을 이해하면 그 긴장이 '정리'가 되어버려요. 안심이 되고 편안해지거든요. 그럼 이 책은 더 이상 우리에게 질문이 되지 못해요. 그렇게 되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놀랍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걸 전제로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자꾸 실망하게 되고 세상을 경멸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맞다, 인간은 뼛속까지 이기적인 존재니까 디폴트값을 높게 설정하면 실망할 일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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