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괴물 유치원ㅣ정일리ㅣ영어 유치원 보낸 엄마의 다큐를 본 느낌

기로기 2023. 10. 17. 15:34

어마어마한 교육비를 자랑하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의 심리가 궁금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로는,

1. 최고의 교육을 해준다는 안도감

2. 어려서부터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

3. 한국인의 깊은 영어 컴플렉스

4. 영어유치원 다니는 집 애들과의 네트워킹

5. 정체성/지위의 표현 (울집 애는 영유 다녀)

등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된 이유가 결국 영어를 잘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영어 유치원을 다닐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웬만한 사람의 월급에 육박하는 금액을 들일 만큼의 일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다가 영어 유치원을 소재로 했다는 이 소설이 떠올랐고 읽어보게 되었다.

 

소설은 다큐라고 해도 될 정도로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었다.

자녀도 없고 영어 유치원과도 무관한 내가 읽어도 이 정도로 와닿을 정도라니.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이유는 책을 읽어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녀에게 최고의 교육을 해주고 싶은 마음, 언어이기 때문에 나중엔 늦으니 어릴 때 뚫어놔야 한다는 타이밍의 문제, 영어를 잘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부모 본인의 후회, 최소한 나중에 원망 들을 일은 없다(할 만큼 해줬다)는 부모로서의 일종의 면피, 중학교 때 영어를 끝내고 고등학교 때는 수학 과학에 집중하게 하겠다는 계획. 물론 위의 4번 네트워킹/정보 교환과 5번 정체성 표현 측면도 있었다.

반면 교육비 부담 뿐만 아니라 뛰어놀 나이에 책상에 앉아 어린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 부모의 욕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점, 학습 성공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단점도 알 수 있었다.

 

소설의 힘일까,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마음이 크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소설을 읽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영어 유치원에 보내려 애쓰는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다들 그런 분위기라면 휩쓸리지 않기가 힘들다. 내가 부모로서 지금 잡아주지 못해서, 내 교육 방식이 잘못되어 애가 나중에 따라잡기도 버거워지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줏대 있게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보다, 영어 유치원에 경제적인 무리를 해서라도 보내는 게 어쩌면 차라리 더 쉬운 방법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과 다르게 살기는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도 힘든 법이다.

 

그리고 자녀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데 여건이 되지 않을 때의 속상한 부모 마음을 헤아리자니, 쉽사리 아이를 낳을 엄두를 못내고 출생률이 낮은 것도 지극히 이해가 간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최고가 아니면 후려치는 분위기. 

 

대한민국 교육 실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영어 유치원 이야기 외에 구 남친과의 재회 이야기도 나오는데 결혼을 한다면 어떤 사람과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작가님이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고 책이나 영화에 취향과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서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 

 

 

106)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 제각각의 삶을 보며 혜림은 쟤들이 10대, 20대 때 내가 알던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생경했다. 

 

109)혜림은 결혼하고 한동안은 결혼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근원적인 고독의 문제로 힘들어했다. 혜림은 결혼 이후 내면을 눕힐 공간이 없었다. 가끔 생각했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를 누일 수 있는 사이였을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들은 이 세상의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했다. 대부분이라니... 혜림은 '대부분'이라는 보편성 속에 자신이라고 예외일 것은 없다는 것을 언젠가 받아들인 이후 더 이상 준석과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담담한데 너무 슬픈 대목이었다..)

 

237)모두들 타인에게 관심이 많아 보였지만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것 이외에는 보지 못했고, 각자의 삶이 지닌 도드라지는 장점을 보며 찬사를 보냈지만, 각자의 내면에서 곪아 썩어가는 종기는 보지 못했다. 그러한 채 일정 부분은 서로를 부러워하며, 또 일정 부분은 서로를 시기하고 비하하며, 또 일정 부분은 철저한 무관심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에 대해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