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ㅣ류이치 사카모토ㅣ음악가의 회고

기로기 2023. 8. 25. 14:17

지난 봄, 그가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표곡 몇 곡, 영화음악 작업도 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음악가였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음악가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갔을까 궁금하여 읽어보았다.

책은 밀리의 서재에도 있고 나는 전자책을 선호하지만, 양장본에 디자인도 멋진 책이라 종이책으로 끝까지 읽었다.

제목은 저자 본인이 남긴 말은 아니고 수십년 전 작업했던 영화에 나오는 대사이자, 그 영화의 원작 소설에 나온 문장이다.

 

책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잘 알지 못했던 음악가라 몰랐던 작업과 내용들이 가득이었다.

그리고 대충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아카데미상을 진작에 수상한 것도 제대로 몰랐었고, 원전 반대에 목소리를 높인 것, 사회를 위해 했던 자선활동들, 방송출연들, 작곡 뿐 아니라 전시와 공연, 영화제 심사위원 등.

책 말미에 유족이 왜 남들의 세 배는 살았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셨구나. 

다큐멘터리 CODA를 보면서야 나는 이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했구나, 흑백사진 몇 장 정도의 이미지밖에 갖고 있지 않았구나 알았다.

고인이 되고 나서 이렇게 추모 속에 더 주목받고 인정받는다는 느낌도 조금 들어 슬퍼졌다.

 

세계 여러 곳을 누비며 예술인들과 소통하는 삶이 그려진다. 스스로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고 하는데, 엄밀히 업계 동료를 친구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만, 내가 보기엔 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라 할 정도로 왕성하게 교류활동을 하신 것 같다.

 

휴가 3일 만에 다시 일하겠다고 자진해서 말했다니, 어지간히도 워커홀릭인 데다가

 

레버넌트 때가 음악하면서 처음으로 좌절을 맛본 때였다니, 공연이 아니면 피아노 연습도 안 했다니, 천재잖아!!

 

레버넌트 때 감독을 끝까지 설득했던 말 Trust me로 티셔츠를 제작한 일화는 웃기고도 멋졌다.

 

인간적인 결함 내지는 단점도 소소한 에피소드 여러 가지로 드러난다. 예를 들면 I hate sightseeing! 이라고 소리치며 차에서 내렸다는 썰에서는 내가 그 담당자였으면 얼마나 쫄렸을까 싶더라. 젊었을 때 돈과 여자에 눈이 멀어 있었다고도 하는데,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고 상상에 맡긴다고 했다. 다만 젊은 시절 여성 음악가와 동거하다가 마음대로 집을 나갔었다는 이야기는 나온다.

 

한국과의 인연도 곳곳에 소개되는데 그 중 영화 남한산성 작업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간략히 나와있어서 아쉬웠다.

 

해외에서 활동할 때 싱가포르, 홍콩 사람들은 보러 오는데 일본 회사에선 아무도 보러오지 않았다며 자신의 활동을 좇아주길 바란다고 했는데 우선 일본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를 꾸준히 팔로업하는 회사가 없었다는 것도 의외였고 그걸 돌직구로 밝히는 것도 놀라웠다. 그만큼 대가니까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겠지.

 

코로나 시국 뉴욕에서 저녁 7시가 되면 의료진을 위해 박수를 치거나 종소리를 냈다는 일화가 나오는데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몇 달이나 지속되었다고 하니, 우리는 그래도 이어져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을 것 같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 같다.

 

적극적으로 암 치료를 받다가, 마지막에는 치료를 중단하고 장례식 등 여러 필요한 절차를 정리하고 가신 듯하다. 한 사람의 생애 마지막을 일기를 보듯 가까이서 들여다본 느낌이다. 잘 알지 못했던 음악가의 인생에 대해서도 이렇게나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읽었는데, 정작 우리 할머니의 인생과 죽음에 대해서는 나는 너무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고 슬펐다.

 

아무리 유명했어도,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아무리 바쁘게 살았어도, 결국 모든 인간은 죽는다. 홀로 떠난다. 삶에는 의미가 없다, 삶은 허무라는 말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게 참 덧없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남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음악과 영화 등 예술이 그랬듯, 나에게는 어떤 나만의 길과 전문분야를 갈고닦는 것이 좋을까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만의 길을 가고 그 길을 계속해서 함께 가는 동료들이 있다면 더욱 멋진 삶일 것 같다. 

 

69)흔히 운동선수들이 '존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을 하는데요. 그와 비슷한 일이 제게도 일어났습니다. 아무런 잡념도 없는 상태로 연주에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두 시간이 흘러 있었습니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하늘에서 음악의 신이 강림해 고리 같은 것으로 저를 들어 올려 한 단계 높은 스테이지에 데려다 놓은 느낌이랄까요.

 

128)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침묵은 곧 야만이다, 이것이 제 신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