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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ㅣ나심 니콜라스 탈레브ㅣ역시 나심

기로기 2023. 3. 5. 15:35

역시나 좋았다. 나심 탈레브가 또 책을 내주면 좋겠다. 그때까지 블랙스완도, 안티프래질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무작위성, 불확실성, 카오스도 마찬가지다. 나는 당신이 이런 것들을 피하지 않고 활용하기를 원한다.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우리는 주변에서 일정 정도의 스트레스나 가변성을 좋아하는 대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경제 시스템, 인간의 몸, 영양(당뇨병을 비롯해 현대의 이와 비슷한 질병은 음식물 섭취의 무작위성의 결여나 간헐적인 단식과 같은 스트레스의 결여와 관련 있다), 정신이 그렇다.

 

역사상 어떤 순간에도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 즉 개인적으로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커다란 권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이제 중요한 윤리 원칙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프래질하게 만드는 대가로 자신이 안티프래질해져서는 안 된다.

 

강건함 혹은 회복력은 가변성이나 무질서에 의해 피해를 보거나 이익을 얻도록 해주지 않는다. 반면에 안티프래질은 이런 것들로부터 이익을 얻도록 해준다.

 

그리스 신화에는 레르나Lerna 호수에 사는 뱀처럼 생긴 생명체, 히드라가 등장한다. 히드라는 머리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데, 머리 하나를 자를 때마다 두 개가 다시 생긴다. 따라서 히드라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기를 원한다. 결국 히드라는 안티프래질을 상징하는 셈이다.

 

어떻게 혁신을 이루어내는가? 먼저 절망적이지는 않더라도 심각하게 어려운 상황에 빠져보라. 나는 필요가 혁신과 발전을 낳는다고 믿는다.

 

여분은 보험이라기보다 투자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가 비효율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때로는 상당히 효율적.

 

노화의 상당 부분은 편안함이 주는 효과(현대 문명의 질병)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 수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아픈 사람들도 점점 많아진다. 자연 환경에서 사람들은 노화 현상을 겪지 않고 죽거나, 노화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의 혈압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지만,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혈압은 죽을 때까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런 인위적인 노화는 우리 몸이 갖고 있는 안티프래질적 특성을 억압하는 데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누군가의 안티프래질은 반드시 타인의 프래질에 대한 대가로 나타난다. 시스템에서 어떤 단위(프래질한 단위 혹은 사람)의 희생은 반드시 다른 단위(혹은 전체)의 혜택을 위해서 필요하다. 지금 막 시작하는 기업의 프래질은 경제 전체의 안티프래질을 위해 필요하다.

 

사람들은 구제금융이 어느 누구도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마저 몰락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지속적인 실패만이 시스템을 보존해줄 수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대부분의 정부 개입과 사회 정책은 약한 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기존 세력을 강화시켜준다.

 

자연은 작은 실수를 좋아한다. 이런 실수 없이는 유전적인 변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판단을 할 때 안티프래질을 싫어하는 정신적 바이어스에 휘둘린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하자면, 작은 실수를 기피하면 훨씬 더 심각하고 커다란 실수를 범하게 된다.

 

내 주장은 개입에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앞에서 나는 진정으로 필요할 때 개입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똑같이 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개입으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채 어설프게 개입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원하면 상승국면을 수용하고 하강국면을 수용하지 않을 수 있는 옵션의 형태로 비대칭성을 설명했다. 따라서 옵션은 안티프래질을 달성하기 위한 무기다.

 

나는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은 잊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읽으려고 했던 것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아시아와 미국 상류층의 눈에는 일종의 사치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도 공감했다. 하버드는 루이비통 해드백이나 까르띠에 시계와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이런 대학들은 저축의 상당 부분을 투자하려는 중산층 부모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들의 돈이 대학 행정가, 부동산 사업자, 교수들에게 흘러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의 대출금이 월세를 챙겨가는 부동산 사업자의 계좌에 자동이체 된다. 이는 어떤 면에서 갈취와 다를 바가 없다. 성공을 위해서는 버젓한 대학교 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사회가 제도권 교육과 함께 발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프래질한 대상이 중간 정도의 일련의 사건보다 극단적인 사건에 의해 훨씬 더 큰 손상을 받는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결국 이 원칙은 프래질을 가장 정확하게 정의해준다. 이제 논의의 방향을 바꾸어 안티프래질을 생각해보자. 안티프래질도 마찬가지로 반응의 비선형성에 근거를 둔다. 안티프래질한 대상의 경우, 충격의 강도가 (일정 정도까지) 증가하면서 더 많은 혜택(혹은 손상의 감소)을 얻는다.

 

운동은 신체적 스트레스에 대한 안티프래질적 반응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모든 종류의 운동은 볼록성 효과를 활용하는 행위다.

 

음료에 관해서 내가 정해놓은 원칙은 최소한 1000년이 되지 않은 음료는 마시지 말자는 것이다. 1000년은 적합성을 테스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와인과 물, 커피만 마신다. 탄산음료는 마시지 않는다. 오렌지 주스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해롭다. 그러나 현실은 마케팅 효과 덕분에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 몸에 좋다고 생각하고 아침마다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

 

진정한 부는 아무런 걱정 없이 잠을 충분히 자고, 깨끗한 양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질투심을 갖지 않고, 왕성한 식욕, 강인한 근육, 신체적 에너지를 갖고, 수시로 웃고, 혼자 식사하지 않고, 헬스 센터에는 가지 말고, 육체 노동(혹은 취미)을 적당히 하고, 장 운동이 제대로 되고, 회의실에 들어가지 않고, 주기적으로 경이로움을 느끼는 데에 있다. 그러면 제거적 전략을 충분히 구사해 의원성 질환을 없앨 수 있다.

 

신진대사 반응이 비선형성을 띤다면, 하루에 단백질 3일분을 섭취하고 그 다음 이틀 동안에는 섭취하지 않는 것과, 매일 1일분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은 영양학적으로 같지 않다. 그런데 전자에는 일정한 혜택이 있고, 우리 몸은 이런 혜택을 갖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고 나서, 비선형성 때문에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서 인간이 음식 섭취와 구성에서 나타나는 무작위성에 안티프래질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나는 이곳에 영원히 살아남기 위해 병든 동물이 되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스템의 안티프래질은 그 구성 요소들이 결국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다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인류라고 불리는 커다란 집단의 구성원이다. 나는 집단을 위해서 자식을 낳고 그들이 삶을 준비하도록 도와주고 책도 쓰고 나서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불멸을 추구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정보, 즉 안티프래질한 유전자다.

 

생명체는 가변성으로부터 이익을 본다. 당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가변성을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음식은 맛이 없다. 노력이 없는 성과는 의미가 없다. 슬픔이 없는 기쁨도 의미가 없다. 불확실성이 없는 확신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리스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덕적인 삶도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