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읽었던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황선우 작가가 새 책을 냈길래 읽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맘으로 대강 보려고 했는데 재미가 있어서 하루만에 정독, 완독하였다. 글을 잘 읽히게 쓰시기도 하고 글에 담긴 사고방식도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 귀담아듣고 싶은 좋은 얘기가 많아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을 내면서 퇴사 후 프리랜서 작가가 되셨다고 한다. 노동이 끝난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일을 최대한 현역으로 오래 오래 하고 싶다고. 돈을 떠나서 일에서 얻는 무형의 가치들이 있고 그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인 것 같다.
일이란 뭘까. 나에게 일이란 뭘까. ‘일=돈’이라는 방정식은 아니었지만 아직 고민이 더 필요하다. 결론 내지 못했다.
책은 꼭 일에 대한 얘기 뿐 아니라 운동, 인간관계, 일상, 여성 등 다양하게 짚고 있다.
42)타인에 대해 내리는 평가를 보면, 평가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가하는 사람이 보일 때가 많다. 90년대생들이 조직에 대한 충성심 없이 이기적이고, 포기가 빠르고, 대접만 받으려 하며 희생할 줄 모른다 같은 평가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평가 내리는 이들이 어떤 가치를 믿어왔는지가 보이는 것 같다.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일을 위해서는 사생활이나 가정을 가끔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워라밸보다는 성과를 위해 일하고, 때로는 눈치를 보며 살아온 회사원들의 모습. 그들이 잘못 살아왔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게까지 그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44)나이 들수록 말은 아끼고 지갑은 열라
69)회사 이름을 대면 내가 설명되는 소속감, 여러 역할들을 조율하는 팀워크의 즐거움, 규모가 큰 예산 운용이나 시장의 반응이 주는 재미, 규칙적인 월급의 달콤함 같은 것들은 이제 나와 멀어졌다. 대신 시간을 내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자유를 얻었다. 일의 성취가 고스란히 나의 성과, 내 통장 입금으로 돌아온다는 매력도 크다. 매달 나오는 월급의 안정성은 강력했지만, 월급 받는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하거나 너무 큰 모욕감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때가 종종 있었다.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느라 헛짓을 하고 있지 않다는 감각이 좋다.
71)회사를 안 다녀서 좋은 건 이럴 때다. 영하로 떨어진 아침 날씨를 확인하며 아무 데도 나가지 않기로 결정할 때, 평일 낮 사람이 없는 공원을 세낸 것처럼 한적하게 산책할 때. 20년 동안 계속해온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일 아침 새롭게 짜릿하다.
114)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ㅡ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117)큰 여자들은 큰 환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여성들은 새로운 사회를 요구한다. ㅡ 황선우
163)인생은 정말 긴데, 앞으로 점점 더 길어질 텐데, 젊음을 디폴트에 놓고 그것을 점점 잃어가는 서사로 바라본다면 모두가 지는 게임의 규칙 아닐까? 우리에게는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더 다양한 연령대, 더 많은 삶의 예시가 필요하다.
189)바라는 삶을 상상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하나씩 늘려가며 그 관계의 기억을 자기 삶으로 만들어온 사람이기에 튜더는 91세에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 말할 수 있다. 튜더의 정원은 아름답지만 스스로 번 돈으로 토대를 만들어 자신이 설계한 그림을 현실로 만들고 그 속에서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살고 있기에, 그저 주어진 천국이 아니라 쟁취해낸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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