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여성

트릭 미러ㅣ지아 톨렌티노ㅣ90년생 언저리 여성이라면 더더욱 읽어보자

기로기 2021. 10. 22. 16:51

친구의 추천으로 읽었다. 이 책이 출간된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추천사에 출판계에서 핫한 언니들이 다 나와서 놀람. 찾아보니 아래 링크의 9년차 여성 편집자가 추천사 써달라고 연락 돌려서 기획적으로 넣은 거였다. 예스24의 [책 짓는 사람] 인터뷰 시리즈 재미있다. 쭉 해주면 좋겠다.


http://m.ch.yes24.com/article/view/45964

[책 짓는 사람] 정혜지 생각의힘 편집자 “어렵게 책을 만들고 싶다” | YES24 채널예스

최근 들어서는 자기만족에서 그치지 말자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제가 성격 자체가 자기만족을 잘하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책은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작업인 만큼 혼자서만 흡족하게 여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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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지아 톨렌티노는 88년생이다. 초반부 읽다가 인종이 궁금해서 구글링해봤더니 필리핀계 미국인인 듯하다. (내가 읽은 책에는 저자의 사진이 없었음.) 밝은 에너지와 건강함이 느껴지는 인상.

책에는 9개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전반적으로 대안 제시라기보다는 문제제기의 글이다. 내가 느끼기에 쉬운 책은 결코 아니었다.

1장 인터넷 속의 ‘나’ : 인터넷 세계에 대한 저자의 태도가 다소 모두까기인형처럼 느껴짐. 대안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2장 리얼리티 쇼와 나 : 너무 읽기 힘든 장이었다. 수많은 과거의 조각들과 대화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호한데 특유의 번역투까지 역시너지를 일으켜 진도가 영 나가지 않던 장.

3장 언제나 최적화 중 : 몰입도가 높은 장. 라이프스타일, 건강, 관리에 관심 많은 나로서 공감도 많이 됐던 에세이. 하지만 역시 대안은 희미하게 느껴진다. 나도 고민이 많은 주제. 심지어 아이러니하게도 로테 버크(Lotte Berk)가 만들었다는 바(Barre, 국내에서는 ‘바르’ 또는 ‘바레’로도 번역하는 듯)라는 운동을 해보고 싶어졌다. 국내에도 있긴 한 거 같은데 전혀 대중화되지 않은 듯함. ‘발레핏’과는 다른 운동인데 잘못 사용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해준 친구도 이 운동에 관심을 보여서 다음에 배워보러 가기로 했다.

4장 순수한 여자 주인공들 : 여성을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지 말자.

5장 엑스터시 : 종교, 마약. 미국인들이 쓴 책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약물 이야기에 너무나 거부감이 든다. 엑스터시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아서 더. (반면 내 친구는 다르게 해석했다. 마약을 종교에 비유함으로써 그만큼 종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얘기한 것 같다고.) 노지양 번역가가 작성한 옮긴이의 글에서는 이 에세이가 이 책의 묘미라고 언급한 만큼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

6장 일곱가지 사기로 보는 이 세대의 이야기 : 재밌다. 상업화된 페미니즘, 혁신기업의 암 등 내가 관심 있는 주제라서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도 많았지만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장이었다.

7장 우리는 올드 버지니아에서 왔다 : 몰랐던 사건인데 이번 기회를 통해 상세히 알게 되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장.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시 다짐하게 된다.

8장 어려운 여자라는 신화 : 이 장을 읽고 나니 종종 하던 이 생각이 떠오른다. “예쁜 여자는 예뻐서 고통 받고, 못생긴 여자는 못생겨서 고통 받는다.”

9장 결혼,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 : 결혼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너무 잘 담겨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결혼하고도 행복하겠다는 확신을 주는 남자를 만난다면 생각이 달라질까? 저자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결혼이 사랑의 완성, 완벽한 종착지, 성스러운 결정 뭐 이런 게 아니라는 건 이제 너무나 잘 안다. 결혼한 친구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원작의 부제가 ‘자기기만에 대한 고찰’이라고.




17) 내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나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명확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몇 년은 걸릴지언정 가치 있는 과정이라고 믿으려 한다.

40) 인터넷상에서 가장 고기능적인 사람이란 어떤 식으로건 관객을 끝없이 증가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약속하는 사람이다.

42) 근래에는 경제적인 생존 외에 다른 것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인터넷은 이 작은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우리가 가진 최소한의 자유시간을 불만족스러운 조각들로 재배치한다. 지역 사회에서 정치 활동을 하고 싶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때 인터넷은 싸구려 대안을 제공한다.

53) 악플러들과 나쁜 기자들과 현 대통령(트럼프를 말함)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가 누군가를 끔찍하다고 욕할 때 우리는 그저 그들을 열심히 홍보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59) 유저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해야 돈을 버는 회사의 이익과 결합하면서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공고하게 하는 뉴스 미디어만 소비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내가 지지하는 정치적 관점을 옹호하는 뉴스만 소비하는데, 이는 우리가 언제나 무조건 옳다고 느끼게 하고 더 나아가 광기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113) 이상적인 여성은 언제나 과로를 하지만 그 티가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은 여성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여긴다고 교육받은 모든 일을 추구해왔다. 가정 살림, 외모 관리, 남성의 찬사, 공손한 태도를 위해 노력했고 다양한 형태의 비보수 일을 군말 없이 맡아왔다. 이상적인 여성은 언제나 자기의 의지로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고 믿는다. … 스스로 더 완벽해지고 이 세상과 발맞추어 살아갈 수 있다면, 직업과 여가를 통해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이상적인 여성은 값비싼 유기농 주스, 부티크 운동 클래스, 피부관리 습관, 그림 같은 여행이라는 휴가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그 안에 행복하게 남아 있기로 한다.

115) 오늘날 평범한 여성이 자기가 만든 신기루 속 이미지를 향해 한 발짝씩 걸어가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심리적으로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일이 되었다. 그녀는 이 매혹적이고 지속적이며 대체로 기쁨을 선사하는 이미지 권력의 설계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시간과 돈과 결정권과 자아와 영혼이 저당 잡혀 있다는 사실을 못 본 척 밀쳐놓을 수 있다.

133) 이제 가사 노동은 무궁무진하지만 돌아서면 새롭게 할 일이 또 생기는 미모 노동으로 대체되었고 우리는 수많은 시간과 불안과 돈을 소비하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기준에 매달린다. 나오미 울프는 미모 관리가 일종의 세 번째 직업이 된다고 했다.

134) 개인적인 성취로는 아름다워야 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134) 미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일은 “지엽적이거나 부분적인 실패가 아니라 자아의 실패로까지” 간주된다. - 헤더 위더우즈 <Perfect Me>

149) 우리는 이렇게 끔찍한 걸(Barre 운동) 우선순위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구나. 외모를 통해 사회적 자본을 더 모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구나. 외모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경제적 자본을 지키고 더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일하지 않아도 되는 여성과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 여성과 나처럼 일하는 여성 사이를 이어주는 끊을 수 없는 고리.


189) <마담 보바리> 엠마는 사회가 주입한, 여성의 행복은 사랑과 물질적 소비로 해결된다는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연애가 실패하면 허무함을 이기지 못하고 사치를 하다 큰 빚을 지고 연인들에게 돈을 구해달라고 구걸한다. 그녀는 불륜 또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부부 관계처럼 진부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엠마는 비소를 먹고 천천히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다른 19세기 소설처럼 서사를 끌고 가는 건 남성의 보호 없이는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 못하는 여성의 무능력함이다.


269) 대학 학위는 더는 재정적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늘날 상속받지 않고 재정적 안정을 누리는 삶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2019년 바서티 블루스 작전으로 명명된 스캔들에서 보았듯 여전히 대학 교육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는 백만장자 부모들은 엄격한 입학 시스템과 두뇌 싸움을 벌여서 자녀들에게 실제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여전히 모든 젊은이가 성공의 기회 앞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쳐야 할 과정이라는 이유로, 학위라는 통행료를 팔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영역에 이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안정성으로 가는 길은 아마도 개인 브랜드를 갖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