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집단착각ㅣ토드 로즈ㅣ끄덕이며 본 책

기로기 2024. 7. 7. 23:21

실망시키지 않는 토드 로즈의 책. <다크호스>도 읽어봐야겠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자'는 게 내 화두였는데 딱 그 얘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평균의 종말> 때도 느꼈지만 작가와 결이 잘 맞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많이 생각나는 내용이었다. <지위게임>에서 봤던 지라르의 너무나 유명한 모방이론도 나오고.

 

인간은 어떨 때는 너무나 경이롭고 소름돋게 똑똑한데, 어떨 때는 바보 같고 피곤한 존재구나. 정말 다채로운 인간종.

 

다양한 정체성. 나라는 사람을 한 가지 생각이나 기준으로만 규정하지 않는 것. 투자를 하다 보면 성과가 좋을 때와 나쁠 때 그 기복을 스스로 잘 조절해야 하는데, 돈과 무관한 여러 가지 나만의 기준들을 갖는 게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집단착각의 예. 뱅크런, 코인이 망할 때, 데드 스파이럴, 화장실 내부에 빈칸이 정말 많은데도 누군가 한 명이 그걸 몰라 줄을 서기 시작하면 다같이 줄을 선다 (직접 겪음)

 

신장이식 거부 사례에 대해 읽으면서 엥? 왜 거부했는지 이유를 작성해두면 그 다음 사람이 참고할 수 있잖아. 왜 안 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내용이 그렇게 고쳤다는 내용이었다. 허무하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다면 문제 없는 신장이식을 거부하고 죽음을 맞는 안타까운 사례는 없었을 텐데... 단순한 그 생각 하나로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다니. 무능함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헛소리를 어렵게 썼더니 학술지에 실어줬다는 일화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환멸이다.

 

저자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주인 저자를 레스토랑에 데려가려고 두 분이서 하던 데이트도 하지 않고 돈을 모아서 데려가곤 하셨는데, 정작 저자는 그 레스토랑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저자가 좋아할 거라 생각한 거고, 저자는 그 레스토랑을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엇을 포기하셨는지 몰랐던 거다. 인간관계에서 이런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서로 배려하느라 오해하게 되고 그래서 멀어지거나 의가 상하는 경우. 상대가 이런 거 좋아할거다 싫어할거다 혼자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물어보자 그냥. 소통하자. 그리고 누군가의 순수한 "왜?"에 대해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주길.  

 

 


놀랍게도, 관중들이 정답을 맞힐 확률은 91%에 달한다. 이런 경우라면 집단 지성이 옳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일이 현실에서는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이 개인으로서 판단을 내려야 집단 지성이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른 이의 선택을 볼 수 있을 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보고 흉내 낼 수 있을 때, 집단 지성은 순식간에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철도 광란이 끝나고 3년이 지난 1849년, 맥케이는 <대중과 미망의 광기>를 대대적으로 수정 증보하여 제2판을 출간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관여했던 영국 철도 광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와 뜻을 함께했던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맥케이 역시 본인의 맹점을 인정하지 못했고, 본인 역시 광란에 취약한 존재라는 점을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내로남불이었다니)

미국의 경우 99%의 수돗물은 음용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생수라고 생각하며 마시는 물은 수돗물이다. 병입되어 판매되는 물 중 절반 이상이 약간의 처리 과정을 거친 수돗물이며, 양대 생수 브랜드인 아쿠아피나와 다사니는 (참고로 이들은 펩시와 코카콜라의 상품인데), 그저 디트로이트시가 제공하는 물을 한번 걸러서 플라스틱 병에 담아 넓은 시장에 판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병에 들어 있는 물을 생수라고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기극에 속는 동시에 거들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진짜 전문가를 파악하는데 매우 서툴 뿐 아니라, 누군가 자신감을 드러낸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굴복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 자신감을 드러내면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여기곤 하는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성공팔이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보라..)

어떤 사람들은 "왜?"라는 질문의 형식이 나쁘다고 지적한다. 사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공격적으로 받아들일 사람들이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과 선호를 두고 그 이유에 대해 남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사실은 좋아한다. 하버드 대학에서 진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서로 관점을 교환할 때 본능적으로 만족을 느낀다. 심지어 "낙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저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고 서로 견해를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대화 참여자들 사이에는 호감이 생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니던데? 이게 통하는 건 음식에 대한 기호나 깻잎논쟁 정도고, 진짜 중요하고 깊은 문제로 넘어가면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게 대부분임.)

자기 인식이란 우리가 지닌 고유한 특성과 함께 우리가 속한 귀속집단에의 감각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은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과 너무도 깊숙이 결부되어 있으며 그래서 우리의 뇌는 그 둘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다. 누군가를 MRI 스캐너에 올려둔 채 스스로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할 때와, 자신이 가장 가까운 귀속감을 느끼는 집단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할 때, 뇌신경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같은 부분이 자극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